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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Aug 13. 2023

감시의 공간에서 주체의 공간으로

공간이 알려준 지혜


그들이 내어준 빈 공간을 즐기는 것

 

최근에 취미가 하나 생겼습니다. 인테리어입니다. 평소 예쁜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해 인테리어와 자연스레 친해진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주는 아늑함. 그 느낌을 늘 품고 살아왔었지요. 그러다 인테리어 상품 판매 어플에 자주 들어가 보면서 어떻게 꾸며볼까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실행에 옮기게 되었지요. 저는 특히 아이보리빛의 편안하고 따듯한 색상들을 좋아해서 그렇게 꾸미고 싶었습니다.

 아이보리색 소파, 흰 빛깔의 러그, 나무빛깔의 선반, 원반 모양의 조명. 하나하나 갖추어 나갈 때마다 즐거웠습니다. 낡은 벽지 위에 페인트도 직접 칠했지요. 집을 내 손으로 가꾼다는 느낌. 제 손길이 닿는 곳마다 조금씩 변화해 가는 집안 풍경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스눕이라는 책에서는 공간을 통해 사람의 성격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만들어내는 풍경들은 어쩌면 제가 원하는 모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따듯하고 포근한 사람 말입니다.

 인테리어가 재미있는 것은 그 안에서 조화를 늘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림 하나, 장식품 하나, 가구 하나, 조명 하나도 그냥 배치할 수 없습니다. 전체적인 인테리어 속에서 그들이 잘 어울려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림을 놓기 위한 이젤의 색상마저도 맞추는 수고를 감내했습니다. 감내한 만큼 집은 더 세련되게 변했습니다.

 인테리어 애플리케이션을 보면 사람마다 다양하게 스스로의 집을 꾸미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쩜 그렇게 조화롭게 잘 꾸밀 수 있는지 신기하고도 재미있었지요. 어떤 집은 라탄 소재의 가구들을 활용하여 꾸미는가 하면, 어떤 집은 흰색과 은색 톤으로 세련된 분위기로 꾸미기도 하는 등 인테리어의 세계는 무궁한 듯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집들을 구경하다 보니 인테리어의 기본 요소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테리어의 삼요소가 있다면 가구, 조명, 벽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세 요소가 조화로운 집은 편안하고 쉬고 싶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습니다.

 또 꾸미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빈 공간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쁜 가구, 장식품이라도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꼭 필요한 위치에 잘 놓일 때 예쁩니다. 그리고 남은 공간은 빈 공간으로 또 의미를 갖게 되지요. 빽빽하게 무엇인가가 채워져 있다면 자칫 어지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빈 공간은 비어있기에 제게 여유를 주었습니다. 그런 여유 공간은 나의 활동들로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인테리어가 알려주는 것은 바로 조화, 여유, 자유라고 하겠습니다. 색들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어울리는 것. 가구가 알맞은 위치를 알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그들이 내어준 빈 공간을 즐기는 것. 이들 하나하나가 모여 인테리어의 맛을 살려줍니다. 

 


감시의 공간에서 주체의 공간으로


 인테리어를 예쁘게 꾸며놓고 보니, 인테리어가 사람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쁜 카페에 가면 이야기가 자연스레 터져 나옵니다. 아마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듯 열린 공간은 우리의 이야기로 채워내기 좋습니다. 

 저는 유현준 교수를 좋아합니다. 그의 저서도 많이 읽어보았지요. 한 번은 인터넷에 올라온 강의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강의에서 학교 공간이 교도소와 비슷하다며, 이런 공간에서는 창의력이 생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머프형 학교를 제시하면서 아이들이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영향일까요. 요즘 학교에서는 공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직접 공간 설계에 참여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공간의 주인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사는 공간은 스스로 가꾼다는 것이 그 근본 생각이기에 그렇습니다. 교도소는 분명한 목표를 기반으로 지어진 공간입니다. 그 목표는 수인들을 안정적으로 가두어 두는 것이겠죠. 그래서 교도소는 그 태생부터 수인들이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자유의 박탈인 것이겠죠. 그러나 학교가 교도소와 비슷한 건물이라고 한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가두어 두는 대상도, 감시의 대상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감시의 공간에서 주체의 공간으로 학교 공간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 선생님께 제가 사는 공간을 보여드렸더니, 

 "선생님 지혜로우시네요."라며 저를 칭찬하셨습니다. 그 순간 으쓱하며 기분이 좋았습니다만, 뒤에 '지혜'라는 표현을 곱씹어 보게 되었습니다. 왜 집이 예쁘다는 표현 대신 그 선생님은 절더러 '지혜롭다'라고 말씀하셨던 걸까요? 아마 공간이 갖는 힘이 그만큼 크기에, 이러한 표현을 하신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이 드나요. 그렇다면 내 주위 공간부터 돌아봅시다. 내 모습이 공간의 모습이고, 공간의 모습이 내 모습입니다.

 

직접 꾸민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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