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말이 없었다. 일기를 쓰기 어려웠던 것은 쓸 말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일 일기를 쓰려고 마음을 먹으니, 빈 공간이 조금씩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페이지와 마주하는 민망함은 일상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허전함은 빈 공간을 마주한 뒤 오는 민망함이다. 다행히도 이제 그 민망함의 자리는 점점 새로운 일로 채워지고 있다.
오늘도 새로운 일을 하나 남길 게 생겼다. 학교에 생태 교육 강사 선생님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넥스트젠이라는 생태 공동체를 이끌어가고 계신 분이라고 하셨다. 웃음이 많으셨다. 온갖 말들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셨다. '지역, 자연과 연결되기'를 뱉으며 한 번, '조아나 메이싯'을 뱉으며 한 번, '사티시 쿠마르'를 뱉으며 한 번. 그분께서 뱉어내는 웃음과 자유는 그분의 머리 장식처럼 알록달록했다. 길게 땋은 머리였는데 형형색색 실들이 땋은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히피 스타일이랬다.
'영웅이 되지 않아도, 내 이름 아는 사람 없어도 / 내 평범한 하루로 세상을 바꾸네' 강의를 시작할 때 선생님은 함께 부르자고 했다. 미얀마의 '우리의 하루'라는 노래라고 했다. 노래하며 가사를 씹다 보니 든든해지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평범함이 가장 위대한지도 모르겠다. 이성부의 '벼'라는 시처럼. 서로 익어가며 기대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인간의 모습이지 않을까.
선생님은 "사람은 지구를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라는 사타시 쿠마르의 말을 인용하셨다. 강신주는 사랑이 아끼는 마음이라고 하던데. 나는 내가 사는 공간을 아끼고 있나? 난 늘 쓰기에만 익숙하다. 지구가 언젠가 내게 불쑥 '나도 널 좀 써야겠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 아니면 쓴 만큼 갚으라고 한다면. 어떻게 갚아야 하나. 갚을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서 눈앞의 현실에서 우리는 늘 도망치듯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성부가 말하듯 그것을 직시하면 그때부터 희망이 설 공간이 생긴다. 오늘은 희망 하나 연습해야겠다. 먼지 묻은 텀블러를 찻장에서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