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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Dec 03. 2023

겨울의 맛

日記(일기) 3

 콩국수, 팥칼국수가 당신 모습의 일부이니 함께 앓을 수 있는 것이겠다


"몇 명이예요? 시아버지 제사가 오늘 있어서 일찍 닫으려고 했는데."

 아주머니는 우선 앉으라고 하셨다. 옆 테이블에는 팥칼국수 대접이 이미 비어있었다. 가족끼리 와서 두 그릇을 비우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시아버지 제사가 있는 날이라니. 민망한 마음이 올라왔다. 형과 나는 밥을 평소 느리게 먹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매장을 정리하는 분위기에 찾아든 두 손님.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냥 나갈까 생각했으나, 나가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운전만 4시간을 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결혼식장이 운전으로 4시간이 걸리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어제 식장 근처에서 자고, 오늘 점심에 결혼식을 축하해 주고 올라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뜨끈한 거 먹고 싶은데." 문득 따듯한 것을 먹고 싶다며 형이 말했다.

 날씨도 춥고, 오래 운전했으니 따듯한 걸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가 보다. 그래서 올라가는 길에 팥칼국수집이 있으니 들렀다가 가자고 했던 것이었다. 저녁 7시 정도니 여유롭게 먹고 가겠다 싶어 들어갔는데, 마쳐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민망했던 것이다.

나가야 하나, 있어도 되나. 그 짧은 시간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 몸은 쭈뼛거렸다.

 "먹고 가요. 몇 명인데?"

 "네. 빨리 먹고 가겠습니다."

 '먹고 가요'라는 말에 우리는 민망함도 잊고 어느새 숟가락을 놓고 있었다.

 "젊은이들 둘이 왔는데, 또 나가라고 하기가 그랬어."

 목걸이형 이어폰을 목에 두르고, 아주머니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4시간의 고된 운전은 이렇듯 짧은 순간에 녹았다.

 식당 내부는 예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전통 찻집이랄까. 나무로 된 메뉴판과 다육이들이 놓인 선반, 그리고 옛날 과자를 놓아둔 매대가 눈에 띄었다. 나무로 새겨진 메뉴판엔 여름철엔 콩국수, 겨울철엔 팥칼국수가 쓰여있었다.

 "요즘에는 젊은이들이 전통 음식을 잘 안 먹잖아요."

 콩국수와 팥칼국수를 팔아오며, 어쩌면 부부의 삶이 메뉴에도 담겨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에겐 콩국수, 팥칼국수가 당신 모습의 일부이니 함께 앓을 수 있는 것이겠다며 말이다.

 팥칼국수는 맛있었다. 팥이 곱게 갈려서 부드러웠고, 씹을 때 팥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칼국수 면은 쫄깃했다. 세월을 지켜온 맛이었다. 음식은 삶으로 데우면서 부드러워지고, 기억으로 만지면서 쫄깃해진다.

 팥칼국수집 옆에 편의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은 간편하고, 맛도 좋다. 그러나 나는 이런 낡은 것들이 좋다. 낡은 맛들이 좋다. 누군가의 삶으로 만들어진 음식.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 말이다.

 "가족이랑 같이 살아요? 혼자 살면 김치 좀 싸주려고 그래."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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