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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Mar 05. 2018

온갖 문학적 일상



바람이 순해졌다. 3월에 접어들면서 겨울 낮의 아쉬움도 덜하다. 빛은 한낮을 지긋하게 머무르고서 오래 우린 것처럼 바짝 익은 노을빛으로 물든다. 계절의 변화는 뻐근했던 어깨가 시나브로 풀린 것처럼 틈틈이 침잠하고 있다. 빛을 머금은 강물은 물결이라는 악보에 몸을 싣고 마음을 두드린다. 미풍은 잔가지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고, 여린 풀꽃의 단잠을 깨운다. 모래 밑에 사는 게들은 바닷물의 미생물을 빨아들이고 제 집 주위에 구슬을 닮은 모래 경단을 뱉는다. 바다 가까이 사는 게는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할 거다. 조개껍질은 모래사장을 무대 삼아 도처에 널려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무형식의 예술이며 음악이고 문학이다. 자연이 날 것 그대로 내보이는 순환의 증거는 책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문학적 표현을 만났을 때만큼 강렬하다.    


처음 시나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를 붙이게 된 이유는 ‘표현’이 컸다. 표현은 삶의 실제를 미화한다. 아니면 이미 아름다운 실제를 표현으로 하여금 다시 상기시킨다.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인 미술(美術)은 그림, 건축, 공예, 서예 등을 모두 포함하지만 문학의 재료는 언어로 기능한다. 문학의 언어는 사유의 결정체다. 배우가 연기를 하듯 문장은 작가의 손을 빌려 삶을 연기하는 충실한 배우다. 가끔 문장으로 드러난 삶의 편린은 연기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한 줄의 문장 안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기도 한다. 자연의 순환처럼 문학은 꾸준히 기록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가뿐히 넘나 든다. 문학적인 표현이 아름다운 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표현에 기대 의미부여를 한다는 데 있다. 애초에 표현이 하나의 그릇이라면 그릇을 채우는 내용물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읽는 사람의 자유 의지에 있다. 의미의 조각은 읽는 이의 마음이 빚는 대로 형태와 맥락이 만들어진다. 모든 표현에 완성은 없다. 정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는 표현인 채로 역할을 다할 따름이다. 먼 미래에도 쓰고 읽는 일은 그런 가치로서 영속될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작곡가 겸 프로듀서가 배우에게 피아노 치는 법을 알려주면서 “음악은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악보를 의식하고, 틀리지 않으려는 연주를 하는 배우와 달리 그는 물 흐르듯 연주를 했다. 물론 오랜 시간 피아노를 쳐 온 베테랑인 것도 있지만 피아노를 “얼마나 예쁘게 생겼어”라고 말하는 사람과 잘 쳐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건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악기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느끼게 했다. 난 “음악은 연기를 한다” 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문학적 표현을 발견한 것처럼 새로움을 느꼈다. 사람도 삶을 연기하며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때는 오로지 ‘나’라는 사람의 독백으로, 부모님의 ‘딸’로, 동생의 ‘언니’로 누군가의 ‘친구’나 ‘아내’로 내가 원하는 연기를 하며 조화롭게 살고 있는지 곱씹어 봤다. 나는 '연기를 한다'는 두 어절이 문학, 음악, 영화, 삶에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표현으로 보인다. 연기는 삶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일이므로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인물의 배역에 맞는 표정과 목소리로 표현해야 하고, 무엇보다 삶의 진실성에 닿아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문학적 표현에 빗댈 수 있다. 이를테면 비유와 같다. 원관념은 본래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라면 보조관념은 원관념을 보다 생생하고 실감 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원관념(A)이자 보조관념(B)이다. 누가 A이고 B인지는 알 수 없다. 매일의 실제와 마주하고 살면서도 다가올 허구를 기대하고 상상한다. 다음 문장을 읽지 않고는 내용을 알 수 없듯 한 치를 가늠할 수 없는 현재를 살고 있다. 지금의 가치를 보다 감각적으로 만드는 힘은 어떤 효력을 발휘할지 모르는 ‘우리’라는 비유에 있다.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보다 아름답게 한다. 때로는 더욱 절망하게 한다. 헤아릴 수 없는 먼 미래를 잊고 지금을 살아갈 가치를 부여한다. A와 B는 직접적이든 은유적이든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나’라는 문장은 ‘우리’라는 문단이 되고 ‘삶’이라는 글로 완성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봄은 더 바투 다가왔고, 세상은 비유할 것 투성이에 문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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