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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맘 Feb 11. 2016

엄마, 내 마음엔 '파랑새'가 있어.

진짜 파랑새는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보면, 그 동안 내가 책을 얼마나 허투루, 성의 없이, 고찰 없이 읽었는지를 뼈저리게 알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아이가 세계명작을 읽기 시작한 뒤로는 더욱 그래요. 제목을 보면 오래 전 분명히 읽은 듯하지만, 막상 아이와 함께 책장을 펼치다 보면 예상과는 다른 스토리에 과연 내가 이 책을 읽긴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니까요. 어렴풋이 기억하는 낯익은 스토리도 새롭게 다시 보이곤 해요. 어린 시절의 어설픈 눈엔 보이지 않았던 글귀가 갑자기 보석처럼 달리 보이는 건 그만큼 제가 인생을  살았다는 것의 반증일까요?


  벨기에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가 딱 그랬습니다. 몇 번이고 읽은 기억이 분명히 있고, 줄거리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데, 아이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시간 내내 제게는 새롭고 신선한 감동이 있었어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틸틸과 미틸 남매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낯선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파랑새를 찾아 떠납니다. 파랑새를 보는 것이 할머니의 아픈 딸이 가진 유일한 소원이었거든요. 낯선 할머니는 틸틸과 미틸 남매에게 마법의 다이아몬드가 달린 초록 모자를 줍니다. 이 모자와 함께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동안, 틸틸과 미틸 남매는 갖가지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체험을 하게 되죠. 남매는 여행을 하면서 여러 파랑새를 만나게 되지만, 파랑새들은 그들 손에 잡힌 뒤, 바로 죽고 맙니다. 결국 남매는 파랑새를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긴 여행에서 돌아와 눈을 떠보니 크리스마스아침입니다. 남매는 꿈은 꿈 뒤, 이상하리만큼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죠. 방 안에 있는 비둘기가 파랑새로 보이는 순간 그들은 깨닫게 됩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죠.


연극 <파랑새>의 한 장면.       (출처: 파랑새 : 지식백과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2016년 새해를 맞이하고 세운 계획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이가 없을 때엔 비교적 단촐했던 새해 계획이, 아이가 생기니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한 명 더 생기니 또 달라졌죠.  또 그 중 큰 아이가 점점 더 '큰' 아이가 되어감에 따라 새해 계획은 점점 거창해져갔습니다. 내 개인의 계획 뿐 아니라, 아이의 계획도 함께 세워야 했거든요. 그저 떡국 한 그릇 먹고 한 살 더 먹어 유치원의 가장 큰 형님반에 다닐 수 있다는 즐거움에 빠진 첫째는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첫째는 '계획'이라는 걸 모르는 나이라고 해야 분명할 겁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어떤 계획을 어떻게 실행하고 있나 싶어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여기저기 기웃거려봤습니다. 영어 정보, 수학 정보, 국어 정보, 책 정보, 음악 정보, 체육 정보. 차고 넘치는 정보가 흐릅니다. 넘치는 강물에 휩쓸리지 않을 굳건한 나무는 보기 드문 것처럼, 차고 넘치는 정보에 분위기가 휩쓸리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어느 새 저는 아이의 계획을 보다 효율적으로 짜임새 있게 짜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아이에게 많은 부담은 주기 싫으니,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효과를 볼 수 있는 근사한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머리가 여러 날 아팠습니다.



  동시에 '행복한 2016년을 보내는 것'도 제겐 중요한 계획 중 하나였습니다. 하루 하루 즐겁게 사는 것,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하하호호 큰 소리로 소리내어 매일 웃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계획이었어요. 현재라는 이름으로 그 순간 흐르고, 과거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지나갈 버릴 우리네 인생임을 모르는 바 아니니까요. 행복을 목표로 정하고 보니 뭔가 이상하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 형체없는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저조차도 무언가 어색하다고 생각하던 차, 책 속에서 이 구절을 만났습니다.



참 딱하기도 하지! 틸틸!
너희 집은 문이랑 창문이 터질 정도로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우리는 늘 웃고 노래하지.
우리가 샘솟듯이 만들어 내는
즐거움 때문에
벽까지 춤추고
지붕까지 들썩거릴 정도라니까!
단지 네가 그걸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거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는 문구가 날카롭게 와닿았습니다.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교육 정보들은 분명히 잘도 보이고, 잘도 들렸는데 정작 행복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멀리 있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더라고요. 그러고보니 애초에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우스운 짓이었어요. 굳이 행복과 관련한 계획을 세우려거든, '행복한' 2016년을 보내는 것보다 '행복을 발견하는' 2016년을 보내는 것이 더 어울렸겠지요.


  아이의 계획을 내가 세우는 것도 만만치않게 우스운 짓이었어요. 아이에게 독서력을 기르기 위해 책을 읽히는 계획, 취학 전 기본적인 외국어능력향상을 위한 영어노출계획, 무리 없이 셈을 하기 위한 수학 계획, 악기를 하나 시작해서 꾸준히 할 예체능 계획... 이렇게 짜임새 있고 실속있는 계획을 짜서 아이로 하여금 그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엄마의 의무'라고 연초에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엄마의 의무'가 아니었어요. 엄마의 의무는 그저 자신의 도처에 깔린 행복을 볼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것이었어요. 엄마가 행복한 눈과 귀로 세상을 살고, 아이를 키울 때, 아이 또한 짜릿한 행복을 누릴 것이며 스스로 더욱 행복할 거리를 찾아 나설테니까요. 그것이 셈이든, 책이든, 악기든, 노래든, 영어든.



행복이 보이는 사람, 행복이 들리는 사람. 그런 마음으로 2016년을 산다면. (출처: unsplash.com)


 




 무엇이든
 새로운 눈으로 본다는 게 중요해!
인간이란 참 묘한 존재들이란다.
요술쟁이들이 죽은 뒤로
인간은 제대로 보질 못해.
게다가
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심조차 안 하지.
다행히 감긴 눈을
번쩍 뜨이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단다.

 



  '마법의 다이아몬드가 달린 모자'를 틸틸과 미틸 남매에게 주며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든 새로운 눈으로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죠. 새로운 눈으로 보지 못하는 동안, 우리 모두는 그저 감긴 눈으로 세상을 사는 것 뿐입니다. 우리에게 '마법의 다이아몬드가 달린 모자'란 새롭게 보는 눈은 아닐까요.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어떤 것을 대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동물과는 다른 점이 '생각'할 수 있다는 점.  더 나아가 같은 인간이라도 미래사회에 인재로 불리려거든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이 두 가지만 보아도 우리에게 할머니가 말한 '새로운 눈'은 우리 사회를 사는데 이미 필수덕목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많은 정보들 중에서 아이들의 감긴 눈을 뜨게 해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정보들은 많이 없었습니다. 창의성이 향상된다는 달콤한 문구는 많이 달려있었지만, 창의성이 어떤 훈련으로 쉽게 향상되는 능력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저 매 순간, 온 몸의 촉수를 이용해서 기쁜 것을 기쁘게, 슬픈 것을 슬프게, 우스운 것을 우습게, 화나는 것을 화나게, 감동적인 것에 감동을 느끼며 살려는 노력. 그 노력이 필요할 뿐이지요.



요술쟁이들이 죽은 뒤로 인간은 제대로 보질 못해. 게다가 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심조차 안 하지.


 




   아이들을 위해 다소 각색된 버전의 그림책 '파랑새' 이었지만,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은 아이를 감정적으로 '자유롭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영어를 흘려듣고 집중해서 듣고, 수학 셈을 손가락 없이 하고,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를 알고, 줄넘기를 몇 개 넘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누가 봐도 쉽게 보이는 것들 말고, 눈에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행복'이라는 감정을 더 자유롭게 느낄 수 있도록 아이를 놓아주어야겠다고 말이예요. 어른이 강요하는 행복 말고, 스스로의 촉수를 이용해서 느끼는 방대한 행복을 아이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게 말이예요. 강요하지 않아도 어떤 날의 바람결이, 다른 어떤 날의 그것과 다름을 느낄 수 있고, 그 날의 특별한 바람결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엄마는 그저 엄마 자신의 행복을 눈에 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맛을 보며 살면 아주 훌륭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리고 이렇게 행복감을 스스로 충만히 느낄 수 있는 것도 우리 아이만의 '강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함께 생겼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을테니까요.


엄마, 내 마음엔 파랑새가 있어.



책을 읽고난 뒤 아이가 말했습니다. '행복하다'는 아이의 다른 표현이었을겁니다.

파랑새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마 이미 도처에 있는 중이겠죠. 그리고 이미 우리 마음 속에도 있고 말이죠.

모두들 파랑새를 찾는 하루 보내세요. :D




                                                          



초등교사. 김수현.

닉네임. 달콤맘.

맘스홀릭 엄마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블로그. [달콤맘의 달콤한 육아, 달콤한 교육] 운영 중.

http://blog.naver.com/ggoryg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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