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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Mar 12. 2018

다시 한번, 봄

계절의 인사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낄 때는 다 제쳐두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그 사람이 느끼는 지금의 계절이 어떤지 묻고 싶다. 그에게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러 강변에 나가니 사람들이 푸근해진 공기를 가르며 멋진 배경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의 모습만으로도 이미 봄이다. 홀로 걷는 사람, 반바지를 입고 뛰는 사람, 손을 잡은 커플, 해사하게 웃는 아이와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 아빠의 따뜻한 시선을 바라본다. 나도 그 화폭에 또 다른 인물이 되어 천천히 걸었다. 걷는 일은 자신만의 가장 자연스러운 속도를 찾는 방법이다. 아무런 목적 없는 걷기는 자연에 가까이 닿을 기회이기도 하다. 빛이 드는 방향으로 고개를 드니 나뭇가지 끝마다 봉오리가 맺혀 있다. 겨우내 맨몸으로 추위를 버티고, 매일 일상의 배경이 되면서도 다시 계절을 선물하는 나무가 고맙다. 반드시 봄은 오는데도 생명이 움트는 과정을 의식하는 일은 새롭다. 겨울의 것보다 한층 여유로운 리듬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돌계단을 올라가는데 돌 틈 사이에 쑥이 나 있었다. 걸음을 보채는 사이도 봄이고, 잠시 멈춘 걸음에도 봄은 와 있다.


의외성은 우연을 가장하고 찾아오는 것 같지만 재발견에 가깝다. 매번 새로이 느껴지는 계절도 그렇고 늘 곁에 있어도 좋은 사람들도 그렇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 중 아무 책이나 꺼내 책등을 만질 때도 의외의 기쁨을 느낀다. 새로 산 책을 읽을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걷듯 시선을 두고, 쉼표와 마침표로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란한 활자처럼 순해지고 만다. 엄마가 반찬통에 꾹꾹 담아준 시래기와 시금치나물을 고슬고슬한 쌀밥에 얹어 입 안 가득 넣을 땐 1인분의 행복 그 이상이 있다. 책상에 앉을 때마다 벽에 붙여 둔 가족사진을 본다. 딸의 결혼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얼굴을 보면 나도 같이 미소 짓게 된다. 매일 의식하지는 않아도 행복했던 순간이 남아있다. 순간순간을 기억하면서 살지 못하는 ‘나’만이 여기에 있다.


한때는 계절이 변하는 게 버거웠다. 달빛에 반사된 강물의 파문조차 내게 무언의 언어로 끊임없이 말을 건다고 느껴졌다. 밤의 강물은 물음표가 없는 질문을 해댔다. 목구멍 끝까지 뭔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밤이 간신히 지나고 나면 겨울이 조금씩 무뎌져 있었다. 그러다 목련의 봉오리를, 볏짚 옷을 벗은 나무의 맨몸을, 주머니에서 손을 뺀 사람들의 활기찬 미소를 보고 봄이 온 걸 알았다. 마음이 각박하니 계절에도 탓을 하고 싶었다. 봄은 무심해 보였다. 계절을 바라보는 나의 주관적 시선과 상관없이 겨울이 지나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봄은 와 있었다. 자연은 그저 생멸의 순환을 반복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느끼는 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 무심함에 버거웠고, 한편으로 위로받았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 위를 미끄러지면서 어떤 추억은 사람을 살게 만든다는 걸 배웠다.


오늘이라는 실제를 살아도 ‘그저 오늘만 있다면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싶은 순간이 있다. 다시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불완전한 의식 안에 침전돼 있어서 우리는 기억의 중량을 안고 산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추억은 쌓인다. 수많은 어제의 중첩이 흔들리는 오늘을 붙잡는 추가 되어준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곁에 있지 않다고 해서 사랑이 끝난 게 아닌 것처럼 존재의 기억은 마음에 닿아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고 있다. 이별의 야속함과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그로부터 생겨난 사랑이 하나씩 발견되는 기쁨으로 채워진다. 순간순간 불현듯 떠올라 웃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꿈에서 만날 수 있다. 추억이라는 주머니는 그 속을 손끝으로 바로 짚을 수 없을 만큼 넓고 부드럽다.


얼마 전 동생이 결혼을 했다. 처음에 동생이 남자 친구라고 소개한 나의 제부는 왠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같았다.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서 첫인상부터 동생과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오래 산 부부들이 함께 해 온 삶의 내력 때문에 닮는다던데 둘도 그랬다. 늘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던 동생은 회사 생활을 병행하며 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분주하고 행복한 때를 보냈다. 결혼식 날, 햇무리가 비추듯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사로웠다.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동생 부부의 모습은 내게 또 다른 봄이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함께 함으로써 빚어지는 건가 보다. 나는 그들이 행복할 것임을 믿는다. 앞으로의 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호기심을 멈추지 않고 걷는 길에서 두 사람이 함께 만들 기억의 바랑도 더 깊어질 것이다.


새로운 계절은 그것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서 발견된다. 지난 일은 모르는 사이에 기억의 추를 지탱해주고 있다. 봄은 지난 시간의 내력에도, 사람들의 얼굴에도, 동생 부부의 가지런한 뒷모습에도 있었다. 꽃이 피고, 더 유순해진 봄바람을 느낄 때쯤 또 어떤 계절의 얼굴이 찾아올까. 어떤 추억으로 살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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