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한복이 Sep 07. 2022

네가 와서 봄이다

봄의 냄새

  빨간 소쿠리에 까만 비닐봉지, 호미와 작은 칼. 내 기억 속 가장 어리던 날부터 매년 봄이면 우리는 엄마 뒤를 따라 밭으로 봄나물을 캐러 다녔다.

  달래, 냉이, 돌나물, 쑥이 그것이다.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일 때, 총총 썰어 마지막에 한가득 올려주었던 달래.

  달래를 캘 때는 알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아무 땅이나 헤집는 게 아니라 먼저 눈으로 훑어보아 달래를 찾아내는 게 우선이다. 언뜻 보면 부추처럼 생긴 잡초와 헷갈리기 쉽다. 쪽파처럼 둥글고 길게 나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가느다랗다.

  내 동생은 자주 허탕을 쳤다. 하지만 나는 달래를 찾아내는 데에 꽤 정확했다. 훗!

  달래를 찾았다면 조금 깊게 호미질을 한 뒤 흙을 살살 털어낸다. 그러면 귀여운 알뿌리가 보일 것이다. 그때의 쾌감이란! 그걸 찾는 게 나는 그렇게나 재미있었다. 혹시 부추 같은 잡초에 호미질을 했다면 수염 같은 뿌리가 탄식과 함께 나올 것이다. 내 동생처럼.

  엄마가 나물 캐러 가자하면 나는 달래만 찾아다녔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거니까.

  반면에 냉이 캐기는 내가 제일 싫어했다. 내가 성미가 급한 건지 모르겠으나 뿌리가 생각보다 길어서 끝까지 다 캐내자면 좀 지루했다. 그래도 잘 캐내지기만 하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반도 못가 뿌리를 똑 끊어 먹기 일쑤였다.

  "에헤이~ 냉이는 뿌리 먹을라고 캐는 나물인데..."

  동생 앞에서 엄마에게 핀잔 듣기 딱 좋았으니 내 눈앞에 냉이가 있어도 그냥 모른 척 지나치곤 했다. 그 덕에 얼마 뒤 그것들은 줄기를 곧게 세워 작고 귀여운 하얀 꽃을 피워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뿌리까지 지켜낸 냉이는 된장을 슴슴하게 풀어 국을 끓이거나 무침으로 밥상에 올랐다. 나는 냉이무침을 밥에 비벼 먹는 게 좋았다. 캐는 건 재미없고 싫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냉이는 너무 좋아하는 나물이다.

  돌나물은 굳이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우리 집 앞마당에 있었다. 마당과 텃밭을 구분 짓는 크고 작은 돌덩이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올망졸망하게 아주 바글바글하였다. 나물이라 하기엔 제법 예쁘게 생긴 돌나물이 아까운 마음에, 굳이 잘 자라고 있는 걸 뿌리째 캐다가 화분에 심었던 바보짓이 기억이 난다.

  엄마는 돌나물을 초고추장에 겉절이처럼 무쳐 주기도 하고 물김치를 자주 담가 주셨다. 오이와 돌나물이 주재료였는데 모든 물김치가 그렇겠지만 이 물김치는 특히 더 시원한 게 입맛을 돋우는데 그만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쑥은 캔 다기보다는 뜯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다른 나물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다.

  땅에 붙어 자란 어리고 보드라운 쑥 위에 칼을 대고 그냥 땅을 한 번 쓰윽 가르면 그만이다. 나는 막 뜯어 낸 쑥을 코에 갖다 대고 향을 맡는 게 좋았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보약을 마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엄마는 쑥으로 보통 국을 끓이거나 쌀가루에 버무려 쪄주곤 하였는데 그럴 때면 온 집안에 내가 좋아하는 쑥향이 가득했다. 그렇게 냄새만 맡으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도 쑥국은 먹기가 싫었다. 쑥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게 쑥국 이건만 내가 생각하기로 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좋은 걸 안 먹는다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었지만 별 맛도 모르겠고 느끼하기만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는 봄나물을 캐러 다닐 일이 없었다. 하긴 요즘은 마트에만 가도 웬만한 봄나물을 쉽게 구할 수 있긴 하다.

  결혼한 뒤론 거의 매년 어머니와 쑥을 뜯으러 다닌다. 도시에 살지 않은 덕분에 시댁 주변에는 쑥밭이라 해도 될 만큼 깨끗하고 보드라운 쑥이 가득 자란다. 둘이서 한 시간 남짓이면 제법 자루가 수북하다.

  마당에 자루를 쏟아부어 함께 딸려온 잡초도 걷어 내고 억센 줄기를 다듬는 등 한번 더 쑥을 골라낸다. 어머니는 집에 가서 국 끓여 먹으라며 봉투 하나를 내미시고 남은 쑥은 큰 대야에다가 담아 놓으셨다.

  아마 하루 이틀 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쫀득한 쑥떡을 가져다주실 것이다.

 -약이니까 냉동실 넣어두고 하나씩 꺼내 먹어라~ 애들도 먹이고.


  집으로 들고 온 쑥을 두고 늘 고민한다.

  국을 끓일 것인가 말 것인가.

  어차피 끓이지 않을 거면서 꼭 한 번 고민하는 척한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 식구들도 쑥국은 잘 안 먹는다. 몇 술 떠서 맛보는 게 다다.

  그래도 이맘때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쑥을 먹이고 싶은 맘에 고민하다가 한 번 튀김으로 식탁에 내놓았는데 세상에! 아이들이 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가 없다. 그 뒤로 우리 집에서 쑥은 무조건 튀김이다.

  손 끝에 쑥 냄새가 진하게 베였다.

  너로구나. 마침내 봄이 왔구나!


  집안 가득 향기로운 쑥 냄새가 진동을 하면 오래전 엄마를 따라 밭둑길을 걷던 때가 생각난다. 그곳에는 건강한 엄마와 귀여운 동생 그리고 가는 손목에 까만 비닐봉지를 매달고 달랑달랑 흔들며 걷는 어린 내가 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차려주는 그리운 밥상이 있다.









이전 05화 나의 소울푸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