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게 다정한 것이 두려워졌다

by 달콤한복이


호탕한 웃음소리를 가진 J는 목소리도 크고 털털한 반면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잘 챙겼다. 탈색한 머리에 화려한 의상, 또렷한 인상이 사뭇 강해 보여서 나는 우리가 친해질 거라 처음엔 생각하지 못했다.

매일 마주치며 인사하고 얘기하다 보니 처음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고 짧은 첫인상만으로 성급하게 한 사람을 단정지은 것이 미안했다.

대화를 나눈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말을 놓으며 나를 친근하게 '언니'라고 부르는 소탈한 J와는 그렇게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자주 만나 어울리면서 누가 봐도 친한 사이가 되었다.

내가 처음 그랬듯이 J의 겉모습만 보고 우리의 친분이 의외라며 그녀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 겉모습만 그렇지 아니야, 성격 좋아. 의외로 여리고 순수한 면도 있고.


만나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제법 속 깊은 얘기도 하고 육아상담에, 소소한 정보도 주고받으며 그렇게 잘 지내는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속시원히 물어라도 보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어지럼증으로 다 귀찮았다. 그때 나는 이석증으로 말하는 것조차 힘들던 때였다.

모두가 즐겁게 웃었지만 나에게만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마치 끼면 안 되는 자리에 눈치 없이 낀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이랄까. 전과 달라진 것 없이 모두 똑같이 웃고 있는데 난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내가 요즘 컨디션이 나빠 예민해진 건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 난 뒤부터 J의 말과 어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친근함을 넘어서 무례하다 느껴질 만큼 말과 행동이 전과 달랐다.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챙기는 것 같으면 자기는 왜 항상 뒷전이냐며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무안을 줬다.

개인적인 일을 요구하듯 부탁했고 들어주지 않으면 바로 싫은 티를 냈다. 그러다가도 또 어느 날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전처럼 나를 대했다. 싹싹하고 털털했던 처음과 똑같은 모습이 보일 때면 내가 오해를 한 건가 싶을 만큼 헷갈렸다.

언제부턴가 J가 주도하는 모임엔 항상 내가 빠졌고 내가 모르는 일들이 많아졌다.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바쁜 나를 생각해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는 J의 말에 나는 작은 서운함도 티 낼 수 없었고 오히려 애써 괜찮아야 했다.

어차피 J의 감정 기복에 점점 지쳐가고 있던 터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오히려 지금처럼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도 같았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던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슬픈 그림자가 드리웠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생에게서 그동안 J가 내 뒤에서 했던 말들을 듣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나는 동생들을 질투해 이간질이나 하는 철없는 언니가 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사람의 험담이나 하는 못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이유로 J는 내가 불편해졌으며, 같은 이유로 모임이 있을 때 일부러 나를 소외시켰다고 했다.


| 언니가 그런 사람이 아닌 건 알지만 자꾸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마음이 복잡해져서... 실례인 줄은 알지만 언니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어요...


글썽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그 애에게 오히려 미안했고 동시에 내가 너무 가여웠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오해를 살만한 얘기도 한 적이 없기에 솔직하게 다 얘기해주었고 차라리 더 일찍 물어봐주었더라면 너도 나도 하루라도 더 마음이 편했을 텐데,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겠다며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혼자 며칠 밤을 아팠다.


진심으로 대해주었던 나와는 다른 J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되어서 아팠고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서 웃고 있었다는 생각에 그랬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다 듣고만 있었을 몇몇의 사람들에게 느낀 배신감에 마음이 아팠다.

아무것도 모른 채 속도 없이 웃고 있었을 바보 같은 내가 안쓰러워서 아팠다.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사람들의 눈을 보는 게 두려웠다.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며 예쁘게 웃는 저 얼굴 뒤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다를 떨며 함께 웃던 사람들인데 나에게 말을 걸고 곁에 다가오는 것이 무서워졌다. 가슴이 떨리고 긴장되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얼른 자리를 피했다.

이런 감정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나의 컨디션은 도무지 나아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그즈음에 코로나19 1차 예방접종을 했고 몸살이 찾아왔다.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한 후유증 없이 잘 넘어가기에 나도 큰 걱정 없이 접종을 했는데 몸살로 이틀을 꼬박 앓고도 컨디션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허리가 너무 아파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고 며칠 동안 설사를 하고 입맛도 없어 음식도 먹지 못했다.

머리는 다시 무거워졌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기운이 없어져서 인지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고 좋아하던 뜨개질과 요리도 손을 놓게 되었다.

집안일은 자꾸 밀렸다. 어떤 날엔 청소기조차 돌리지 않은 날도 있었다. 빨래가 쌓이는 건 당연하고 건조가 끝난 빨래를 꺼내지도 못해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 아이들에게 바로 입히기도 했다. 다 귀찮았다.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계속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그러나 정작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았다.

목에 무언가가 걸린 듯 답답했다. 자려고 누우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심호흡을 하게 되었고 그러고 나면 오히려 숨이 가빠졌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럴 적마다 툭, 툭, 가슴팍을 치던 오른손 주먹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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