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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Jan 23. 2023

우리끼리 통하는 맛

다정한 위로 _오징어모젓


일주일 전에 오징어모젓을 담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기로 했는데 밑반찬으로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다.

1년에 한 번 이상은 꼭 해 먹었는데 지난 2년간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탓에 오징어모젓까지 만들 여력이 없었다.

갑자기 너무 먹고 싶기도 하고 나의 글을 읽고 오징어모젓을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게 맛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alcombok/1




비가 내리던 지난 주말 아침에 남편과 포항 죽도시장에 가서 오징어 세 마리를 사 왔다. (몸통으로만 모젓을 담그고 다리는 데쳐서 도라지와 초무침을 할 것이다)

활기 넘치는 시장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그리고 오랜만에 오징어모젓을 먹을 생각에 유독 설레었다.

얼른 집에 가서 모젓 담글 생각뿐이었다. 오늘 담그면 제일 먹기 좋게 맛이 들어있을 3일 뒤에 지인들을 초대할 예정이다.


시댁에 다녀오던 길이라 시간이 제법 지체되었다.

오징어를 손질하려는데 벌써 밤 아홉 시였다.

아이들도 재워야 하고 너무 피곤했지만 오징어가 조금이라도 신선할 때 해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손에 모터를 달기 시작했다.

손질한 오징어는 채 썰어 소주 한잔과 굵은소금을 뿌려두고 깍둑썬 무도 소금과 설탕에 절여둔 다음 아이들을 재울 준비를 했다.


너무 오래 두면 안 되는데...

어두운 방안에서도 온통 오징어걱정뿐이었다.

잠든 아이들을 뒤로하고 방을 나와 주방에 불을 밝혔다.

무가 적당히 재워져 있었다.

어디 한 번 시작해 볼까?


절여진 오징어와 무는 체에 밭쳐 물기를 뺐다.

잠귀가 밝은 막내가 깰까 봐 절로 고상해지는 손놀림에 제법 긴장감이 맴돌았다.

쪽파는 다듬어서 쏭쏭 썰어두었다.

그사이 물 빠진 오징어와 무를 양푼이에 넣고 고춧가루로 먼저 곱게 색을 입혔다.

다진 마늘과 생강을 넣고 올리고당 조금, 멸치액젓을 넣어 살살 버무린다.

조금 짜게 간을 맞추고 썰어둔 쪽파를 넣어 한번 더 버무리고는 밀폐용기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내일 저녁을 기약하며 김치냉장고에 넣고 나서야 두 다리 뻗고 잠이 들었다.


3일 뒤 오징어모젓이 제일 맛있을 그날에, 오기로 했던 지인에게 사정이 생겨 아쉽지만 결국 맛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 대신 내가 부지런히 먹었다.

너무 오랜만에 먹는 거라 열심히 먹었다.

다른 반찬이 많아도 자꾸 그것만 먹었다.


오징어젓갈과 달리 짜지 않은 거라 오래 두고 먹을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삭으면 오징어가 질겨지고 맛도 떨어진다.

삭기전이 얼른 먹어야 한다.






설날에 각자 시댁으로 간 자매들이 돌아왔다.

엄마도 없고 이제는 아빠마저 없고.

우리에게 친정은 '내 피붙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였다.

오늘 우리 자매들의 친정은 우리 집.

나도 시댁에서 며느리로 있다가 언니랑 형부랑 동생이랑 제부랑 조카들을 맞으러 우리 집으로 갔다. 


부랴부랴 커다란 압력밥솥에다가 찰밥을 짓고 버섯과 소고기를 듬뿍 넣어 전골을 끓였다.

그리고 오징어모젓을 꺼내 수북이 담았다.

일주일 안에 다 먹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먹었는데 아직도 남아있었다. 다행히 김치냉장고에 넣어서인지 팍 삭지도 않고 아직 괜찮았다.

오징어모젓을 좋아하는 언니에게도 맛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의 젓가락이 모젓으로 먼저 향했다.


모젓 진짜 오랜만에 먹는다.
미야 네가 담갔나? 생긴 게 딱 네가 한 거 같네~
주변에는 이걸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 다들 오징어젓갈이라고 하고. 설명을 해도 잘 모르더라. 우린 어릴 때 엄마가 진짜 자주 해줬는데...  맛있다 오징어모젓!



이건 무슨 반찬이냐고 묻지 않는다.

그냥 딱 보면 안다. 그들도 나와 같은 기억이 떠오른다.

나와 같은 것을 먹고 자란 자매들이 있어서 좋다.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매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나에게 추억이 가득한 음식은 나머지 넷에게도 그렇고,

나에게 그리움이 가득 묻은 기억이 나머지 넷에게도 그러하기 때문에, 참 좋다.

언니동생의 소울푸드가 나와 같이 오징어모젓이 아니라고 해도 추억과 그리움을 같이 나눠먹을 수는 있어서,

참으로 좋다.


남들은 이게 소울푸드냐고 묻지만 이들은 묻지 않는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이유를 알 것 같은 사람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엄마의 같은 음식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각자 좋아하는 음식의 종류가 다를 뿐, 딸 다섯 모두가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다 같은 마음일 테니까.



나는 오징어모젓을 담글 때마다 엄마생각이 나는데, 오징어모젓을 먹기만 하여도 그런가 보다.

엄마생각이 나나보다.

 

추억을 담은 음식의 힘은 놀랍도록 대단하다.

한입 먹기만 했을 뿐인데 시간을 거슬러 한참 전 그때로 금세 데려다 놓는다. 행복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내가 음식을 사랑하고 요리를 즐겨하는 이유다.


나도 그런 음식을 만들고 싶다.

소박하지만 웃음이 나고 좋은 기억이 떠오르게 하는 그런,

마음을 치유하는 그런 음식말이다.

혀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데워주는 따뜻한 음식으로 한입 먹을 때마다 행복해지도록, 오래오래 추억하고 싶도록,

한 그릇 가득 예쁜 사랑을 담아 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아이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음식으로부터 위로받는 특별한 경험이 내내 얼마나 힘이 되는지.

그것을 씹어 삼킬 때 잠시뿐이라고 하더라도 그때만큼은 인생의 단맛을 느끼게 해 줄 테니까.

마음이 고되고 지칠 때마다 두고두고 찾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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