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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맘 Feb 09. 2016

엄마들이 SNS에
아기사진을 올리는 건.

누가 뭐래도 난 '엄마'다.



제가 아이를 낳기 전. 

그러니까 육아가 무엇인지 잘 모르던 철없던 시절. 

육아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오해했던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육아는 ‘재밌고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었죠. 



이런 믿음을 갖게 된 이유의 2 할은 제가 그냥 아이를 원래 좋아했기 때문이었고. 

나머지 8  할은 주변인의 SNS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들이 많은 직업의 특성상, 제 주변에는 여자선배가 많았는데

그들 중 아기가 있는 분들의 SNS에는 방긋! 어쩜 그리도 쌩긋! 웃는 아기사진이 많았었나몰라요. 

이따금씩 가뭄에 콩 나듯. 서럽게 엉엉 울고 있는 아기의 사진도 올라오긴 했습니다만,

그마저도 보는 이로 하여금 그저 '오구오구'하게 만드는 귀여운 아기들의 사진이었어요. 


그 귀여운 사진들에게 제가 제대로 속은 겁니다.

육아는 마냥 재밌고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고 말이죠.

 





육아가 재밌고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는 말. 

사실 맞습니다. 

육아는 재밌고 즐거우며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의 생명을 품었다가 낳고, 그 생명의 자립을 돕는 일은 

그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숭고한 행복이기까지 해요.

제가 직접 육아를 시작하고보니,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마음 꽉 찬 감동을 느끼는 일이 맞았습니다.

내 품에서 잠이 든 아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물나게 벅찬 행복을 느꼈습니다.

육아는 정말 그런 일이 맞더라구요.

 





그런데 육아의 이런 기쁨 뒤에는 가려진 고충들이 실로 엄청나더군요. 

육아는 기쁘나, 그 기쁨은 절대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육아에게서 빛을 보려면, 그림자도 함께 봐야만 했어요.



육아의 그림자라고 한다면 

일단 저는 출산 후에 겪는 여자 몸의 각종 변화들이 그것들이라고 봐요. 

그러니까 머리카락이 숱하게 빠져서 속알맹이(?)가 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잇몸이 내려앉아 이가 시리다거나, 탱탱했던 아랫 배에 뱃가죽이 넘실넘실 파도친다거나, 

그 와중에 아기를 열심히 들고 날라서 생긴 영광의 팔뚝 알통들이 그래요. 

세상 천지에 이보다 못난 여자는 없을 것 같고. 

인생 제일로 못생긴 시즌이라는 마의 고3시절보다 못난이지수가 더 높을 것 같죠. 

그도 그럴것이 육아라는 작업은 여자로서 나를 꾸미는 데에 단 5분도 허락지 않더라고요. 

그 시간에 아기 옆에서 부족한 잠을 잘 수 밖에 없는 본능에 충실한 여자의 몸이 바로 엄마였어요.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지 못하는 것의 부당함은 또 어떤가요. 

또 여기에 달래지지 않는 아기의 울음을 달래야만 할 때, 아이가 아플 때 겪는 마음의 수고까지. 

에고. 육아로 인한 그림자를 나열하자면, 우리 모두 밤을 새야 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웃고 있는 사진 속 아가들에게 꼭 속은 것 같은 느낌도 든 건, 출산 후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죠. 

생후 3일된 아기를 안고 처음 집에 들어서는 순간, 

sns속 방긋 웃고 있는 사진 속 아이들과 그 사진들을 보며 달콤한 육아를 꿈꿨던 제 자신이 떠오르더군요. 

속았다. 속았어! 

그 당시 저는 모든 아기들이 사진에서처럼 이렇게 웃고만 있는 줄 알았었네요.


혼자만의 티타임... 육아는 이걸 그렇게 그립게 만든다. 




요즘 저는 부쩍 혼자 있고 싶어요. 

아무의 방해도 없는 곳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듣거나, 보고 싶은 영상을 보거나, 차를 마시고 싶어요. 

책 한 권이 있다면 더욱 좋겠어요. 아니 없더라도 좋아요. 

그냥 혼자서 멀뚱히 생각하고 싶어요. 

이렇게 육아의 그림자가 도무지 걷힐 줄 모르는 날, 그런 날에는 유난히 고독이 고파요. 

그런 날엔 자꾸 중얼거리게 되요.


어느 정도까지 키워놔야, 아이들이 몇 살 정도가 되어야 내가 좀 편해질까.

언제쯤이면 나는 해방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오는 고된 하루 육아의 퇴근길에, 제가 던진 물음에 답이 떠올랐어요. 

 

정신차려라. 미안하지만, 그 언제란 끝끝내 오지 않을거다!



다소 암울할지 모르지만, 생각을 정리해보니 바로 이것이더라구요. 

왜냐하면, 육아는 산 넘어 산이니까요. 

어린 아기의 육아가 몸의 육아라면, 큰 아이의 육아는 정신의 육아죠. 

아이가 몸을 가눌 수 있게 되면 다 끝난 것 같지만? 어림없는 소리.

이제는 정신을 가누는 걸 가르쳐야 해요. 

몸을 가누는 것이야 어찌 보면 기능적인 측면이 크니, 그 스킬을 터득하게만 하면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정신을 가누는 걸 가르치는 건 굉장히 추상적이고 입체적인 작업이잖아요.

게다가 지금의 나조차도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건지 헷갈릴 때, 더욱 자신이 없어지고말죠. 

이따금씩 나의 정신도 바르게 가누지 못할 때면 암담하기까지 해요.

내가 이 아이의 정신을 어찌 올바르게 가누도록 할 것인지, 눈 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러니 육아의 끝은 어쩌면 없어요. 없어.



이유는 또 있습니다.

또 우리가 육아에서 어찌됐든 해방되려면, 나를 대신할 그 누군가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나타나기가 어디 쉽냐는 거죠. 

그렇다고 만에 하나. 정말 실제로 그 누군가가 나타나 버려서 

“그 동안 수고했다. 내가 네 아이들 잘 키워줄테니, 너 이제 그만두고 고독의 시간 좀 가려볼래?”라고 한 대도, 

당당히 “오케이, 콜!”할 수 있냐는 거죠. 

전... 아마 못 그럴 거에요. 



그래요. 

결국 지금의 내 자리는 끝끝내 내가 붙잡고 있는 자리임에 틀림이 없어요. 

육아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을 것도 아닌 것이죠. 

어른으로서 내가 선택한 일이고 그러니 마땅히 등져서는 안 될 일이고요.




   


‘에휴, 모질게 아이들 두고서, 고독 즐길 자신도 없으면서 왠 푸념을 그리 했나.’


자신에게 헛웃음을 보내면서, 방문을 닫고 나오는 길에 습관처럼 제 sns에 들어가봅니다.

그 곳엔 비슷한 듯 보이지만, 모두 다른 자람이 내 눈에만 보이는 아이들 사진이 가득해요.

울고 있는 사진도, 웃고 있는 사진도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나요.

그 블링블링한 빛 때문인지, 순간 제게 검게 드리워졌던 그림자마저도 옅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쩌면 엄마들이 자신의 sns에 자기보다 아이사진을 더 많이 올리는 건,

‘얘가 내 아이에요.’라고 내 아이를 자랑하고 알리고픈 마음보다

‘나는 이 아이의 엄마에요. 나는 '엄마'에요.’라고 내 정체성을 알리는픈 마음일지도 몰라요.

또 길고 넓은 육아의 그림자만 보고 있는 엄마의 시선을 

순식간에 반대로 돌려서 육아의 빛을 바라보게 하는 그 마술 같은 힘을 알아서 일지도 몰라요.



제 사진기에는 오늘 날짜의 아이들 사진이 또 몇 장 쌓였어요.

육아의 그림자가 유독 진한 날에 다시 꺼내보면, 진했던 그림자만큼 더욱 빛이 났었다는 것 알게 되겠죠.


   

빛나는 우리 아이들 모습 한 번 더 들여다보렵니다.

모두 오늘도 행복한 육아하시기를.



                                                   




초등교사. 김수현.

닉네임. 달콤맘.

맘스홀릭 엄마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블로그. [달콤맘의 달콤한 육아, 달콤한 교육] 운영 중.

http://blog.naver.com/ggoryg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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