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달 Aug 22. 2023

온전한 공감

 오늘 학생 한 명이 다른 학교로 전학 갔습니다. 가기 전 아이들끼리 모여 송별 모임을 가졌지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으나 노란 조명 주위로 도란도란 모여 있는 모습이 아련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는 1년 반이란 시간을 우리 학교에서 함께 했습니다. 박 준 시인이 그랬던가요.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라고요. 다들 익숙함에 눈물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익숙해진 시간들이 늘 우리들의 마음을 문드러지게 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그 아이가 떠나는 이유 중에 어려운 인간관계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2학년이 되고 조금 더 씩씩해졌다고 선생님들에게 뜨문뜨문 칭찬을 듣던 아이였는데요. 그동안 아무도 그 마음을 모르고 있었던 게지요. 물론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버리는 것이 아쉽고 슬프지만, 저는 그 아이가 떠나는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읽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어긋나고 있었던 마음들을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따금 타인의 단편만 믿고 삽니다. 이는 진솔한 이야기를 터놓을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지요. 이 아이가 떠난 것도 저의 잘못된 믿음이었지 싶습니다. 조금만 더 깊게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 행동 속에서 부조화를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 아이는 자신과 맞지 않는 퍼소나로 살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을까요.

  다시금 듣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동안 숱한 상담을 통해 그 아이와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 아이는 겉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시인 이성부는 '슬픔을 직시하는 순간부터 희망이 차지할 공간이 생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의 슬픔을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겉으로 떠도는 그림자들을 보고 살아왔지요. 이는 헛된 생각들이 되고, 이 때문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투로 강요했지요. 그걸 조언이라고 여기며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 착각했습니다.

 비폭력 대화에서 '조언'이라는 것도 허락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어른들이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쉽게 믿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역사에 따라, 자라난 생각들이 늘 폭력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그 생각들이 아무리 좋은 해답인들,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듣는 조언은 마이동풍입니다. 조언을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깊게 끌어 당기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선 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퍼소나를 벗겨낼 수 있는 온전한 공감. 앞으로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오늘 전학 간 그 아이가 자신과 맞지 않는 퍼소나를 입고 살지 말고, 희망을 당당하게 노래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 글은 읽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