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잎물김치
잠깐 내려올래? 콩잎 가지고 지금 출발하는데
그 한마디에 벌써 침이 고인다. 경상도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나의 반응을 이해할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대충 상태를 확인하고는 핸드폰만 챙겨 아파트 앞으로 내려갔다. 곧 어머니의 차도 도착했다.
빨리 나왔네.
동네사람이 콩잎을 좀 주길래 날도 더운데 더 놔두면 시들어 뿔 끼고...
어제 급하게 해 놨는데 별 맛도 없드라. 그래도 무봐라. 애들 물김치 좋아라 하는데 국물 좀 먹이고.
어머니는 항상 음식을 주시면서 맛이 없다고 하신다. 진짜 맛없는 건 아예 가져다주시지도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 맛이 기대가 됐다. 더군다나 콩잎물김치는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반찬이 아니던가.
어머니 콩잎은 아무리 맛없다 해도 항상 맛있었어요.
안 그래도 요즘 너무 더워서 입맛도 없었는데, 요고해서 밥 먹으면 되겠다!! 잘 먹을게요, 어머니.
집에 올라오자마자 뚜껑을 열었다.
콩잎 특유의 냄새가 된장향과 어우러져 구수하게 풍겼다. 뽀얀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맛을 보았다. 아직 덜 삭았지만 당장이라고 밥 위에 얹고 싶어졌다. 옆에 작은 봉지에는 짭조름한 강된장도 들어 있었다.
우리 엄마도 해마다 여름이면 콩잎물김치를 담갔다. 그러려면 콩잎을 먼저 따야 했다. 더운 것도 모르고 엄마를 따라 밭에 가서 콩잎을 땄다. 콩잎만 땄을 뿐인데 며칠 뒤 틀림없이 밥상에 올라왔다. 구수한 강된장과 함께.
무더웠던 여름날, 콩잎물김치와 콩잎장아찌를 할 거라고 생콩잎을 1킬로 주문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음식이기도 하고 남편의 최애반찬이라서 직접 만들어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실 만드는 과정이 간단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콩잎이 오자마자 쌀가루로 풀을 끓여놓고 풀이 식을 동안 콩잎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말이 1 킬로지, 콩잎이 얇고 가벼워서 그런지 양이 어마어마했다. 우선 한줄기에 세장씩 달린 콩잎을 한 장씩 떼어냈다. 사 먹는 콩잎은 한 꼭지에 두세 장씩 달린 채로 들어가 있었는데 먹기가 좀 불편해서 귀찮지만 한 장씩 뜯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먹을 때 조금 불편해도 그냥 담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접고서야 바구니가 비었다. 다음은 세척할 차례. 콩잎 특유의 풋내가 나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조심해서 깨끗하게 씻었다. 그래서 그런가 씻고 또 씻어도 콩잎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마침내 세척을 끝냈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물기를 빼둔 콩잎을 차곡차곡 정리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미리 끓여둔 쌀가루풀이 식다 못해 떡이 될 지경이었다. 그냥 대충 때려 넣어버릴까도 싶었지만 다시 꾹 참았다. 콩잎손질은 정말이지 인내의 연속이었다.
엄마가 해준 물김치는 콩잎이 먹기 좋게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이렇게 일일이 다 손질했던 거구나. 콩잎 따는 것만 도와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한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한참 지나고 나니 등이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끈기 하나는 어디 가도 모자라지 않은 사람인데 처음으로 콩잎을 산 걸 후회했다. 먹기에 간단한 음식이라고 만드는 걸 너무 만만하게 여겼던 거다. 엄마와 어머니는 매번 이렇게 하셨을 텐데 새삼 두 분이, 시장에서 콩잎물김치를 파시는 할머니들도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콩잎을 소금물에 절이기도 하던데 내가 받은 콩잎은 어린잎이라 보들보들 부드러워서 굳이 절이지 않았다. 정리해 둔 콩잎은 두 세 뭉치정도 남겨두고 김치통에 가지런히 깔았다. 그리고 양파와 홍고추를 대충 썰어 콩잎 위에 덮었다. 커다란 양푼이에 생수를 담고 미리 끓여둔 풀을 가져와 넣었다. 떡이 된 줄 알았는데 물에 넣으니 금방 묽게 풀어졌다. 냉동실에 얼려둔 다진 마늘과 생강도 톡 떼어다 넣어준다.
한국음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다진 마늘은 지퍼팩에다 적당량 넣어 넓고 얇게 펴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얼리기 전 칼등으로 지퍼팩 위에다 대충 쓱쓱 그어주면 쓸 때마다 조각조각 잘라 쓰기 쉽다. 실리콘틀보다 납작해서 공간도 덜 차지하고 간편하다. 무엇보다 얇게 얼린 거라 실온에 꺼내놓으면 빨리 녹아서 요리에 활용하기 좋다.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우려도 있겠지만 여러 번 씻어 쓸 수 있는 지퍼팩을 사용하는 것으로 죄책감을 조금 덜었다. 다른 재료의 냄새가 섞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마늘을 넣었던 지퍼팩에는 마늘만, 생강은 생강만, 대파는 대파만, 멸치는 멸치만 넣는다.
이제 콩잎물김치에서 제일 중요한 된장을 풀어야 한다. 다른 물김치와 다른 점이 바로 이 된장이다. 나에게는 한겨울 동치미국물과 쌍벽을 이루는 게 한여름 콩잎물김치일만큼 물김치가 삭았을 때 구수하고 톡 쏘는 이 국물이 정말 예술이다. 맨밥에 국물만 떠먹어도 밥 한 그릇 금세 비울 수 있다. 거기에 칼칼한 강된장까지 있다면 덥다고 입맛 없을 새가 없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귀한 집된장 두 통을 꺼냈다. 왜 두 통인가 하면 한통은 어머님이 해주신 된장이고 또 다른 한통은 시댁 이웃집 할머니표 된장이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그해 어머님 된장이 망해버려서 줄까 말까 하다가 맛은 별로라 하더라도 몸에는 마트 된장보다야 좋겠지란 생각에 맛이나 보라고 한통만 주신 거고 한통만 보내는 게 영 마음에 안 차서 이웃집 할머니가 주신 된장까지 보내주신 거다. 덕분에 나는 귀한 집된장을 두통이나 넣어두고 입맛에 따라 꺼내먹는다. 색이 옅고 짭조름한 어머니의 된장은 시판된장과 섞어 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칠 때 잘 쓴다. 할머니의 된장은 유독 색이 시커멓고 묽은데 이게 신기한 게 꽃게맛이 난다. 그래서 된장찌개를 끓일 때 심심한 할머니의 된장 한 스푼과 시판된장 한 스푼을 넣어 끓이면 간도 딱 맞고 꽃게를 넣어 끓인 것 같아서 가족들이 좋아한다.
콩잎물김치 국물에 가는 체를 밭쳐 어머님 된장을 숟가락에 듬뿍 퍼담았다. 그리고 살살살 국물에 된장을 풀었다. 된장으로만 간을 하려고 하면 국물이 너무 탁해지고 맛이 없다. 적당량을 풀었다 싶으면 약간의 소금으로 남은 간을 맞추고 매실청도 한 숟갈 넣고 잘 섞었다. 그리고 콩잎을 담아둔 김치통에 자작하게 붓고 가벼운 콩잎이 떠오르지 않게 누름판으로 눌러 뚜껑을 닫았다.
할머니의 꽃게맛이 나는 된장으로는 강된장을 만들기로 했다. 양파, 대파, 버섯, 호박, 고추 등 냉장고에 있는 자투리 채소들을 모두 꺼내 작게 깍둑썰어두고 뚝배기를 올렸다. 들기름을 조금 붓고 다진 마늘과 대파를 먼저 볶아 향을 낸 후 된장 2숟가락을 넣어 같이 볶는다. 된장 볶는 냄새가 기가 막혔다. 그 위로 물을 조금만 넣고 잘라놓은 채소들을 모두 부어 끓인다. 오래 끓일 필요 없이 호박이 익으면 불을 끄고 식혀두었다. 조금 있다가 열무김치라도 꺼내서 강된장 넣고 밥을 비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전에, 다 끝난 줄 알고 정리하려던 시야에 아까 남겨둔 콩잎이 들어왔다. 이건 된장장아찌를 할 거였다.
할머니의 묽은 된장을 퍼담고 올리고당은 두어 바퀴 돌려 넣고 섞었다. 간장을 넣을까 하다가 그만하기로 했다. 남은 콩잎에 켜켜이 된장양념을 묻히고 작은 통에 담아 마무리했다.
예전에 우리 엄마는 다른 양념은 일절 하지 않고 된장 장독을 열어 콩잎이며 고추며 된장 안에 콕콕 박아놨었는데 나에게는 그런 된장독은 없다. 수돗가 한편에 장독대가 있었는데 크고 작은 장독들이 서너 줄로 쭉 줄 세워져 있고 독마다 된장에 고추장, 간장까지 가득가득했었는데 그게 정말 큰 재산이었구나. 나도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아.. 지금보다 조금 더 지긋한 어른이 되면) 꼭 내 손으로 메주도 띄워보고 된장 고추장 간장도 만들어 먹어야지. 그때는 엄마의 그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작은 장독들도 장만해서 엄마처럼 나의 보물창고를 만들어야지.
다음 날 점심, 아직 콩잎이 삭기도 전인데 참지 못하고 물김치를 꺼냈다. 싱거우면 강된장을 푹 퍼서 넣으면 될 일이었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아삭한 고추도 몇 개 꺼내서 단출한 밥상을 차렸다. 강된장을 퍼서 밥 위에 올린 뒤 콩잎으로 감싸 입에 넣었다. 아직 콩잎에 맛이 들지 않았지만 바로 국물도 한 숟가락 떠 넣으면 비슷한 맛이 났다.
어릴 때는 콩잎 한 장을 손바닥 위에 펼치고 밥 한 숟가락을 올린 뒤 강된장을 얹어 싸 먹었다. 국물이 척척한 콩잎 때문에 쌈 한번 싸 먹을 때마다 국물이 손목으로 타고 내려왔다. 그러면 그것을 핥아먹기도 하고 두어 번 싸 먹을 때마다 손을 헹궈가면서도 그 맛에 빠져서 귀찮은 줄도 모르고 먹었다. 시큼하고 청량한 국물에는 밥을 말아먹기도 하고 강된장에 상추를 가득 뜯어 넣어 비벼먹을 때 국대신 한 숟가락씩 퍼먹기에도 딱이었다.
물김치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이 잘 먹는 반찬이기도 하다. 아직 콩잎의 식감이 낯선지 그리 많이 먹지는 않지만 국물은 국처럼 먹는다. 엄마 이거 콩이니까 몸에 좋은 거지? 하면서.
그러고 보니 콩의 잎에다 그 열매로 만든 된장까지 야무지게 들어간, 콩이 다 한 음식이었네! 알뜰하게 다 내어준 덕분에 무더운 여름 우리 가족 입맛만은 사수할 수 있었구나! 소박한 반찬이지만 그 맛만은 절대 소박하지 않은 건강한 밥상으로 이번 여름도 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