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마당으로 놀러오세요
고래창대기와 짜개놀이
우리 엄마는 장난감을 정말 안 사주셨다. 내 기억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딸만 다섯인 집에 그 흔한 인형도 없었으니까.
한 번은 옆집 언니가 종이인형을 샀다고 인형놀이를 하러 오라고 했는데 갑자기 종이인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급한 대로 연습장에 사람과 옷을 그린 것을 오려서 들고 갔는데 종이가 힘이 없으니 내 인형만 자꾸 앞으로 고꾸라져서 인형놀이를 하는 내내 배꼽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집에 장난감이 없으면 없는 대로 노는 데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엄마나 언니들에게 배운 놀이도 하고 우리가 새로운 놀이를 만들며 놀기도 했다.
다른 집에 놀러 가면 블록이나 미미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었지만 금방 싫증이 났고 우리 집에서 노는 게 더 좋았다.
다섯 명이나 되다 보니 우리끼리만 놀아도 시끌벅적하고 재미있었는데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새어 나가면 자연스레 동네 아이들은 하나 둘 우리 집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주말은 물론이고 방학이라도 하면 아이들은 한 달 내내 우리 집 마당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집은 마당이 없거나, 있어도 시멘트 바닥이거나 돌이 많이 박힌 고르지 못한 마당이었는데 우리 집 마당은 아빠가 고운 흙을 채워다가 손수 다져놓아 뛰어놀기에는 그만이었다.
아침밥은 먹고 오는 것인지 아침 댓바람부터 놀자고 찾아오는 아이도 있고, 놀고 있으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둘 모여들었다. 하루 종일 마당에서 뛰어놀고 저녁이 되어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모이면 사방치기도 하고 비석 치기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했지만 가장 많이 한 놀이는 단연 고래창대기였다.
언니가 물뿌리개를 들고 바짝 마른 흙마당에 물을 뿌리며 대문 앞까지 뛰어갔다 오면 어느새 마당 위에는 길고 구불구불한 고래 창자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위에서 우리는 편을 갈라 서로 밀고 당기며 한바탕 체력전을 하였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는 항상 버리는 카드였던 것 같다. 끝까지 남아 이겨 보겠다고 제법 깐지게 버텨보려 해도 그럴 리 없었다. 선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가면 분하고 억울하고 아쉬운 마음에 쌕 쌕 거리며 꼭 한 번은 눈물바람을 했다.
물기가 말라 고래 창자 그림이 사라지면 다른 놀이를 시작한다. 구멍 난 양말 안에 모래를 넣어 만든 주머니로 오재미 놀이도 하고 검은 비닐에 십 원짜리 동전을 넣어서 반듯하게 접고 잘라 제기를 만들어서 차고 놀았다. 필요한 것을 만드는 것 또한 우리 놀이의 일부였다.
우리 집 마당의 한쪽 모퉁이에는 수십 개의 돌멩이들이 늘 있었는데 온 동네를 돌며 동글동글 예쁜 것들만 모아 둔 것이었다. 자갈보다는 조금 큰 일정한 크기의 돌로 짜개 놀이를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나에게는 보물과도 같았다.
엄마와 언니들에게 배운 짜개 놀이는 공기놀이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많은 돌을 가지고 하는 것인데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기도 했다. 던진 돌을 받다가 손을 다치기도 하고 흙먼지로 손이 뿌옇게 금세 더럽혀졌지만 온종일 그것만 하고 놀아도 재미있었다. 어스름 짙은 저녁이면 마당에 불을 밝혀서라도 짜개를 던지고 받았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혼자 앉아서 연습까지 했다. 가끔 엄마가 마주 앉아 짜개를 받는 걸 보여주며 옛날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흙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수십 개의 돌을 펼쳐놓고 던지고 받던 그 놀이는 재미도 재미지만 "딱 딱", "짜그르르" 하고 돌멩이끼리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돌이 크고 무거울수록 좋은 소리가 났다. 돌을 모을 때는 그것까지 생각해서 줍는다. 꼭 동그랗지 않아도 괜찮지만 날카롭지 않아야 하고, 단단해서 잘 깨지지 않으며 너무 작지 않으면서 손에 쏙 들어오는 돌멩이.
길을 다니며 짜개 놀이를 하기 좋을 만한 돌을 줍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예쁜 돌을 주우면 조금 못생긴 돌과 바꿔가면서 그렇게 차츰차츰 나만의 아이템을 완성해갔다. 돌멩이 대체 그게 뭐라고 옆집에 있는 것보다 내가 모은 게 더 놀기 좋고 보기 좋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일요일 아침에 기다란 대나무 빗자루로 마당을 쓸던 아빠에겐 눈엣가시였을지도 모른다. 짜개 놀이를 하기 위한 거라고 몇 번을 말해도 그렇게 쉽게 나의 귀한 보물들을 집 앞 탱자나무 아래로 내던져버린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빠는 몰랐겠지만 진짜 내가 아끼는 예쁜 돌들은 녹이 슨 분유통에 넣어 평상 밑에 잘 모셔놓았으니.
시대는 많이 변했고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라도 그때와 지금은 노는 방식부터 많이 달라졌다. 흙을 밟으며 놀 곳이 없어 돈을 주고 모래놀이를 한다. 마음껏 뛰어놀게 해 주려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만 고무매트가 깔린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탄다. 장난감의 수준도 너무 높아져 장난감 가게에 가면 나조차도 정신을 놓고 보게 된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과연 엄마 어릴 적처럼 놀고 싶어 할지는 의문이지만 딸들이 조금 크면 함께 짜개 놀이를 꼭 해보고 싶은데, 기억이나 날까 모르겠다.
마당 이쪽 끝에선 짜개 놀이를 하고, 저기에선 사방치기를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무궁화 꽃이 피는 순간엔 기를 쓰고 도망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대단한 놀이기구나 장난감이 없어도 늘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우리 집 앞마당, 그 시절 꼬마 녀석들을 모두 데리고 그 마당으로 놀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