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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Dec 04. 2023

편지할게요

日記(일기) 5

함께 보낸 시간들을 뒤적거리며, 배열하는 그 순간이 좋다.


 '쓰다 보면'이라는 말은 나를 보듬는 말이다. '쓰다 보면' 나을 것 같고, '쓰다 보면' 정리가 될 것 같고, '쓰다 보면' 꿈을 꾸게 될 것 같다. 쓰다 보면.
 쓰기를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어버이날에 어머니, 아버지께 편지를 썼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리 아들, 편지 참 잘 쓴다."
 편지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글로써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곤 쓰기에 대해 이따금 설렘을 가진 것 같다.  
 지금도 나는 편지를 좋아한다. 만년필로 서걱서걱 편지지에 적을 때, 편지를 받는 사람이 어떤 말을 좋아할지 고민하며 적당히 앓는 느낌. 함께 보낸 시간들을 뒤적거리며, 배열하는 그 순간이 좋다.
 간혹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는 순간들도 있다. 혹은 쓴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편지지를 처음부터 다시 적기도 한다.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이문재, '푸른곰팡이' 中


 편지는 느린 것이다. 이문재 시인이 발효된다는 것으로 표현하듯. 편지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새콤달콤하게 상상하게 된다. 기다림도 밀려나 있지 않다는 것이 참 고맙다. 편지가 갖고 있는 힘은 바로 그런 것이다. 기다림 또한 의미로 다가간다는 것.
 여자친구가 새로운 꿈을 가졌다. 호주로 가고 싶다는 꿈이다. 꿈이 있다면 누구나 청춘이라지만 꿈을 응원해 주고 퍽 섭섭한 마음이 든다. 호주로 떠나면 반기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제법 묵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난 편지 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편지처럼 발효되는 시간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해 줄는지.
 여자친구를 기다려야 하니, 나도 편지해야겠다. 발효된 기다림으로 먼 호주에 먼저 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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