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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Mar 27. 2023

겉바속촉에 열광하는 모순덩어리

버섯탕수


엄마 먹고 싶은 게 있어.
탕수육인데 말이야, 고기 대신 내가 좋아하는 버섯으로 만드는 거야. 고기보다 훨씬 맛있대.


방과 후수업이 끝난 아이를 데리고 오는 길에 저녁메뉴를 얘기하던 중이었다.

버섯탕수라니, 오늘 날씨도 흐린데 너무 좋겠다!

막 하원한 막내까지 데리고 우리는 곧장 마트로 갔다.


버섯이랑 파인애플통조림만 있으면 돼.


오늘은 메뉴를 직접 정했으니 장도 아이들이 보게 했다.


엄마, 버섯은 한 가지만 사야 해? 여러 가지로 만들면 좋겠는데, 우리 하나씩 고르는 거 어때?
나는 이거 할래!


사과는 애느타리버섯, 심쿵이는 팽이버섯, 그리고 나는 표고버섯을 골랐다.


심쿵아, 네가 골랐다고 해서 너 혼자 먹는 건 아니야, 알지?
언니도 팽이버섯을 제일 좋아해. 근데 네가 그걸 골라서 언니는 다른 걸 고른 거야. 그러니까 같이 먹어야 해, 알겠지?


심쿵이가 또 자기 거라고 손도 못 데게 할까 봐 미리 일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엔 마트를 구석구석 살피며 파인애플 통조림을 찾아 나섰다. 젤리를 고를 때보다 신이 나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인가? 이쪽에 있을 거 같아, 아니야 저쪽에서 본 적 있어, 하며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아이스크림까지 하나씩 골라 집으로 들어왔다.


거실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아이스크림을 한입 먹는데 오늘 저녁이 너무 기대가 된다고 했다. 자꾸 생각했더니 너무 먹고 싶어 져서 벌써 배가 고파진다고 했다.

이거, 엄마보고 빨리 밥 하러 가란 소리지?

장난 섞인 물음에 두 아이가 짓궂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방금 붙인 엉덩이를 뗄 수밖에 없었다.


부침가루와 전분가루를 꺼내고 당근과 버섯을 손질했다.

소스에 넣을 당근은 얇게, 표고버섯은 큼직하게 썰었다. 애느타리버섯과 팽이버섯은 적당한 크기로 찢어두고 전분가루를 입혔다.


나도 같이 하고 싶어. 내가 도울 게 없을까?


나는 팽이버섯에 전분가루를 묻히는 시범을 보였다. 아이는 버섯 가닥 사이사이에 가루를 묻히고 탈탈 털어서 가지런히 두었다.

고사리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전분가루와 튀김가루를 차가운 물에 주르륵 흐를 정도의 농도로 풀어 튀김반죽도 준비를 끝냈다.

튀김 할 냄비를 꺼내고 식용유를 꺼내는데, 아뿔싸! 식용유가 얼마 없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최근에 누룽지를 자주 튀겨먹느라 기름을 다 써버린 게 이제야 생각이 났다. 난감했다. 자고로 튀김은 넉넉한 기름에 자글자글 튀겨내야 맛난 것인데.

오늘 꼭 먹어야 한다는 아이들의 의지도 강했지만 어차피 튀길 준비가 끝났기에  이제 와서 접을 수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 제일 좁은 냄비에 남은 기름을 탈탈 털어 부었다.

아끼고 아껴서 튀기면 다행히 먹을 수는 있겠다!


엄마, TV에 버섯탕수 만드는 거 틀어놓고 만들자.


요리하는 어린이 프로에서 만드는 걸 봤단다. 아이들은 TV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요리과정을 생중계했다.

그리고 방송보다 먼저 시작하고도 느린 엄마를 재촉했다. 이상하게 경쟁심리가 생겨났다.


기름이 달아오르고 전분가루를 묻힌 버섯을 하나씩 튀김반죽에 적셔 냄비에 띄웠다.


짜글짜글 짜글짜글


아~ 절로 힐링이 되는 소리. 튀김 하는 소리를 녹음해서 자는 동안 듣고 싶다. 튀김을 안 먹더라도 이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궁금하다.


요란하게 기름 튀는 소리가 들리고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니 또 아이들이 왔다 갔다 정신없게 했다. 아직 완성된 버섯이 하나도 없는 엄마의 결과물을 보고서 한 마디씩 입을 댔다.


엄마, 저기는(TV) 벌써 먹고 있단 말이야. 우리는 언제 먹을 수 있는 거야 대체.
맞아. 그런데 엄마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려? TV로 볼 때는 3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잉?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감히 겨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구나. 얘들아, 아직 한참 더 튀겨야 해. 뜨거우니까 저리 가서 잠자코 있어.


대결은 무산되었지만 나는 묵묵히 튀기고 또 튀겼다. 양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냄비는 작아서 한꺼번에 많이 넣을 수 없고 기름은 점점 줄어가는 것 같은데 버섯은 왜 그대로인 것 같은지. 게다가 튀김은 한 번 더 튀겨야 바삭한데... 음식 하면서 심장이 이렇게 쪼그라들어서야 원.


그래도 제법 많은 양의 기름을 남기고 무사히 다 튀겨냈다.

1차로 튀겨진 버섯은 잠시 식혀두고 탕수육 소스를 만들었다.

물에 간장과 식초, 레몬즙도 조금 넣고 올리고당과 굴소스로 간을 맞춰 끓인다. 집에 있는 식초가 두 배식초라서 조절을 실패했다. 그래서 물도 더 붓고 간장도 더 넣는 바람에 양이 처음 생각한 것보다 많아졌다.

소스를 끓이는 동안 물에 전분가루 한 숟가락을 풀어 전분물을 만들어 둔다. 소스가 팔팔 끓으면 파인애플과 당근을 넣어 살짝만 끓이고 전분물을 넣어 농도가 걸쭉해지면 불을 끈다.

때맞춰 남편이 퇴근을 했다. 다시 기름에 불을 올리고 식혀둔 버섯튀김을 바삭하게 튀겼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우리는 왜 그렇게도 튀김의 바삭함에 집착할까. 대체 겉바속촉에 왜 그리 열광하는 걸까.

바삭한 걸 좋아한다면서 속은 또 촉촉해야 한다니, 아주 모순덩어리가 따로 없다. 그런데 나도 그렇다.

다른 음식은 퍼지고 물러도 되는데 튀김은! 튀김만은!! 튀김이니까!! 무조건 바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천장이 까지도록! 그리고 바삭하게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속에는 촉촉한 열기가 느껴지는 게 좋다.

나도 겉바속촉에 열광하는 그 모순덩어리 중 한 명이다. 튀김하나에 바라는 것도 많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튀김을 할 때 바삭함에 집중한다.


바삭한 튀김을 위해서는 우선 차가운 튀김반죽을 써야 한다. 차가운 물로 반죽을 하거나 얼음을 넣기도 하는데 얼음은 시간이 지나면 녹기 때문에 반죽이 묽어지게 되므로 중간중간 튀김가루를 넣어 농도를 맞춰주는 게 좋다.

튀김반죽에 맥주를 넣기도 하던데 우리 집에는 남는 맥주가 없을뿐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튀김에 양보할 수는 없기에.

찬물이나 얼음만으로도 충분히 바삭한 튀김을 만들 수 있다.


두 번째는 튀김가루를 풀 때 너무 많이 젓지 않는 것이다. 섞을수록 찰기가 생기기 때문일 것 같은데 가루가 날리지 않을 만큼만 가볍게 대충 섞도록 한다.


세 번째. 한 번 튀겨낸 것을 식힌 후 먹기 직전에 한 번 더 튀기는 것이다. 처음 튀기고 나면 식으면서 습기가 나와 튀김옷이 눅눅해지는데 한 번 더 튀겨내면 수분이 날아가면서 바삭해진다. 처음 튀길 때는 재료가 익을 때까지 튀겨야 하지만 두 번째 튀길 때는 10초 정도로 짧게 튀겨도 된다. 귀찮은 과정이긴 하지만 그만큼 바삭함의 정도가 다르므로 이왕 튀기는 거 두 번 튀기도록 하자.


그리고 마지막은 기름의 온도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어쩌면 제일 중요한 단계이기도 하다. 너무 낮거나 높지 않은 온도에서 잘 튀겨내야 한다. 온도가 가늠이 잘 안 된다면 온도계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바삭하게 튀겨진 버섯은 키친타월에 올려 기름기를 빼고 접시에 담았다. 새콤달콤하게 끓여진 소스도 그릇에 넉넉하게 담았다.

아이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밥 먹자고 부르기도 전에 밥상 앞에 앉아 코부터 들이밀고 있었다.



넌 붐먹이야, 찜먹이야? 난 찜먹.


그러자 심쿵이가 버젓이 소스에 찍으면서 대답했다.


난 붐먹이야. 엄마는? 엄마는 붐먹이야 찜먹이야?


그게 지도 모르고서 텔레비전에서 하는 말을 들리는 대로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아냐고 했더니 둘 다 모르겠다는 눈치다. 대충 말과 행동을 보고 그런가 보다 한 거란다.


소스를 부어 먹는 건 부먹, 소스에 찍어 먹는 건 찍먹이야. 엄마는 고기탕수육을 먹을 때는 하나는 소스에 담가놓고 하나는 그냥 찍어 먹어. 둘 다 맛있거든.
버섯탕수는 찍먹이 맛있는 거 같아.


엄마말이 다 정답인 줄 아는 아이들은 모두 '찍먹'을 고수했다. 버섯을 하나씩 입에 넣자마자 신랄한 맛 평가가 이어졌다.


음~ 소리 들려? 겉은 과자처럼 바삭한데 속은 부드러워.
이건 달라. 안에 버섯이 엄청 쫄깃해. 한번 먹어봐.


바삭한 튀김옷 안에 세 가지 버섯이 각각 다른 식감을 자랑했다. 아이들은 하나하나 맛을 음미해 가며 맛있게도 먹었다. 어느 유튜버를 따라 하는 건지 한 입 먹을 때마다 맛평가를 하는 바람에 좀 시끄럽긴 했지만 어쨌든 맛있다는 말이었으니 뿌듯했다.


엄마, 나는 탕수육을 좋아하긴 하는데 고기탕수육은 많이 못 먹겠어. 근데 이건 끝도 없이 먹겠어. 히히


진짜 그랬다. 먹고 또 먹고 계속 먹었다. 밥 한 공기를 비운 지가 언젠데 버섯만 찍어먹고 적셔먹고 담가먹고, 내 옆에 와서 입을 벌리며 얻어도 먹었다.

얼마나 맛있었던 건지 다음날 저녁에도 또 해달라고 해서 남은 버섯들을 모조리 튀겨 한 번 더 해 먹였다.



솔직히 집에서 튀김을 하려면 큰맘 먹고 시작해야 한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두 번씩이나 튀겨야 하고, 아무래도 뒷정리도 손이 많이 가는 데다 배부르게 먹고 나면 그제야 느껴지는 기름냄새도 그렇고, 설거지조차 간편하지 않다.

그럼에도 식재료를 튀기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건 맛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갖다 튀겨도 다 맛있다. 제대로 튀기기만 한다면 튀김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을 거라는 말이 그냥 나온 건 아닌 듯하다.


주변에 보면 요즘 에어프라이어가 없는 집이 잘 없던데 내 주방에는 그 흔한 게 아직 없다. 관심이 없어서 몰랐다가 마트에서 에어프라이어 전용으로 나온 냉동식품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신세계를 접하는 것 같아 혹해서 사고 싶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튀김을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데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냉동식품을 그렇게 자주 먹지도 않거니결정적으로 기름에 직접 담근 이 튀김맛을 포기할 수 없어서 아직도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


이틀 연속 기름 닦고 설거지하느라 수고가 여간 많은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에어프라이어는 역시나 조금 더 고민해 보자 하고  미뤘다. 아니 이참에 차라리 튀김기를 사는 건 어떨까 하고 '가정용 튀김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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