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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Sep 18. 2017

종교는 없습니다만


어릴 시절 집에 혼자 있으면 교회 전도를 나온 아주머니들이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잦았다. 정적을 깨는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현관의 작은 구멍으로 상대를 보고 문을 열었다. 그때는 누가 찾아오면 아무도 없는 척하는 게 괜히 미안해서 거의 문을 열어주었다. 전도 아주머니들은 집 안에 어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종이를 주면서 늘 그렇듯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거나 하나님을 믿으라는 인사를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차가운 현관문에 귀를 대곤 했다.


우리 집의 공식 종교는 불교이지만 나는 딱히 종교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믿고 의지하거나 신념을 심어줄 수 있는 실체적 대상이 부모님과 주변의 어른들뿐이었다. 그렇다고 어른들에게 마음에 둔 말들을 다 꺼냈다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혼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속마음이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비현실적인 상상이 더 확실한 종교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매일 보던 텔레비전 만화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지구의 위기를 돕는 지구 용사들과 위급한 상황에서 요술을 부려 문제를 해결하는 변신의 주인공들을 동경했다. 평화와 행복을 위해 날고, 사라지고, 괴력을 발휘하는 캐릭터를 보면서 어쩌면 종교란 것은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의 가능성을 믿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마음속에 작은 동굴 같은 게 있어서 그 상상을 부추기고는 했다. 부모님의 언성이 높아지거나 이빨이 너무 아플 때, 밤에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이유 없는 불안감에 떨 때면 어딘가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를 상상했다.  


친구들의 성화에 교회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들이 준 종이를 보고 입모양을 얼추 맞춰서 찬송가를 불렀다. 문제는 기도 시간이었다. 기도 중간에 추임새를 넣듯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는 교인들을 보다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예배가 끝나고 또래 아이들이 그룹별로 모여 과자도 먹고 새로 온 친구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선생님으로 보이는 어른이 나를 소개했다. 친구들이 벌써 내 이름을 알려 준 모양이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눈앞이 흔들흔들했다. 엄청난 환영의 박수소리를 듣고 새로 온 친구에게만 준다는 사탕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반장 한 번 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국민 학교생활 역사상 최고의 환영 인사였다. 왠지 환호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꼬박꼬박 나오는 착실한 어린이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옆구리 한쪽이 쿡쿡 쑤셨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밖을 나서려는데 언제 따라 나왔는지 선생님이 앞으로 교회에 꼭 나오라며 손에 천 원을 쥐여주었다. 나는 왜 돈을 주는 건지 이해가 안 돼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고 그 이후로는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어 교회에 가지 않았다.


교회에도 가 봤고 상상 속의 인물을 떠올려도 봤지만 나만의 종교의식과 같은 것은 매일 밤 별을 보는 일이었다. 벽 쪽에 붙어있는 책상을 무릎으로 딛고 창문에 걸터앉아 별이 많이 떠 있는지 보는 일이 좋았다. 오래된 나무틀에 싸인 창문은 열 때마다 드르륵거렸다. 밤 공기가 얼굴에 닿자마자 듬성듬성 켜진 아파트 불빛 위로 마주한 별은 마치 내가 창문을 열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먼발치에서 사그라질 듯 반짝이는 별을 한참 바라보다가 속말을 했다. 내일은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달라거나 짝이 된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해 달라는 식이었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꽤 의지가 됐다. 가끔 별에게 빌었던 것 중에서 이루어진 것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른 가능성은 다 제쳐두고 순수하게 별을 향해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도 하늘을 본다. 예전 서울에서의 밤과는 달리 별을 보기가 힘들지만 그 시절의 아이는 지금도 하늘을 보는 어른이 되었다. 예전처럼 별을 향해 두서없는 소원들을 나열하지는 않아도 오래 봐 온 친구를 만나듯 눈을 맞춘다.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고 해도 가끔 하늘을 올려다볼 때 마주치는 무언의 반짝임이 홀로인 마음을 위로한다. 평범한 하루와 일상의 틈새에 여러 번 침투하는 감정과 삶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따끔거릴 때면 하늘이 크게 숨 쉴 수 있는 무한한 여백이 되어준다. 찾기 어려운 별 하나를 눈에 담는 일은 어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묘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만약의 가능성을 믿게 만드는 어떤 대상 하나를 품고 사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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