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양계장에서 주인이 주는 배부른 사료를 기꺼이 박차고 나온 암탉이 있었습니다. 암탉에게는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남몰래 간직한 굳은 소망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지요.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이것이 암탉이 가진 소망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던 이 암탉에게도 이름이 있었습니다. '잎싹'.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는 잎사귀.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리고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는 잎사귀.
참. 예쁜 이름이지요.
암탉 자신이 직접 지은 이 이름은,
'아카시아 나무 잎사귀'를 부러워해서 지은 것이었죠.
안타깝게도 '잎싹'은 폐계였습니다. 병든 닭이라 알을 낳지 못해서 버려졌지요. 죽은 암탉들이 묻힌 구덩이들 속에서 족제비에게 잡아 먹힐 뻔한 암탉의 목숨을 건지게 해 준 건 다름아닌 '청둥오리'였습니다. '잎싹'은 청둥오리의 도움으로 양계장에서 살아나왔지만, 그토록 원하던 넓은 마당에서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마당에 살던 다른 동물들의 텃세가 워낙 심했거든요. 당당히 마당에 정착하기에 '잎싹'은 그저 초췌했고 병들어 보이는 모양새였습니다. 청둥오리 역시 나그네 신세였기에 '잎싹'을 마당에서 지켜주진 못합니다.
그렇게 들판을 서성이며 겨우 살아가던 어느 날, '잎싹'은 예쁜 '알'을 발견합니다. 버려진 알을 보고 '잎싹'은 마음속에 품었던 소망을 떠올리게 됩니다. 양계장에서 자신이 낳았던 수 많은 알들 중 하나를 다시 만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잎싹'은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알을 품습니다. 하지만 알을 품으면서도 '잎싹'은 수없이 고민합니다. 직접 낳지 않은 알을 잘 품을 수 있을지, 또 좋은 어미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어미가 되고자 했던 소망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던 사실 하나 만으로 '잎싹'은 이미 훌륭한 암탉인데 말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그네 청둥오리는 알을 품는 '잎싹'을 위해 매일 밤 말없이 물고기를 잡아다 주고, 족제비의 공격으로부터 잎싹을 지켜줍니다. 잎싹이 품고 있는 알은 사실 자신의 새끼가 태어날 알이었거든요. 아내를 잃은 애끓는 부정이 그야말로 책 속에서 문장으로 절절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그네 청둥오리는 자신의 아내가 그랬듯, 족제비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나그네 청둥오리가 족제비의 먹이가 된 다음 날. 마침내 알에서는 새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오, 세상에!"
잎싹은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알 속에 아기가 있다고 믿었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꿈같았다. 작은 눈, 작은 날개, 작은 발. 모든 게 다 작았다. 그런데 앙증맞게도 다 살아서 움직였다.
"아가야, 너였구나!"
잎싹은 달려가서 날개를 펴고 아기를 감싸 안았다. 작지만 따뜻한 온기를 가진 진짜 아기였다.
저수지로 가는 오리들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와 달라진 게 없는 듯해도 잎싹에게는 특별한 아침이었다. 들판 구석구석에서는 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 누가 죽는가 하면, 또 누가 태어나기도 한다. 이별과 만남을 거의 동시에 경험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슬퍼할 수만은 없다.
엄마라면 누구나, 책에서 표현된 '특별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처음 아이를 만난 순간은 정말 꿈 같습니다. 한 때 족제비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잎싹'도 우리네 엄마들과 같은 느낌이었을까요. 아기를 만난 첫 순간. 저도 잎싹처럼 어느 날과는 다른 공기를 느꼈었거든요.
하지만 '잎싹'의 새끼는 당연히 '청둥오리'의 모양새였습니다. 병아리가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던 '잎싹'이 자신의 새끼를 '오리'라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순탄치 않습니다. 이는,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낳기 전 상상하고 기대했던 내 아이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성격이 실제와 다를 때 겪는 현실 육아에서의 고충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내 아이를 내 아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엄마 됨의 첫 과정일지도 모르겠네요. '잎싹'이 자신의 아이를 병아리가 아닌 오리로 받아들이는 장면처럼요. 잎싹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다르게 생겼어도 사랑할 수 있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저도 따라 되뇌었습니다.
맞아.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잎싹'의 아기는 초록머리를 가진 청둥오리로 멋지게 자라납니다. '잎싹'과 '초록머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족제비로부터의 온갖 공격과 위협에서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초록머리'는 오리 무리들을 지키는 늠름한 파수꾼으로 성장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잎싹'의 숭고한 사랑은 꼭 우리네 부모와 닮아있습니다. 비록 족속은 다르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 나눈 사랑은 같았으니까요.
잎싹은 날개를 벌려서 다 자란 초록머리의 몸을 꼭 안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있었다. 초록머리의 부드러운 깃털과 냄새를 느끼며 몸을 어루만졌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잎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것이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잎싹'은 이렇게 '초록머리'를 마음에 품은 뒤, 그를 오리 무리들 속으로 보내줍니다.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 없다는 것. 아이의 운명은 나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잎싹은 알고있었어요.
자, 나를 잡아먹어라. 그래서 네 아기들 배를 채워라.
그리고 자신은 결국 족제비의 먹이를 자처합니다. 족제비를 피해 더 이상 도망칠 까닭도, 기운도 잎싹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잎싹은 어린 아기 족제비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잎싹은 한 동안 먹지 못해 퀭한 어미 족제비의 눈에서 어린 아기 족제비들을 떠올립니다. 굶주린 아기 족제비들이 마치 자신이 마지막으로 낳았던 볼품없어 버려진 알과 닮아있었으니까요.
이 이야기가 절대 새드 앤딩이 아닌 이유는, 마지막 족제비의 먹이가 된 잎싹의 모습이 절대 비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잎싹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아카시아 나무가 다시 떠올랐거든요.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는 게 잎사귀.
아카시아 나무의 잎사귀가 '잎싹'과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요 며칠 날 선 말과 표정으로 아이에게 유독 차가웠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조건 없이 마음껏 사랑하리라 마음먹고도 나약한 인간이기에 지치고 힘들 때가 있는데, 요 며칠이 바로 그런 시기였거든요. 혹독한 자리에서 굳게 간직한 소망을 끝내 이뤘던 잎싹의 마음 앞에, 그런 모습의 제가 참 많이도 부끄러웠습니다.
꽤 긴 이야기이지만, 일곱 살 난 큰 아이는 미리 뮤지컬로 이야기를 접한 터라 제 목소리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읽어주다가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책을 조금씩 접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아이는 맨 마지막 잎싹이 족제비의 먹이가 되는 페이지가 나오자 저를 대신해서 책을 접어주었어요.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약 1-2분간 그냥 그렇게 서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제게 물었어요.
"엄마. 잎싹은 매일 매일 착하거든. 그런데 엄마는 매일 착하지는 않은 것 같아. 왜 그래?"
역시 아이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요즘의 날 선 엄마의 모습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어요.
"잎싹도 초록머리는 혼내지 않고 키우진 않았을 거야. 책엔 나오지 않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이렇게 에둘러 말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어요.
앞으로 조금씩 잎싹을 더 닮아가는 엄마가 되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너도 잎싹처럼 어떤 소망을 품고, 꼭 이뤄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이죠.
아이는 머쓱해했지만, 웃고 있었어요.
정말.
청둥오리를 키우는 암탉의 마음이 되어야겠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라고 말한 잎싹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어봐야겠어요.
잎싹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제게 더 진해진다면, 더 따뜻한 엄마품을 아이들에게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저는 엉뚱하게도. 이 부분이 참 좋더군요.
비록 몸은 말랐어도 잎싹은 전보다 더 강해졌다.
어둠 속의 움직임을 판단하게 된 침착한 눈, 단단한 부리, 날카로운 발톱.
초록머리를 키우며 잎싹 또한 육체적으로도 참 힘들었나 봅니다. 참 많이 힘들어서 몸은 말랐어도. 전보다 강해졌대요. 침착한 눈과 단단한 부리, 날카로운 발톱을 얻었대요.
우리도 "엄마 되기 참 힘들다. 녹록지 않다."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힘든 만큼, 우리도 무언가 얻어지는 것이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 예상치 못한 큰 위안이 되네요. 그러면서 정말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겠죠. 더욱 엄마가 되어가는 것이겠죠.
+
안 읽어보신 분께 꼭 추천드립니다.
위의 간단한 줄거리로는 잘 전달이 되지 않거든요.
초등교사. 김수현.
닉네임. 달콤 맘.
맘스홀릭 엄마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블로그. [달콤 맘의 달콤한 육아, 달콤한 교육] 운영 중.
http://blog.naver.com/ggoryg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