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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Mar 13. 2023

냉동실에서 곤히 자던 밥도둑

코다리찜


우리 집 냉동실을 책임지고 꽉 채우는 아이들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청양고추.

어머님이 손수 키우셔서 한여름 땡볕에 따다 보내주신 고추다.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편이라 땡초를 많이 쓸 일이 없어서 찌개 할 때나 한두 개씩 넣어 먹는 게 전부이다 보니 한 봉지 받아놓으면 1년 동안 고추 사러 갈 일이 없다.


두 번째는 육류다.

아이들이 고기를 잘 안 먹는 편이다 보니 조금씩이라도 자주자주 먹이려고, 그리고 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엄마아빠가 먹고 싶을 때 언제라도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명절마다 박스로 들어오는 코다리이다.

남편의 아는 형님께서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보내주시는 코다리는 부피가 너무 커서 보관하기가 까다롭다. 크지 않은 우리 집 냉장고가 원망스러울 정도이다.


처음엔 커다란 지퍼백을 사다가 두세 마리씩 소분해 놓고 냉동실에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꾸역꾸역 넣어놓았다. 빨리 먹어 없애려고 일주일에 두 번씩 부지런히 조려먹었다.

코다리조림을 참 좋아하지만 사실 내 돈 주고는 잘 안 사게 되던 식재료이다 보니 처음엔 엄청 잘 먹긴 했는데 설에 한 박스, 추석에 한 박스는 점점 감당이 어려워졌다.

그래도 생각해서 보내주신 좋은 상품이라 오래 두거나 버릴 수는 없어서 시댁에도 보내드리고 친정에도 나누고 가까운 지인들과도 나눠먹었다. 겨우 냉동실 코다리들을 다 비웠는데 지난 설에 또 보내주신 한 박스로 냉동실은 다시 채워지고 말았다.






오늘 점심은 또 뭘 먹나...

냉장고 문을 열고 쓱 훑어보다가 평소에는 귀찮아서 일부러 쳐다보지 않고 건너뛰던 코다리를 이제는 먹어야 할 것 같아서 큰맘 먹고 꺼냈다.


이번 설에는 그전보다 훨씬 굵직하고 큰 녀석들이 왔다


사실 코다리는 언뜻 커 보여도 머리를 자르고 꼬리를 잘라내고 나면 양이 얼마되지 않아서 늘 서너 마리씩 조렸는데 이번에는 두 마리만 꺼냈다.


점심때 코다리 어때?
빨갛게 할까 하얗게 할까?
어쩐지 매콤 달달한 게 먹고 싶네.


나도 그랬어 우리 통했네!

또 신이 나서 손질하기 시작했다. 막상 하면 별거 없는데 뭐든 시작하기 전엔 왜 그리 귀찮은 건지 모르겠다.



우선 양념장부터 만들어서 고춧가루가 불릴 시간을 준다.

진간장에 멸치액젓을 조금 섞은 후 고춧가루를 뻑뻑할 정도로 넣고 다진 마늘을 크게 한 숟갈 반을 넣었다.

잡내제거를 위해 맛술도 한 숟가락 넣고 올리고당과 매실청으로 단맛을 조절한다. 다진 생강을 넣으면 좋은데 없어서 생강가루를 넣었다. 나는 다진 마늘과 생강을 좋아해서 듬뿍 넣는 편인데 음식을 먹다가 생강이 씹히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으로 후추를 갈아 넣고 양념장을 잘 섞어두었다.


1시간 전쯤 미리 꺼내놓아 살짝 녹은 코다리는 손질하기 딱 좋았다.

코다리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갈라진 배를 열면 까만 막이 붙어있는데 그것도 손으로 떼어내고 내장도 씻어낸다.

넓은 팬에 물을 받고 코다리 대가리를 잘라 육수를 우려낸다.


코다리손질은 칼보다 가위가 편한 것 같다.

가위로 내 눈에 징그러운 지느러미를 자른다.

깔끔하게 손질된 걸 좋아하지만 아가미 부분과 꼬리만 자르고 몸통에 위아래로 있는 것은 그냥 두었다. 바짝 잘라내면 코다리가 익고 난 뒤에 반으로 갈라져 살과 뼈가 쉽게 분리되고 지저분해진다.

조림을 할 때는 코다리를 3~4 등분해서 조금 작게 손질하는 게 먹기도 좋고 조리기도 좋은데 오늘은 찜을 할 거라서 크게 딱 반만 잘랐다.


한창 코다리를 들고 이리저리 돌리고 있으니 심쿵이가 다가왔다.


엄마! 이거 뭐야? 움직이는 거 아니지? 나도 한 번만 만져봐도 돼?
윽.... 얘 상어야? 왜 이렇게 무섭게 생겼어?


생긴 건 이래도 곧 맛있는 반찬이 될 거라고 했더니 우웩! 하며 구역질을 하는 척하며 줄행랑을 쳤다.


너무 징그럽고 맛없어 보여. 나한텐 절대 주지 마, 난 안 먹을 거야아~~~



손질한 코다리를 쟁반에 담아두고 뒷베란다에서 돌돌 묶인 포대기를 열어 무를 하나 꺼냈다.

12월 말에 김장을 하고 남은 무를 어머니께서 비닐포대기에 넣어서 시원한 베란다에 보관하라시며 주셨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나물도 볶아먹고 무생채도 무쳐먹고 어묵탕에도 넣어먹고 된장찌개에도 감자대신 넣어 끓여 먹었는데도 아직 5개가 남아있었다. 작년엔 바람도 들고 수분이 빠져 퍽퍽해진 바람에 몇 개 버렸는데 올해는 보관을 잘한 건지 무가 좋은 건지 신기하리만큼 아직까지도 멀쩡했다.


코다리찜에서 코다리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무다. 다 조려지고 나면 코다리만큼 맛있을 예정이기에 조연이라고 하기엔 어쩐지 억울하다.

욕심에 무 하나를 다 넣을 요량으로 적당히 큼직한 것을 골랐다. 뿌리를 잘라내고 깨끗하게 씻어 코다리의 크기에 맞게 큼직큼직하게 썰었다. 너무 얇으면 부서질 수 있으니 적당히 도톰한 게 좋다.

사실 코다리찜에는 코다리와 무만 있어도 충분한데 예쁜 색감을 위해 고명으로 올려줄 대파와 청양고추 3개, 홍고추 1개도 썰어두었다.


어느새 육수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팔팔 끓어올랐다. 부들부들해진 대가리를 건져내고 무를 넣는다.

생선은 금방 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리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를 먼저 익혀주는 게 좋다.

무가 투명하게 익으면 양념장을 반정도 넣어 센 불에 끓인다. 사실 이렇게 양념장에 무만 조려 먹어도 밥반찬으로 그만이다.

벌써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꼬마들도 냄새를 따라 쪼르르 왔다가 빨간 양념을 보고는 실망하며 돌아갔다.


무에 색이 곱게 입혀졌으면 손질한 코다리를 넣고 남은 양념의 반을 위에 올리고 중간불로 줄여 뚜껑을 닫고 조린다.

바글바글바글 끓는 소리가 냄새를 따라 뚜껑밖으로 새어 나왔다.


엄마. 참을 수가 없어. 한 번만 열어서 보여주면 안 될까?


아이를 안아 올려 냄비 속을 함께 확인했다.

무에서도 수분이 빠져나오기는 하지만 양념장을 넣었기 때문에 타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한다.

국물이 반정도 남고 졸여지면 코다리위로 국물을 끼얹어가며 졸인다. 살이 부서지지 않게 조심조심 자리도 바꿔가면서 골고루 양념장이 베이도록 한다.

살짝 간을 보고 남은 양념장을 다 넣어주었다.


입맛을 다시며 호기심에 맛을 보고 싶다던 아이의 혀끝에 식힌 국물을 살짝 찍어줬더니,


이거 아까 그 상어야? 상어에서 이런 맛있는 냄새가 난다니.
음~ 하나도 안 맵고 맛있기만 해. 나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놓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목이 마를 뿐이라고 큰소리를 냈다.
남편도 냄새에 반응을 했다. 다들 어지간히 배가 고픈가 보다. 얼른 밥상을 차려야겠다.


대파와 고추를 위에 올리고 뚜껑을 덮어 약한 불에서 3분 정도 더 졸인 뒤 제일 넓은 접시에 옮겨 담아 식탁에 올렸다.






때맞춰 취사도 끝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다 양념에 듬뿍 찍은 코다리 한 점을 올려 후후 불며 먹었다.

특별히 양념이 맛있게 쏙 베인 무도 밥 위에 올려 곱창김에 싸서 한입 크게 넣으며 남편이 그랬다.


코다리를 너무 많이 나눠줬나.... 먹으니까 또 맛있네....


우리는 볼이 터져라 밥숟가락을 밀어 넣으며,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면서 한바탕 웃었다.

남편 친구네에 반박스를 보내줬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재료 준비하는 것도 번거롭지 않고 조리과정도 복잡하지 않은데 마음먹고 시작하기까지가 오래 걸린다.

희한하게 나에게는 생선요리가 그렇다.

고기는 암만 많아도 오래 넣어둘 일이 잘 없는데 생선은 마음을 먹어야 꺼낸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맛있게 잘 먹으면서. 괜히 귀찮다. 그래서 잘 안 사게 되나 보다.


말 나온 김에 몇 마리 남은 코다리랑 반건조 생선들도 얼른 꺼내 먹어치워야겠다.

다음번에는 코다리를 꽈리고추 듬뿍 넣고 간장양념으로 심심하게 조려서 불에 그슬린 곱창김에다 싸 먹어야지.

기름 좔좔 흐르는 노르웨이 고등어랑 유난히 고소한 임연수랑 쫀득하게 잘 마른 물가자미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강원도의 어느 생선구이집 흉내 내봐야지.

그날은 걸쭉한 막걸리도 한 사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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