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든 고독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창비 2020)

by 이여름

호두에게

안희연


부러웠어, 너의 껍질

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거


나는 너무 무른 사림이라서

툭하면 주저앉기부터 하는데


(...)


자꾸 잊어, 너도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거

세상 그 어떤 눈도 그냥 캄캄해지는 법은 없다는 거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나날이 쪼그라드는 고독들을


껍데기


나는 오늘도 껍데기가 깨지는 날을 기다린다. 매일이 호두를 까는 삶이다. 나는 한 아이의 미래를 상상한다. 단단한 갑옷을 부수고, 나에게로 자신의 고독들을 보여주는 날. 어려움을 털어놓고, 다시금 호두나무로 자라는 순간.

정말 싫었던 아이가 하나 있다. 그 아이의 모습은 호두다.

"쓰기 싫어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독후감이 쓰기 싫다던, 과제의 의미를 모르겠다던 딱딱한 친구. 호두 같은 학생.

그 아이에게도 내면에 고독이 쪼그라들고 있었겠지. 나는 왜 아이의 겉모습으로 이리도 어려워하는가. 슬퍼하는가. 호두를 대하기엔 나는 너무 무른 사람일까?

그 아이가 인사를 했다. 입가엔 작은 미소가 있다. 고독을 털어내려는 금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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