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대화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목각을 배웠어요."
우리 학교 목각반 선생님은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매주 수요일에 찾아오신다. 우리 학교 졸업생인 그는 우리 학교의 살아있는 역사다. 학교 3회 졸업생이라고, 그 당시에는 교양 국어라는 걸 배웠다고, 요즘 아이들은 시간을 잘 안 지키는 것 같다고. 모셔다 드리는 길에 말을 붙이신다.
"몇 시 차 타고 가세요?"
"예?"
"몇 시 차. 타고 가세요."
"아. 4시 차요. 지난번에는 4시도 안 됐는데 버스가 먼저 간 적도 있어요."
부족한 청각은 시각으로 채워내신다. 두 눈으로 깊게 나를 바라보시며, 말을 이어가신다.
"오늘은 인내라는 글씨를 완성했어요. 집에 가서 마무리 작업을 하려고요. 검은 칠을 할 생각이에요."
인내라는 글씨가 세월 속에서 깎이어, 눈가 주름으로 파고든 것일까. 눈가 주름과 마스크 위로 찍힌 검버섯 몇 개가 글씨처럼 단단하다. 세월을 꿋꿋하게 살아온 어른. 묵묵하고 듬직한 어른이시다.
사실 나는 어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무척 어렵다. 어른다운 어른들을 내 삶에서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디게, 어른'이라는 브런치북도 썼지만, 어른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어감은 우리 사회에서 그리 달갑지 않은 듯하다. 우리 사회의 어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래도 다행히 나는 군대에서 어른을 만났다. 부대대장 역할을 했던 중령이 한 분 계셨는데, 장교 숙소에 가끔씩 찾아와 맥주를 선물하시기도 하고, 당신 댁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해주시기도 했다. 초대해 함께 술을마시는 날이면, 다음날 오전은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최대한 오시지 않으셨다. 그리곤밖에서 해장국을 먹자며 넌지시 물어보곤 하시던 분이셨다.
깍듯한 머리와 매끈한 이마, 옷매무새를 늘 단정히 하시면서도 가끔씩 썰렁한 농담을 던지곤 하셨다. 지금도 그분에게 스승의 날에 연락을 드린다. 배운다는 것은 행동도 포함되는 것이므로.
내가 만난 또 다른 어른은 내가 전역하고 며칠 되지 않아, 내게 보험을 들어달라며 전화가 왔다.
"어디서 근무하냐? 일단 갈게."
내가 있는 곳이 어딘 줄 알고 무작정 오시겠다는 것인지. 소문으로 그분은 서울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기에. 경상도까지 오면 차비만 해도 얼마이겠는가. 그리곤 볼멘소리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하시겠지.
어른이 되기란 참 어렵다. 무엇이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어른이라는 단어를 찝찝한 감정으로 물들이게 하는 것일까?
최근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돈은 똥과 같아서 모아두기만 하면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잘 나누어 뿌리면 거름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나눈다는 게 합리적일 수 있을까. 그러나 어른은 연민으로 합리에 맞서는 사람이다. '많이 벌자'라는 합리에서 '함께 살자'라는 연민으로 한 걸음 내딛는 사람.
민망함이 올라온다. 나는 합리만을 좇으며 살아왔다. 아이히만이 시스템에 의해 시키는 일만 했던 것이, 지나서 죄가 되었듯. 순응 또한 죄가 될 수 있음을 안다.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연민으로의 반항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