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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맘 Jan 28. 2016

엄마는. 아이들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말할 수 있기까지. 아이들은 어디에, 어떻게 생각을 담아놓고 있었을까.


방학 기간 중, 내 아이가 말한 많은 말 중의 한 마디를 여기에 적어서 보내주세요.





일본에 사는 친한 언니가 있어요.

그 언니에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큰 딸은 일본 로컬 유치원에 다녀요.

그 유치원에서 내준 유일한 방학숙제가 바로 그것이었어요.



아이의 한 마디 적기.                                                                      

명함 사이즈의 작은 종이를 방학하는 날 나눠주고는.

방학 동안에 아이가 내뱉었던 무수히 많은 말들 중,

인상 깊었던 말을 적어서 개학날에 아이 편에 다시 보내는, 이를테면 ‘엄마’ 숙제이지요.



아이는 평상시대로 그저 말만 하면 될 뿐이니 부담 없고,

엄마는 잘 들었다가 기억에 남는 멘트 하나를 정해 써 가기만 되는 간단한 숙제.

방학이 끝나면 교사는 그 명함 종이들을 모두 수합해서

모두의 명함이 모두 들어가는 큰 종이에 인쇄를 하여 각 가정으로 돌려보내 준다고 해요.

세상에 이런 기똥찬 방학 숙제가 있다니!

저는 무릎을 탁 쳤답니다. 그리고 다짐했어요.

내년에 학교에 돌아가면 다른 숙제를 하나도 내지 않더라도, 이 숙제는 꼭 내야겠다고 말이죠.



생각보다 의미있는 숙제. 아이의 한 마디 적기.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많은 엄마 블로거들이 종종 제게 물어요.


선생님, 지윤이는 참 말을 예쁘게 하는 것 같아요. 비결이 뭐예요?


  

아. 지윤이는 제 큰 아이 이름이에요. 올해로 7살이 된 딸입니다.

아무래도 여자 아이다 보니, 예쁜 것, 귀여운 것, 깜찍한 것, 아름다운 것 등 하여간 이 세상의 모든 공주같이 반짝이는 것을 매우 좋아해요. 그 영향으로 말을 조금 예쁘게 하려고 노력한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고 아름다운 것들에게선 딱 그만큼 예쁘고 귀여운 말들이 나온다고 아이는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말이에요. 이것이 비결이 아닙니다.

사실은요. 고백하건대 지윤이가 그런 예쁜 말들'만'을 말하는 아이는 아닙니다.



사실은요.

‘제’가 ‘예쁘게’ ‘들어’ 준답니다.

아이의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해요.

아이가 하는 말, 말투, 어휘들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기록해요.

아이의 모든 말을 기록할 수는 없으니,

아이가 했던 말들 중에서 결코 잊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상 깊은 말들을 주로 메모해요.

저는 제 블로그에 ‘딸 어록’이라는 이름으로 그 상황이 잘 드러나게 남겨놓기도 하지만, 다이어리에 끄적끄적 손으로 남기기도 하고, 그 상황도 여의치 않을 때에는 핸드폰 메모장에 그 즉시 타이핑해요. 아이의 육성을 그대로 남기고플 땐 스마트폰 녹음 기능도 종종 사용해요.


아이가 갓난아이로 태어나서 말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얼마나 많은 표현을 그 안에 담고 있었을지 모를 만큼.

엄마의 귀에 들린 아이의 말은 그저 놀랍고, 신선해요.


이런 보석 같은 말들이 모이니, 더욱 빛나고. 더욱 빛나니 마구 아름답고. 어찌나 예쁜지요.

그 보석 같은 말들이 모여있는 블로그만을 보는 사람들 눈엔 당연히, 지윤이는 '말을 예쁘게 하는 아이'로 보일  수밖에요. :D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아이가 유난히 엄마를 힘들게 하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에 저는 이 어여쁜 기록들을 꺼내어 읽어본답니다.

아이가 두 돌 무렵에 했던,   

“음마, 쬬아! (엄마 좋아)”

이렇게 정말 기초적인 문장 하나에도 미소가 그냥 지어져요.

그럼 아이 본래의 착하고 고운 마음이 다시금 보여요.  

  

반대로 아이가 유난히 엄마를 기쁘게 하는 날도 있죠.

그런 날에 이 기록들을 들춰보면, 그 기쁨이 곱절이 되고, 행복이 퐁퐁. 말할 것도 없어요.

행복함에 무장해제가 됩니다.




학교 이야기를 해볼까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유난히 입이 거친 남자아이였어요.

그 날도 아이는 해서는 안 될 욕을 입에 담아서 제게 꾸중을 받게 되었어요.

몇 번이고 반복했던 ‘그 말은 나쁜 말인데, 왜 했어요?’ 에도 꿈쩍 않던 아이에게 말해줬죠.



“민수야.
민수 엄마가 너를 낳고 네 입에서 ‘엄마’라고 처음 말했을 때.
그렇게 네가 말을 배워가던 어린 시절에......
아마  민수 엄마는 매일 생각했을 거야.
우리 아들 입에서 앞으로 부디 예쁜 말, 고운 말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네 입에서 이런 나쁜 말이 흘러나올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으셨을 거야.
민수 엄마는 지금도 바라시고 계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민수 입에서는 예쁜 말만 흘러나오기를. “



단단하게만 보였던 남자아이가 울어요. 그리고 이제 알겠답니다. 절대 나쁜 말 안 할 거래요.

그리고 아이는 고맙게도 부단히 노력해주었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 속을 뒤집어놓는 날도 분명 있을 거예요.

어디서 나쁜 말을 배워와서는, 해서는 안 될 말도 입에 담는 날도 올지 몰라요.

그런 날에 보여주세요. 아이가 했었던 보석 같은 말들을.

그리고 말해주세요.


엄마는. 다 알고 있다고요.

네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네가 얼마나 마음이 고운 아이인지.

이것 보라 고요.

네가 엄마에게 했던 말들만 봐도 엄마는 그런 생각이 든다고요.

잠시 힘들고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짜증이 난 모양인데,

잘 이겨내어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말이죠.



사진은 소리를 담지 못하니까... 아이의 목소리는 내 글씨로 담아보자.




보석같이 빛나며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는 사실 금방 날아가버려요.

당시에는 내  마음속 깊이 콕 박힌 것 같아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잊고 말아요.

일상을 사는 사이에 그냥 나도 모르게 희석되고 말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 아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아이가 되어버릴 수도 있죠.

그러니 기록해두면 좋아요.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아이의 한 마디를 사각사각 연필로. 또각또각 타이핑으로. 또 다른 여러 방법으로 기록해두는 거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신비에 가까운 말 배우는 과정을 내가 간직하기 위해서.

너는 이런 예쁜 말을 했던 아이라는 걸 아이에게 보여주며 선물로 줄 수 있도록.



소박한 노트 한 권이 '내 아이의 보석상자'로 변신하는 건 한 순간.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





들어주다:
부탁이나 요구 따위를 받아들이다.


소원을 들어주다.

부탁을 들어주다.

요구사항을 들어주다.


우리가

아이들의 소원을, 부탁을,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줄 자신은 없지만.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은 충분히 해봄직합니다.


사실.

이미 우리는 24시간 내내 들어주고 있으니까요. :D



                                                           



초등교사. 김수현.

닉네임. 달콤맘.

맘스홀릭 엄마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블로그. [달콤맘의 달콤한 육아, 달콤한 교육] 운영 중.

http://blog.naver.com/ggoryg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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