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같이 살았던 형이 화장품을 많이 사는 내게 꼬집어 말했다. 여덟 개의 얼굴은 아니지만, 여덟 마음이 있는 듯 나날이 피부가 변덕을 부렸다. 변덕스러운 피부만큼이나 나도 이 스킨, 저 스킨 다 사보고, 클렌징 폼도 몇 개씩은 번갈아 써보기도 했었던 것이다.
약산성이 좋다니, 판테놀이 좋다니, 히알루론산이 좋다니 다들 좋은 것만 들어갔다는데, 나날이 내 피부는 홍조끼가 생기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대학생 때에는 얼굴에 특별히 뭘 바르려고 하지 않았다. 스킨조차도 귀찮았으니까. 그래도 피부에 뭔가가 나지는 않았다. 내게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그걸 알아내면 피부가 왜 이렇게 변덕을 부리는 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우선 나이가 달라졌고, 자는 시간이 달라졌고, 스트레스 수치가 좀 달라졌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사소한 것들이 참 많이도 바뀌었다. 바뀐 것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생각은 없고, 겉으로 맴돈 것은 아닐까 싶다가도 어릴 적으로 다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어쩌면 그때 건강하다며 관리하지 않았던 벌을 지금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고등학교 내 친구 중 별명이 홍익인간인 친구가 있었다. 널리 이롭게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홍조끼가 있다며 친구들이 불러대던 언어유희였다. 친구에게는 늘 빨간 펜으로 풀었던 문제를 동그라미, 체크 표시를 하며 두세 번 더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듯 피부도 꾸준히 가꾸었던 듯하다. 그래서 최근에 보니 홍조끼도 없고, 반질반질하니 매끈하게 윤이 나는 피부가 되어있었다.
어쨌든 피부는 한순간 화장품 한번 바꾼다고 돌아오는 녀석은 아닌 듯하다. 정성을 다하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때에 마음과 함께 오는 것 같다.
피부를 보면서 최근에 참 멋대로 살아온 듯하다. 내면 한번 돌볼 틈도 없이, 게으르게 시간을 허비하면서 말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어찌 그렇게도 청소가 재밌고, 소설이 재밌고, 산책이 재밌는지. 그렇게 밀리고 밀려서 겨우겨우 눈앞의 일들만 쳐내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해야 할 일들의 무게로 고단한 게으름을 부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쓰는 마음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된다. 피부처럼 내 삶이 무너지려 할 때, 쓰는 힘이 나를 버티게 한다. 피부처럼 내 삶이 탱글 하게 차오를 때까지 스킨 바르듯 매일 써보려 한다. 어느 날 윤기가 흐르는 글을 쓰게 될지 또 어찌 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