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애처로운 우리

by 달콤한복이


얼마 전 찍은 MRI 결과 아빠는 초기 치매를 판정받았다. 딸들과 대화할 때와는 다르게 의사와의 대면진료에서 아빠는 별 다른 특이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대답을 잘하고 왔다고 했다. 아직은 경미한 초기 치매 수준이라 한 달치 약을 봉투 가득 처방받아 들고 돌아왔다.


그날은 아시는 분의 도움으로 치매안심센터에 환자등록을 하던 날이었다.

치매 판정까지 받았지만 실감하지 못하던 차에 왠지 내키지 않는 착잡한 마음으로 센터로 갔다. 치매 환자 등록을 마치고 직원분이 손에 쥐어준 지원 물품들을 받아 들고서 멍한 채로 친정집으로 향했다.

아빠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운동을 다녀오겠다며 자전거를 타러 나갔고 그제야 내가 들고 온 물품들이 눈에 보였다.

안내책자와 화투장 그림의 퍼즐과 색칠공부, 색연필, 안마기, 바디용품 등등.

갑자기 눈물이 폭포수같이 흘렀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빠가 안쓰러워서인 건지 내 처지가 불쌍해서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우리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


그야말로 통곡을 하고 있는 나의 옆에서 조용히 흐느껴 울던 남편의 울음소리도 점점 커졌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 우리가 아버님한테 더 잘하면 되지. 노력하자.

나도 더 시간 내서 자주 들여다보고 할게.

미안하다... 그동안 자기 뒤에 숨어서 불구경하듯이 편하게 있었던 거 같다. 진짜 미안하다.

이제 시작일 수도 있어. 미리 기운 빼지 말자.

몸도 안 좋은데 그만 울고, 응?



의사 앞에선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고 경미한 수준이라 하지만 자식들이 보는 아빠는 걱정스러웠다.

몇 달 사이 말도 더 어눌해지고 대화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웠다. 말로는 내일모레 팔순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하면서도 우리 아빠만은 아니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아빠에 대한 걱정이 점차 스트레스로 느껴지고 있던 중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아빠의 이상행동에 신고가 들어왔다며 CCTV를 확인하러 방문하라고 했다.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숨 쉬는 걸 잊어버린 건지 물속에 있는 것처럼 갑갑해졌다.

믿지 못할 상황에 직접 확인이 필요했지만 자신이 없었고 그럴만한 컨디션도 아니었다.

남편은 억지로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직 어떤 상황일지 모르기에 내가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고, 딸이기 때문에 그 기억이 계속 떠올라 오랫동안 괴로울지도 모른다며 결국 나를 포기시켰다.

대신 자기가 보고 들은 것들은 숨김없이 다 얘기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남편을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솔직한 나의 심정은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상자를 열어보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피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계속 모른척하고 싶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싶었다.

내가 처한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만 싶을 뿐이었다.

대체 뭐가 뭔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만 났다.

슬펐다.

아빠도, 언니들도, 동생들도, 나도, 왜 이렇게 안쓰러울까.

안아주고 싶고 토닥여주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



영상 안에서 우리 아빠는 어스름 짙은 이른 새벽 평소와 다름없이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나갔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돌멩이를 주웠다.

길가에 주차된 어느 자동차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주워온 돌멩이들을 꺼내 범퍼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집에서 들고 나온듯한 종이와 함께.


그 차량의 주인은 아빠와는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고 몇 번이나 반복된 아빠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껴 신고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분의 심정을 백번 이해하면서도 그때는 우리 아빠에 대한 연민이 앞섰다.

딸이라서 그런 건지, 아빠라는 사람의 인생을 잘 알아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의 시기가 그래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애처로울 뿐이었다.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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