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꿀밤나무 아래서

도토리묵

by 달콤한복이

그날은 어머님의 생신이었다. 전라도 김제에 종자박람회에 가는 날이라 아침 일찍부터 나서야 한다셔서 지난 주말에 미리 얼굴을 뵙고 왔다. 퇴근을 하고 와서 아침에 물에 담가놓은 도토리가루를 면포에 거르고 거르고 거르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머니 생신축하드려요!!
아하하하! 그래 고마워!!
거기는 비 안 와요?
그래 여기는 날씨 좋네. 여기까지 오는데 한~참 걸리더라. 아이고 멀더라 멀어.
그럼 언제 출발하세요?
이제 곧 출발한다. 그래도 가다가 저녁 먹고 도착하면 8시나 9시나 될걸. 신경 쓰지 말고 있어라
네 조심해서 오세요!
그리고요 어머니, 지금 묵만들려고 꺼냈는데요
이거 면포에 깨끗하게 다 걸러야 되는 거죠?
그래 다 걸러서 고운 가루만 물에 앉혀서 쒀야 된다
아 알겠어요 어머니, 저녁 챙겨드세요~

대충 해도 된다는 말을 기대했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도토리가루 앞에 섰다.






시댁입구에는 아주 커다란 도토리나무가 한그루 있다. 너무 커서 아버지가 그냥 베어버리라고 했는데 그게 또 베어버리자니 아까운 마음에 어머니의 부탁으로 재작년에 남편이 가지치기만 했더랬다. 그사이 얼마나 가지가 뻗어나가 커져있던지.

얼마 전 시댁에 갔을 때는 나무아래 도토리가 가득 떨어져 있었다. 한쪽에 조심해서 주차해 놓고 아이들과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우리의 양손이 올망졸망 귀여운 도토리로 금방 찼다. 목소리를 듣고 어머님이 집안에서 통을 들고 나오셨다. 다그르르르. 우리는 손에 쥔 도토리들을 차례로 통에 쏟았다. 그리고 또 바닥만 보며 도토리를 주우러 떠났다. 담벼락 밑에도, 삐죽한 잡초들 사이에서도, 내놓은 지 한참 되어 있는지도 몰랐던 텃밭구석의 흙투성이 화분 안에도, 도토리가 튕겨 굴러갔던 건지 이웃집 대문 앞에까지도 반질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툭, 따닥! 우리가 도토리를 줍는 순간에도 그것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런 게 왜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 신나서 아이들과 경쟁하듯 빠른 발걸음을 옮기며 줍다 보니 어느새 바닥이 깔끔해졌다.

이제 그만 줍고 들어가자. 저기 갖다 부어놓고 들어가서 과일 먹자, 얼른!

어머님이 가리킨 처마아래 통에는 벌써 모아놓은 도토리가 한가득이었다. 나무가 얼마나 큰 건지 우리가 주운 것까지 보태자 그 한그루에서 떨어진 도토리 양이 어마어마했다. 어머니는 올해는 꼭 도토리묵을 쑤실 거라고 하셨다. 묵을 좋아하는 나는 그날이 언제쯤 일지 바로 여쭈었다. 어머니는 웃으시며 그랬다.

모올라. 언제 날이 빌란지....





추석연휴라고 시댁에 갔다. 집에서 부쳐온 전을 넣어두려 주방에 들어갔는데 싱크대위에 김장 때나 쓰던 커다란 대야가 두 개나 펼쳐져있었고 짙은 갈색의 물이 차있었다.

어머니! 오늘 묵 만들어요?
그래. 미리 해놓을라 했는데 오늘 모임 갔다가 좀 전에 들어와서. 이따 저녁 먹고 쒀보지 뭐. 가루를 물에 풀어서 고운 천에 한번 걸러내고 이래 담가놓은 거야. 이거를 이제 물만 좀 따라내고 끓이면 돼

아 드디어 묵 만드는 걸 볼 수 있는 것인가.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지도 모르는데 어릴 때 엄마가 묵을 쑤는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엄마도 묵을 좋아해서 먹긴 자주 먹었는데 그 묵의 출처를 아직도 모르겠다.

신혼 초에 묵사발이 너무 먹고 싶어 마트에 포장된 묵을 사서 먹었는데 별 맛이 없었다고 어머니께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다음 어느 날엔가 어머님이 집 앞으로 묵을 가져다주셨다.

김해 이모가 묵을 잘 쒀. 니 얘기한 게 생각났는지 이래 만들어가 가져왔더라. 니 묵좋아한다고 많이 보냈네.
먹고 싶은 거 많이 먹고 마음 편히 지내란다.

유산을 하고 몸과 마음이 시름하여 누워만 지내던 날 가운데 이모님이 보내주신 쌉싸름한 도토리묵은 입맛을 돋우기 충분했다. 그 뒤로도 이모님은 어머님댁에 놀러 오실 때면 자주 묵을 쒀서 내 몫까지 챙겨주셨다. 잊고 있다가도 그렇게 묵을 얻어먹을 때면 나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것을 해보기란 마음먹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매년 어머님댁 앞마당에 떨어진 도토리는 주워서 이모님을 드리거나 동네사람이 주워가기 바빴다는데 올해만큼은 꼭 묵을 쑤시겠다는 어머님의 의지가 나도 꽤 반가웠다.

묵은 물조절을 잘해야 돼. 가루를 사서 하면 비율만큼만 넣으면 돼서 좀 쉬운데 이거는 껍질채로 방앗간에서 갈아온 거라서 미리 물에 불려놨기 때문에 까다로워.
물은 이 정도만 넣고 끓이면서 조금씩 추가하는 게 낫지.

솨아. 대야에 가라앉은 앙금이 들뜨지 않게 조심해서 물을 따라 부으셨다.

어머니 제가 저어 볼게요.
팔 아플걸? 계속 저어야 되는데.
바닥에 금방 눌어붙더라니까.

솥은 깊고 바닥에 눌지 않게 힘을 주다 보니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었다. 어머니와 번갈아가며 원을 그리고 또 그리고, 얼마나 저었을까. 이게 익어가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즈음 색이 조금씩 짙어지고 몽글몽글 덩어리가 생기는 게 보였다. 어머니는 아까 따라놓은 윗물을 조금씩 부으시면서 되기를 조절하셨다. 한참을 더 젓다 보니 빡빡해졌다. 어머님은 내 팔을 멈추게 하고 묵을 쑤던 주걱을 가운데 찔러 세웠다.

이렇게 주걱이 안 넘어가고 서있으면 다 된 거야.

우리는 꼿꼿이 서있는 주걱을 보고 웃었다. 미리 꺼내둔 네모반듯한 통들에 끓인 묵을 쏟아부었다. 어머니는 물을 조금만 더 넣었으면 좋았겠다고 아쉬워하셨지만 내가 보기에 어머니의 묵은 성공인 것 같았다. 다음날 추석 아침에는 밥보다 묵을 더 많이 먹었다. 우리 사과도 매콤한 양념장에 찍어 제법 잘 먹었다.

하이고, 희한하제. 어린애가 이런 걸 어째 저래 잘먹노. 어른입에도 씁쓸하구마는야. 뭐든 저래 맛있게 먹대. 참 신기하다.

사과가 맛있게 잘 먹는 걸 보고 어머니는 빻아놓은 도토리가루가 두 봉지 더 남았다고 또 만들어야겠다고 하셨다. 나도 냉큼 '한 봉지만 주세요' 했다.

가서 해볼래? 막상 해보니까 어렵지는 않제? 물조절만 잘하면 되니까

그렇게 나는 내 딸 먹일 요량으로 겁도 없이 도토리가루를 받아왔다. 그리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을 냉동실에 넣어놓았는데 일단 꺼내야 시작하겠다 싶어서 전날 내놓고 잤던 것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물에 담가놓고 출근을 했다. 이제 미룰 수도 없다.


어머니가 주신 도토리가루는 껍질채로 간 거라 입자가 거칠었다. 우선 고운 채에 한번 내려서 1차로 걸러주었다. 그리고 2차로 면포에 싸서 짜내면서 전분만 걸러내야 한다. 그렇다. 어머님댁에서 나는 이과정을 보지 못한 것이다. 끓이는 것만 생각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나는 물에 불려놓은 가루를 한국자씩 퍼서 면포에 담아 찰방찰방 물속에서 치대고 흔들어가며 전분을 빼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전분이 묵이 되는 것이기에 대충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큰 면포에 가득 넣어서 바락바락 주물렀다 하셨는데 나는 손목이 아파서 조금씩 자주 하는 것을 택했다. 도토리가루 한 봉지가 그렇게 양이 많지 않았는데 왜 줄어들지가 않는 것인지. 그냥 입 다물고 있다가 어머니가 해주시면 '감사합니다'하고 받아먹기나 하면 될걸 괜히 입방정을 떨어가지고는.

이 난리통에 내 주방은 온통 갈색물이 튀어있었지만 그걸 닦아가면서 할 정신까지는 없었다. 이런 단순노동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는 쓸데없이 지독하게 꼼꼼할 때가 있다. 점점 내 배도 젖어가고 주방이 엉망이 되어가는 것 같았지만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전분을 모조리 빼내는데 온 신경을 모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게 맞나 싶어 김제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던 것이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나는 단념하고 다시 도토리가루 앞에 섰다. 그리고 좀 전까지 하던 대로 치대고 흔들고 비비고 버리고 푸고 치댔다. 와 정말 몇 번의 반복이 있었을까. 드디어 가득하던 대야가 바닥을 보이자 주방꼬락서니가 어떻든 간에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소파에 냅다 누웠다. 물에 담가두면 쓴맛이 빠진다고 해서 전분도 가라앉힐 겸 하룻밤 우려내기로 했다.

그리고 대망의 다음날. 전분을 걸러내는 게 제일 고된 일이었다 해도 이미 지나고 나니 이제 남은 일이 더 걱정이었다. 어머님 말씀대로 물조절을 실패한다면 그간의 노고도 다 헛수고가 되는 게 아닌가. 두근두근 떨렸다.


밤새 전분들이 소복이 내려앉아 위에 뜬 물이 어제보다 맑아 보였다. 조심해서 맑은 윗물만 따라버리고 중간물은 혹시 몰라 따로 받아두었다. 묵을 쑤다가 너무 되직하다면 어머니가 하신 것처럼 이 중간물을 부어 농도를 맞춰야 할 것이다.

물을 따라내고 났더니 애걔! 양이 이것밖에 안된다고? 그렇게 치대고 흔들고 비비고 버리고 푸고 치댔는데도? 성공만 한다면 어머님도 드리겠다 했고, 가까이 사는 동생네에도 갖다 주자 싶었고, 우리 집 앞에 호박죽이랑 밤을 두고 간 우렁각시 같은 옆동 동생에게도 맛 보여주려 했고, 주말에 지인가족도 초대해서 안주로 내놓을까 했는데.


도토리가루와 물은 1대 5 비율로 맞추면 된다고 했는데 애초에 가루를 물에 담가놓은 상태라 계량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요리를 해온 경력이 있지, 감을 믿고 대충 물을 부었다. 나무주걱으로 신나게 원을 그며 저었다. 몽글몽글 덩어리가 지기 시작하고 온도를 낮췄다. 소금도 조금 넣고 들기름을 한 스푼 넣어 휘휘 섞었다. 지금부터는 시간문제다. 센 불로 화르륵 끓이는 게 아니라 약한 불로 뭉근하게 수분을 날린다 생각하고 계속 저어야 한다.

뽁 뽁.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듯 끓었다. 손에 튈까 겁이 나서 급하게 고무장갑도 꼈다. 20분 정도 끓였을 때 이제는 제법 되직해져서 젓는 게 힘이 들었다. 어머니말씀대로 주걱을 세워보려 했지만 양이 적어서인지 세워지지가 않아 당황했다. 언제 불을 꺼야 할까. 끄려다 조금 더 끓이고 끄려다 더 끓이고. 그렇게 10여분 뒤 주걱에서 뚝뚝 떨어지는 걸 확인한 뒤에야 불을 껐다. 준비해 둔 밀폐용기에 들기름을 조금씩 바르고 묵을 퍼서 담았다. 평평하게 펼치려고 용기를 흔들자 찰방찰방 탄력이 넘쳤다.

이제 묵은 내 손을 떠났다. 실패하더라도 양념장이 맛있으면 먹을만하겠지 싶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큼 양념장으로 갈아탔다.

양조간장 두 스푼에 한식간장 한 스푼 넣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매실액, 쪽파도 쏭쏭 썰어 넣는다. 참깨도 갈아서 넣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은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먹기 직전에 넣어주면 된다.



와 성공했네! 맛있게 잘됐다!
엄마 진짜 맛있어!! 할머니한테 말할 거야. 우리 엄마가 만든 묵 지인짜 맛있다고!
오늘은 나도 한번 맛볼래. 엄마가 만든 거니까!

저마다 호평일색이다. 엄마가, 와이프가 처음으로 해본 거라고 그런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기분은 좋았지만 내 입엔 그냥 묵이다. 특별히 실수한 것도 없고 맛이 나쁘지도 않은데 뭔가 아쉬운 묵일 뿐이다. 그게 뭔지 궁금해서라도 조만간 다시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했다. 한번 해봤다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이라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직접 만들 거라고 생각도 못해본 거라 그런지 더 뿌듯하다.

묵을 만들 때는 다시는 못하겠다 했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다 잊고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니. 이래서 좋아하는 건 말릴 수가 없나 보다.

나에게는 요리가 그렇다. 새로운 음식도 해보고 싶고 이것저것 만들어 먹이고 싶은 마음을 모른 채 할 수가 없다. 요리하는 과정자체가 귀찮을 때도 있고 외식이 편하고 맛도 있지만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우리 아이들이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면 안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엄마도 매일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밥상 앞에서 숟가락질하는 우리를 그렇게 보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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