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끄적이다 보니 슬금슬금 내면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듯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어떤 내용으로 글을 적는지 살펴보는 여유도 갖게 된 듯합니다. 다들 참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은 고유하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고양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어떤 분들은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분들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적습니다. 요즘은 동영상 매체가 발달해서 쓰기보단 보기에만 익숙한데, 이렇듯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오늘 갑자기 들었던 생각인데요.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양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노 사피엔스라고 말하듯 이미 스마트폰은 신체 부위처럼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스마트폰에게 맡기면 안 될 기능들을 점차 양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에게 양도해서는 안 될 것. 그것은 사유하는 것과 마음을 쓰는 일일 것입니다.
최근 들어 음식점을 가다 보면 음식을 앞에 두고 휴대폰을 보는 가정들을 자주 만납니다. 아이들은 스마트폰 삼매에 빠져있지요.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영상들이 교육적이든, 그렇지 않든 식사 자리에서 대화가 말라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 주위 몇몇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를 키우시면서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이점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데요. 스마트폰을 보여주니 사회성이나 언어구사력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빠른 것 같더라고 하셨습니다. 상황마다 다를 수야 있겠다만 저는 사회성, 언어구사력이 느리게 크더라도 스마트폰은 최대한 늦게 줄 생각입니다. 대신에 수고스럽게라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픈 마음이지요.
한 기사¹에서는 오히려 스마트폰이 언어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에서 영상을 보는 데에만 익숙해져 스스로가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간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이 뜻에 공감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표현과 수용은 비대칭적으로 발달해 오는 듯합니다. 매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나, 그 정보들이 과연 얼마나 스스로의 삶에 필요한 것들일까요?
지난 학기에는 초정 강의를 듣고 한 학생이 강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정보를 수용해야 할까요?'라는 것이었지요. 그 질문에 강사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어떤 정보를 원하나요?'. 스마트폰 세상 속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쉽게 방향을 잃습니다. 무엇을 검색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가도, 결국 섬네일 등에 후킹이 되어 순식 간에 시간을 빼앗기기 마련입니다. 사실 스마트폰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은 그것을 변별해 낼 능력이 선행된 이후라야 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나 말하기 등 표현 활동을 통해 표현과 수용을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저는 글을 적고, 읽으며 희망을 봅니다. 브런치 스토리를 보면 수많은 희망들이 인간의 도구화라는 흐름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인간이 얼마나 소외되어 가고 있나요. 이는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인 활동을 할 자유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더 새롭고, 다양한 표현을 통해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1) 스마트폰, 아이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김준원, 정신의학신문, 2020.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