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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Sep 07. 2022

나의 소울푸드


장 보러 시장에 다녀온 엄마의 양손에 검은 비닐봉지가 가득 들려있다. 그냥 보기에도 제법 무거워 보였다.

"미야 이거 냉장고에 넣어라"

엄마는 콧잔등에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바쁘게 식재료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아직 정리하지 않은 봉지를 그대로 소쿠리에 쏟아부었다.

오징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징어!

"엄마, 오징어로 뭐하게?"

"모젓 담그지머"


삭 삭 삭 삭. 무를 써는 경쾌한 소리. 아직 오징어는 썰지도 않았는데 나는 벌써 설렌다.

고춧가루에 빨갛게 물든 무만 봐도 꿀떡꿀떡 침이 절로 넘어간다.

마침내 먹기 좋게 썰린 오징어가 바가지안으로 들어가고 살살 양념에 버무리니 조금은 찰지게 비벼졌다.

엄마가 간 보라고 무랑 오징어를 입에 넣어줬다.

맛을 느끼기도 전에  "탁! 탁!"  엄마가 모젓을 담은 김치통 뚜껑을 닫아버렸다.

내일 먹어야 한단다.. 지금 당장 밥 두 그릇도 먹겠구만..쩝.

다음날 밥상에 어김없이 올라온 모젓. 오목한 그릇에 가득 담겨있다.

물에 말아 밥 위에 올려먹는 게 맛있단다. 큰언니를 따라서 밥공기에 시원한 보리차를 부었다.

언니는 무만 골라먹는다

앗싸아~!

나는 오징어 두 개에 무도 하나씩 같이 올렸다. 쫀득쫀득하고 시원하고 아삭하고.

맛있게 먹는 우리를 보느라 엄마는 밥도 입에 넣지 않고 빈 수저를 손에 든 채 옅은 미소만 보이신다. 정말 평생 이것만 먹고살래도 나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어느덧 엄마가 돌아가신 지 15년이 지났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엄마가 그립지 않은 날이 없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된 거 같은데 갑자기 터지는 그리움엔 당해낼 도리가 없더라..

그러니까 그때가 엄마가 떠나고 몇 해가 지났을까.

여름이 오고 있었고 모젓이 너무 먹고 싶었다. 아니 모젓은 늘 항상 먹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였는지 밥하는 엄마 옆에서 늘 붙어있었던 거 같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웬만한 음식은 곧잘 맛을 낸다. 먹어본 음식이면 비슷하게는 따라 할 수도 있다.

근데 모젓은 예외였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다. 분명 엄마가 모젓을 담글 때마다 늘 보았는데, 항상 간도 내가 봤는데, 마치 그 부분의 기억만 도려낸거같았다.

너무 먹고 싶은데 파는데도 없고 언니들도 모른다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름도 엄마가 모젓이라 하니 그런 줄 안 거지 모젓으로 검색해도 뭐 나오는 게 없더라.

경상도에서만 먹는 음식인가?

결국 내 맘대로 담그기로 했다.

김치 같은 거니 액젓도 좀 넣고 다진 마늘도 넣고, 아마 설탕도 넣었을 거야, 고춧가루는 당연히 들어가고. 보기엔 그럴싸했다. 사진을 찍어 언니들에게 자랑도 했다.

하루가 지나고 맛을 보는데 뭔가 부족했다. 답답하고 속상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맛이 아니라서 밥 먹다가 괜한 생각에 울음이 터져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좀 배워둘걸 싶었다. 우리 엄마는 왜 없는 건가 분해서 펑펑 울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모젓을 담갔다. 부족한 맛을 찾기 위해 조금씩 넣어가며 내 방식대로 계속 담가먹었다.

이제 내 입맛에 맞는 모젓이 만들어졌는데 예전 우리 엄마가 해준 그때 그 맛이 생각이 안 난다.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도무지 생각이 안 나서 또 울었다. 다시는 그 맛을 볼 수없다는 게 그렇게 슬펐다.



이제 모젓을 먹으면서 울지는 않지만 모젓을 담글 때면 항상 엄마 생각부터 난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보다 지금 더 좋아하는 반찬이 되었다.

엄마 음식을 먹어 본 지 오래되어 이제 내가 기억하는 맛이란 건 없지만 우리에게 먹이려고 힘들게 장 봐오고 조금이라도 싱싱할 때 담그려고 서둘러 손질하던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나에게 있어 엄마의 음식은 <위안>이었다.

엄마가 몸이 아프던 날엔 전날 먹었던 음식을 데워먹거나 우리끼리 간단히 차려먹는 날도 많았기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 음식 냄새가 풍기고 압력밥솥의 추가 현란하게 회오리치면 마음이 놓이곤 했다.넉넉한 형편은 아니었기에 외식 한 번 한적은 없었어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소박한 그 밥상이 나는 좋았다.  엄마에게는 힘이 들었겠으나 나에게는 힘이 되었다.

  내가 엄마의 음식을 좋아했던 건 당연히 맛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요리를 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좋아서다.

요리라는 건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좋은 맛이 날 수가 없다. 아무리 손맛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억지로 대충 뚝딱 만들어 낸 음식이 맛있을 리 없을 것이다. 그 말은 또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정성을 쏟은 음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맛있는 엄마의 음식을 먹으면 엄마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어도, 엄마의 따뜻한 품에 포옥 안겨 숨이 막혔던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 허기졌던 나의 마음이 엄마의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면 같이 채워졌다. 없는 살림에도 정성껏 차려 낸 우리 엄마의 음식은 내 몸을 키워주었고 마음을 자라게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이려고 욕심부려 밥상을 차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충분히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많이 얘기해주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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