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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Oct 30. 2017

당신의 바깥, 우리의 곁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라고 시작하는 책을 읽었다. 한 권의 책을 읽은 남자가 책의 세상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책의 제목은 「새로운 인생」. 책의 세상은 오히려 현실을 비현실적이고 무력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힘으로 그를 끌어당긴다. 책의 존재를 알게 됨과 동시에 사랑하게 된 자난과 함께 여행이 시작되고 여정의 과정에서 죽음을 목격하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천사의 빛을 만난다. 살인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고, 또 다른 버스를 타는 일이 반복된다.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전개 과정이 뚜렷하지 않은 소설에서 주인공이 줄곧 원하는 건 책을 통해 느낀 감정의 근원을 찾는 일이다. 하지만 오직 책으로 서술되어 있는 세상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스만이 인식할 수 있는 건 새로운 인생에 대한 환상보다 여행의 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스쳐가는 순간에 대한 자각과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새로운 인생'은 점차 현실에서 겪는 순간의 환희와 절망, 사랑에 대한 갈구로 점철된다.



이 소설 전반에는 여행이 있다. 책에 빠진 남자가 활자의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일은 인생의 여정을 탐험한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 오스만을 보면 때로 강렬한 신념 하나가 인간을 얼마나 달라지게 하고, 맹목적으로 만드는지 알 수 있다. 분명 시작은 그랬다. 그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전부가 책 속에 있다고 확신했던 것처럼. 하지만 환상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고 현실의 돌부리는 끊임없이 사고하게 만든다. 지금 당장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고, 잘 익은 해가 온 대지를 스미듯 내려앉는 순간순간의 모습에 더없는 평화로움을 느낀다. 해 질 녘 불 꺼진 마을의 어둠을 응시하고, 죽은 자의 마지막 온기를 느끼기도 한다. 시대가 바뀌고 버스가 최첨단 시스템으로 바뀌어도 여정을 떠나는 자는 변함없이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간다. 그가 「새로운 인생」을 만난 것 같다고 직감했지만 정작 그 순간이 오기를 바라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소설에서 '새로운 인생'은 곧 죽음을 맞는 순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오스만이 추구해온 책의 세계는 '나'라는 경계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자 사랑이었다.



나를 삶의 중심점으로 두었을 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접점이 생긴다. 영화 <우리의 20세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담담히 바라본다. 어질러져 있듯 함께 있으면서도 고유한 ‘나’로서 존재한다. 엄마 ‘도로시아’는 아들 ‘제이미’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매번 갈등이 생기고, 그의 친구들에게 아들이 이 시대를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길 부탁한다. 막상 엄마는 행복하냐는 아들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거나 슬픔을 감추는 데 급급하면서 말이다. 원래 ‘20th Century Women’이라는 영문 제목처럼 ‘여성’이란 맥락을 빼 놓을 수 없는 영화이지만, 그저 개별적 자아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본다면 함께 한다고 해도 완전히 알 수 없는 ‘각자의 바깥’이 있다는 걸 목격하게 된다. 도로시아와 제이미의 교집합은 제이미와 그의 친구들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만 다 알지 못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느 지점 너머엔 또 다른 나와 당신이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아는 일도, 누군가에 대해 완전히 안다고 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런 서로의 바깥은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다. 마치 「새로운 인생」의 오스만이 눈앞의 현실을 두고 책의 세상을 믿고 탐닉했듯이 늘 예측 불가한 서로의 바깥, 세상의 바깥, 살아있다는 것의 바깥이 궁금하다.



모든 것의 ‘바깥’은 매력이 있다. 하지만 바깥을 꿈꾸게 만드는 시초는 현실에서만 가능하다. 서로의 눈을 보고, 대화를 하고, 사랑을 한다. 책을 읽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온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바깥’에 대한 호기심으로 매일을 여행한다. 바다의 더없는 출렁임을 바라보듯이 아무런 경계 없는 순간에 빠져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오스만처럼 삶의 경험으로 해독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종착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더 많은 ‘새로운 인생’을 바라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망망대해의 삶에서 당신의 바깥이 안녕하기를. 결국 나의 바깥과도 가깝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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