편히 써보기로 했다. 하루하루가 휘발되는 것이 싫어서, 조금이라도 곁에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으로. 그러자 '척'해보고 싶은 마음도 허겁지겁 쫓아왔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지붕이 아니라, 기둥 먼저 그려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셨는데, 아직은 뽐내고픈 마음인가 보다. 그래서 필명을 갖고 싶었다. 외자가 좋았다. '이 씨'는 어떤 자를 붙여도 예쁘건만, '박 씨'는 왜 이리도 거칠고, 둔탁한 느낌인지. 이를 지워내려면 낭랑하고 맑은 소리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달'이었다. 달이란 단어는 스스로도 잘 어울리는 듯하다. '달'이 서로 만나면 '달달'이 되듯, 달콤하고도 은은하다. 그래서 지은 것이 '박달'이다.그러나 이 필명. 오늘에서야 더 좋은 뜻을 찾아내었다. 나는 그저 '달'이라는 말에 담긴 울림과 밝음이 좋았을 뿐인데. 박달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물들이 몇몇 있었다. 박달대게, 박달나무, 박달재 등. 난 박달나무가 문득 어떻게 생긴 지 궁금해졌다.
박달나무는 잔톱니 모양이 있는 이파리를 가진 자작나무과에 속한 나무이다. 열매는 수세미처럼 생겨서 두세 개씩 이파리 사이에 뾰족 튀어 올라있다. 박달나무의 외양도 그럭저럭 매력이 있었으나, 외양보다는 그 쓰임새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박달나무는 목질이 단단하고 치밀하여 물건을 만들 때 많이 활용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내 글도 누군가의 목재가 되어서 단단히 받칠 수 있을까. 내 글이 읽히고 다른 글의 재료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그냥 쓰이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픈 이들에게는 위로 같은 목재가, 기쁜 이들에게는 선물 같은 목재가,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받침대 같은 목재가 되었으면. 그 목재로 쓰이기 위해서 나는 꾸준히 내면을 채워 넣으려고 한다. 목질을 더욱 치밀하게 하기 위해, 읽고, 쓰고, 듣고, 말하며 살고 싶다. 열매에 치중하기보다, 계절 속에 단단해지는 박달나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