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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Mar 25. 2023

집 나간 입맛에 제격

봄나물 약초전


어제저녁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아파트 앞으로 나갔다.

쥐어주신 큰 종이가방 안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몇 개 들어있었다.


저녁약속 있어서 나왔는데 이거 주고 갈라고.
이거는 파김치 쪼매 했는데 맛도 없더라. 그래도 한 번 맛이나 봐라.
이거는 김치하고 남은 파고. 부드러워서 전 꾸워 무니까 맛있대. 너거 아버지 하고 둘이 꾸워가 맛있게 뭇다. 이거는 행사하고 받은 빵인데 애들 간식으로 주고...
이거는 나물이다.


네~ 잘 먹을게요 어머니! 운전조심하세요~


저녁약속 시간이 다 되신 어머니를 서둘러 보내드리고 부피만 컸지 그렇게 무겁지 않은 가방을 달랑달랑 흔들며 들어왔다. 집에 와서 까만 비닐을 하나씩 풀었다.

취나물이 한 봉지 나왔다. 나물이라 하시기에 애들 좋아하는 삼색나물이겠거니 했는데 생각지도 한 취나물이 반가웠다.

봄이 오긴 왔나 보다.






매년 봄이면 어머님께서 취나물을 보내주신다. 마을에서 취나물농사를 많이 지으시기 때문이다.

시댁 앞마당에 작은 텃밭에도 취나물이 자란다. 어머님이 키우시는 취나물은 시부모님보다 우리가 더 많이 먹는다. 취나물이 자라기가 무섭게 우리 집으로 보내주신다.

봄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갖다 주시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아파트 카페를 통해 주민들과 나눠먹을 정도이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봄마다 우리 집에 '취나물 폭탄'이 떨어진다고 한다.

어머니는 취나물이 쑥쑥 올라온다며 그냥 두기엔 아까우니 주변에 지인들과 나눠먹으라고 부지런히 뜯어다 일부러 더 갖다 주신다. 줄기가 보드라울 때 먹어야 맛나기 때문이다.




손질까지 해서 담아주신 올해 첫 취나물과 중간중간 낀 방풍나물



나도, 아이들도 나물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취나물은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적당히 데쳐서 다진 마늘에 소금, 참기름으로만 간간하게 무쳐놓으면 봄에는 이만한 반찬이 또 없다.

된장에 무쳐먹어도 향긋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봄철 내내 취나물을 이렇게 많이 보내주시는데 나물반찬으로만 먹으면 절대 다 못 먹는다.


말이 나온 김에 잠시, 매년 엄청난 양의 취나물을 해 먹어본 사람이 인정하는 취나물요리 몇 가지를 추천해볼까 한다. 물론 우리 집처럼 감당이 안될 만큼 취나물폭탄이 떨어질리는 잘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취나물 무침 외에 다르게 먹어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첫 번째는 김밥이다. 똑같이 무친 나물이라도 김밥 안에 넣으면 맛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내 입맛에는 미나리를 넣은 게 제일 맛이 좋은데 그다음으로 취나물 김밥이다.


두 번째는 장아찌다. 끓인 간장을 부어 삭힌 것인데 고기 먹을 때 곁들이면 좋다. 이왕 장아찌를 만들 거라면 두릅도 함께 할 것을 추천한다. 취나물이 많아서 감당이 안된다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를 꼭 만들어보길 바란다.


세 번째는 볶음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에 가면 꼭 먹는 공심채(흔히 모닝글로리라고 부른다) 볶음은 남편과 내가 참 좋아하는 메뉴이다. 요즘은 우리나라 마트에서도 공심채를 쉽게 구해서 먹을 수 있지만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먹곤 했다. 그러다가 냉장고 채소칸에 가득 든 취나물을 공심채처럼 볶아서 먹어봤다가 눈을 뜨게 되었다. 이제는 무침보다 오히려 볶음을 더 좋아한다.

기름에 마늘(편마늘 혹은 다진 마늘)을 볶다가 어슷 썬 홍고추(혹은 페페론치노)와 취나물을 넣어 볶는다. 양념은 피시소스에 설탕 약간 그리고 물을 미리 섞어두고 재빨리 볶아낸다. 피시소스가 없다면 굴소스를 넣어도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부침개인데 오늘 우리 집 저녁메뉴이기도 하다.



남편이 몇 년 만에 몸살이 났다. 편도가 평균이상으로 커서 잘 붓는 것 외에는 잘 안 아픈 사람인데 몸살이 세게 왔는지 며칠을 끙끙 앓았다. 뭘 해줘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하루종일 비도 오고 날씨도 제법 쌀쌀해서인지 계속 따뜻한 국물 생각만 났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도 국물생각이 났는지 저녁메뉴로 우동을 외쳤다. 불고기 전골을 할까 하고 고기를 꺼내놓았는데 급하게 메뉴를 변경하기로 했다.


우동 육수를 내면서, 여러 가지 하기 귀찮은데 우리도 그냥 우동을 먹고 치울까 하다가 차마 아픈 사람에게 면을 먹을 수는 없어서 밥을 안쳤다.

우동에 넣을 고기를 조금 남겨두고 불고기도 재웠다. 여기에 어제 끓여둔 콩나물국을 먹어야겠다 싶었는데 날씨 탓인지 자꾸 기름냄새가 맡고 싶어졌다.

무의식 중에  냉장고를 열었다. 생각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봤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남은 달래 한 줌, 불고기에 넣고 남은 표고버섯 2개, 참치쌈장에 쌈 싸 먹고 남은 곤달비 몇 장, 어머님이 보내주신 쪽파 몇 뿌리와 방풍나물 그리고 취나물까지.

모아놓고 보니 먹고 남은 것들이라고 하기에는 아까울 만큼 푸짐했다.


밖에 비도 오는데 전 구워 먹을까?
괜찮아. 그냥 간단하게 먹어도 돼.
응?? 뭐라고? 먹고 싶지 않다는 뜻이야?
아니, 구우면 맛있게 먹겠지만 준비하려면 자기 힘드니까. 간단하게 먹어도 괜찮다고.


뭐라는 거야. 먹겠다는 말을 뭐 저렇게 길게 하는 거야.


몸에 좋은 약초전 해먹자. 밖에는 부슬부슬 비도 오고 집에는 비실비실거리는 사람도 있으니.


다행인지 뭔지 중얼거리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는 못한 것 같다.



꺼내놓은 재료들을 서둘러 손질하기 시작했다.

쪽파와 방풍나물, 취나물은 어머님이 깨끗하게 손질해서 보내주신 덕에 시간을 벌었다. 재밌는 소일거리(나에게는 재미있는 나물 다듬기)는 놓쳤지만 말이다.


그 사이 팔팔 끓고 있는 우동 육수에서 멸치와 가쓰오부시를 건져내고 쯔유로 심심하게 간을 한 다음 소고기를 먼저 넣어 살짝 익혔다. 떠오르는 거품을 걷어내고 우동면과 표고버섯을 넣어 익힌 뒤 쯔유로 마지막 간을 맞추고, 제발 밥 좀 달라는 내용의 자작 뮤지컬을 해대는 아이들의 밥상을 먼저 차리기로 했다.

밥과 우동,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이무침과 콩나물무침, 미역줄기볶음, 만가닥버섯볶음을 내주었다. 우동위에 가득 올린 고기를 보고 다 먹어야 하냐며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통통한 우동면발 하나를 맛보고는 한 손엔 숟가락, 한 손엔 젓가락을 들고 쌍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비 오는 날엔 국물이 최고야~ 엄마도 한번 먹어봐.


아니, 엄마는 찌짐 부쳐 먹을 거야.

급한 불을 껐으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편안한 마음으로 양푼이를 하나 꺼내 부침가루를 차가운 물에 개었다. 전을 할 때 물에 부침가루를 넣으면 양조절을 실패할 확률이 높다. 정확한 양을 계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꼭 부침가루에 물을 붓도록 한다.


나물들은 찢어먹기 좋도록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넣고 표고버섯도 얇게 썰어 넣었다. 달군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국자로 반죽을 두 국자 떠서 올렸다. 숟가락으로 평평하게 잘 펴서 얇게 눌러주면서 노릇노릇 구워냈다.


아, 어째서 비 오는 날에는 기름냄새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것일까. 고소한 기름냄새에 또 꼬마들이 줄을 섰다.




엄마, 내가 간을 한 번만 볼게.


엄마가 요리를 하면 기미상궁이라도 된 냥 서로 간을 봐주겠다고 성화다.

한 녀석은 짜다 하고 한 녀석은 싱겁다 하면서 엄마를 헷갈리게 하긴 하지만 저녁밥상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치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나 할까.

왔다 갔다 하면서 요리하는 엄마보다 간을 더 많이 보는 날에는 유독 식사를 맛있게 잘 먹는다. 음식이 입에 맞으니 간도 두 번 세 번 더 보러 오는 거겠지만.


약초전의 쌉싸름한 맛 때문인지 오늘은 아이들이 두 번 걸음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애초에 먹겠다고 했던 우동과 나물반찬은 그새 싹싹 비워냈다. 비록 우동안에 있는 소고기는 배가 너무 불러서(?) 다 먹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불고기까지 마무리하고 우리도 드디어 식탁에 마주 앉았다.

따끈한 전을 젓가락으로 쑤셔 듬성듬성 찢기가 무섭게 남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음~ 맛있다! 집에 나물이 있었나?


별거 아닌 음식에도 늘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는 입이 있어 요리할 맛이 난다. 

남편의 반응을 살피고 나도 양념간장에 살짝 찍어 한입 크게 먹어보았다. 다른 전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맛과 향이다.

약초를 한가득 씹는 것처럼 건강해지는 맛이다.

학기 초라 늘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느라 몰랐는데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음식을 바쁘게 입에 넣으면서도 지천에 널려있을 봄 생각에 괜히 서두르고 싶어졌다.


비도 그치고 날도 다시 따뜻해지면 더 늦기 전에 어머님이랑 쑥 캐러 가자고 해야지. 바싹하게 튀겨서 한 입 물면 입안에서 으스러지는 쑥튀김은 올해도 꼭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 쑥떡은 어머님이 해주시겠지?


어머님댁 앞마당에 올라온 취나물도 더 뜯어와서 버섯이랑 같이 올려 밥도 해 먹어야겠다. 냉장고에 남아도는 견과류들 다져 넣고 고소하게 양념간장 만들어서 비벼먹으면 진짜 맛있는데...


곰취나물은 살짝 데쳐서 쌈밥 해 먹어야지. 명란젓에다가 고춧가루, 다진 마늘, 쪽파, 참기름, 깨소금 섞어서 쌈밥 안에 같이 넣어 말아야겠다. 생 곰취나물은 삼겹살 구워서 싸 먹는 게 맛있지, 쌈장 가득 찍은 풋고추도 같이 말이야.


참, 참, 돌나물도 먹어야지, 그건 오이랑 당근 넣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김치 해야지. 냉이 가득 넣은 된장찌개에 밥 비벼 먹을 때 톡 쏘는 물김치국물이 최고잖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나무순도 곧 올라올 텐데, 데쳐서 초장에, 쌈장에 푹 찍어 먹으면 밥 두 공기는 그냥 먹을 수 있는데... 쓰읍.

엄나무순 나오면 오가피순도 같이 보내주실 텐데 그건 내 입에 너무 쓰니까 오빠 다 줘버려야지. 쓴 건 몸에 좋다니까 건강해지고 좋지 뭐.



아~ 봄이라 노곤하고 피곤하고 어쩐지 입맛도 없어서 밥도 한 공기밖에 못 먹는데, 내가 좋아하는 봄나물들 생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도네.

잘됐다, 잘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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