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분히 느린 인간입니다

말라버린 생명을 지나며

by 이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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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도로 위에서 갈색빛으로 말라가는 가죽이 보였지요. 아마 고라니나 고양이였지 싶습니다.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을 운전하는데도 도로 위에서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어간 생명들을 쉽게 발견했습니다. 비명도 말라버린 도로 위를 지나며 내가 몰고 있는 차가 얼마나 빠른 것인지 자각해 봅니다. 우리는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말라버린 생명들을 지나며 우리 현대인들도 이미 과학의 속도에 뒤처지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현대사회는 정말 빠르게 변합니다. 제가 살았던 김해의 장유라는 곳도 10년이 지나 지금 다시 가보니 상전벽해입니다. 어릴 적 무심코 지나쳤던 풀밭은 모두 상가가 들어섰고, 듬성듬성했던 아파트 단지는 빼곡하게 메워져 신도시의 위용을 뿜어냅니다. 도시가 변하는 것처럼, 우리의 모습도 10년, 20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스마트폰이지 싶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3G가 나왔는데요. 그때는 스마트폰 말고 슬라이드폰, 폴더폰 등을 함께 사용하곤 했었습니다. 조금 여유가 되는 친구들이 스마트폰 갤럭시 S를 사용했었지요. 지금은 지하철이든, 버스든, 음식점이든, 화장실이든. 어느 곳에서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기술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스마트폰은 참 빠르지요. 정보를 쉽게 접하고, 쉽게 퍼뜨릴 수 있습니다.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야구, 농구, 축구, 드라마도 녹화된 영상이 몇 시간 채 되지 않아 OTT서비스나 동영상 플랫폼에 업로드됩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은 자신의 입장을 SNS를 통해 밝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화가 됩니다. 정말 빠릅니다.

빨리빨리 내 생각들이 전달되고, 빨리빨리 무엇인가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사회.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할 권리, 알 권리는 소중하기에 이런 사회의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플랫폼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나눌 수 있음은 귀한 일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보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겁니다.

최근 '소셜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재런 러니어도 말하듯, 이미 우리는 알고리즘에 의해 상품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동영상 플랫폼을 보더라도, 하나하나에 광고가 붙습니다. 또 검색 플랫폼들도 빈 공간에 꼼꼼하게 광고를 채워 넣습니다. 광고를 클릭하고, 보고, 구매하도록 우리는 은연중에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플랫폼 내에 머물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한 동영상 구독 플랫폼을 4~5시간 생각 없이 주욱 시청했습니다. 중독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정말 편리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직장에서도 가전을 껐다 켰다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카메라를 통해 집 안에 있는 강아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 감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발전한 기술만큼이나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해킹이 되어 사생활 영상이 유출된다거나, 스마트폰이 해킹이 되어 피해를 보는 등 변화하는 기술만큼 그림자도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지요.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SNS이지 싶습니다. 타인의 모습을 빠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에 깊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누구나 행복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100명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면 한 친구가 하나씩만 좋은 일을 올려도 내게는 100일이라는 우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만큼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평범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소셜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말하듯 SNS를 시작하고 우울감이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내가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었다면, 1905년에 쓴 공식을 찢어버렸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핵 기술을 알아낸 것에 대해 후회했지요. 우리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기술들. 과연 우리가 기술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기술이 우리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속도에 치여 도로 위에서 말라버린 생명들. 과연 나라고 다를 수 있을까요. 기계는 빠르고 인간은 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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