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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Mar 26. 2018

지루한 어른이 되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생이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이 완벽한 대구법은 분명 역사에 남을 말임에 틀림없다. 명언은 짧고 강렬한 일침을 준다.  미사여구가 없어도 그 자체로 대담한 멋이 있다. 명언에 함축된 의미가 가볍지 않은 이유는 시간이라는 관념이 녹아있어서이다. 처음 이 말을 본 게 이십 대였는데 그땐 마냥 멋지다는 감정에 취했던 기억이 난다. 한창 너도나도 싸이월드를 하던 시절이라 미니 홈피 메인에 프로필로 적어두기 딱 좋은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이십 대의 어떤 시간은 품목만 조금씩 바꿔가면서 매일 폭탄 세일을 해야 하는 점포 같았다. 제대로 된 품목을 제 가격에 팔아 오래 장사할 마음을 가질 여유도 없이 언제 망할지 몰라서 뭐라도 팔자는 심정으로 품목을 바꾸고, 값을 터무니없이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매대에 보란 듯이 진열돼 있어도 아무도 사 가지 않던 시간을 견디며 언젠가 누구나 찾는 물건이 되길 고대했던 때가 있었다. 마음이 물러서 작은 일에 상처받고, 이유 없이 억울했고, 운은 나만 비껴가는 기분이었다.           


쉬지 않고 일했고, 결혼을 했다. 다시는 마주하기 싫은 이별도 겪었다. 다행히 기억은 날 선 그대로 있지 않고 풍화되었다. 사진으로 본 이십 대의 나는 삶을 비관하던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지금도 젊지만 분명 그 시절의 빛깔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다시 멋진 옷을 입고 찾아왔다. 찰리 채플린의 말엔 분명 ‘시간’의 힘이 함축돼 있을 것이다.


한 번은 엄마에게 어떻게 살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잠시 무거운 표정을 짓더니 엷은 미소를 띠며 “너희들 때문에 살았다”라고 답했다. “아니 그런 거 말고”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말문이 막혔다. 엄마가 아닌 당신의 삶을 물은 거였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겐 살아왔다는 증명이고, 이유인데 그걸 빼고 이야기한다는 게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 질문을 했을 당시 나는 이유 없이 사는 게 버겁고, 두려웠다. 사실은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드냐고, 돈 벌기 너무 힘들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냐고 털어놓고 싶었다. 생각만 했다. 살면서 이미 뭔가 한꺼번에 당겨 썼다. 많이 준 사람에게 뭘 또 내놓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푸념하기 싫었다. 어떻게 살았냐는 질문은 한 번으로 그쳤지만 시간이 흘러 가끔 술잔을 기울이면서 당신은 어떤 학생이었는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은 무엇이었는지, 앞머리는 어떤 방법으로 동그랗게 말고 다녔는지, 할머니 속은 왜 썩였는지 물었다. 내가 세상에 없을 때 당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이 좋았다. 엄마는 대답보다 먼저 생각에 빠져들었고, 그렇게 하나씩 묻고 답을 듣다 보면 듬성하던 마음 곳곳이 채워졌다. 엄마는 살아온 이유를 ‘자식’이라고 주저 없이 답하면서도 별책부록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모녀라는 관계를 떠나 자신만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 시간을 반추하며 내뱉는 말속엔 단단함이 있었다.


어떻게 살았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냐는 의미가 강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월요일이 수요일이 되어있고, 눈 깜빡하는 사이 일요일이었다. 일에 쫓겨서가 아니라 원하는 삶에 대한 걱정과 계획을 헤아리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잘 살고 있다는 보증, ‘나는 괜찮다’는 어떤 명확한 해답이 필요했다. 당장 속이 뻥 뚫릴만한 해결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삶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에는 줄곧 바라 온 일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의 이루지 못한 꿈을 알고 싶었다. 결국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당신의 언어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의 몸피로 드러나는 건 윤슬과 같은 순간이었다. 빛이 머물다 간 자리를 세세하게 짚어낼 수 없지만 그곳에 빛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해 보였다.


최근 읽은 에세이 「걱정 말고 다녀와」에서 ‘수습사원’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밑줄을 그었다. 정확한 언어로 쓰였지만 애매모호하게 읽혔는데 그 의미가 수습사원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습사원이란 몰라서 배우는 사람. 몰라서 배우는 사람이란 적응하는 사람. 적응하는 사람이란, 옆에서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동료를 보며 배워서 가르치는 사람. 잘 배워야지 하면서도 딱히 뭘 배우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뭔가 배운 사람.


수습사원의 마음은 복잡하다. 잘 하고 싶어도 잘 안 되고, 배우려고 노력해도 배우고 있는지 모르니 허둥지둥 주어진 일에 동분서주하다 출퇴근을 반복한다. 과정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정확하게 체감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 ‘뭔가 배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 글을 읽다가 ‘잘 산 인생’이라는 정직원에 채용되기 위해 매일을 수습사원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수습 딱지를 떼고 나서 느낀 점을 질문받는다면 시원하게 표현할 수 없다. 다만 스스로 한 뼘 더 성장했음을 어렴풋이 직감할 뿐이다. 한편으로 아직 배우고, 적응해야 할 게 많다는 걸 안다. 수습의 과정이 끝났어도 다시 뭔가 수습하는 삶을 살 거라고. 그래도 처음 같지는 않을 거라고 위로하면서 말이다.


찰리 채플린이 ‘비극’과 ‘희극’이란 말로 함의한 것은 시간이 흘러 서서히 찾아오는 삶의 표정일 것이다. 이제 그의 명언이 과거처럼 마냥 멋진 말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젠 비극과 희극을 떠나 과정의 지난함을 안다고 착각하는 지루한 어른이 되었다. 혹은 과정을 겪어내지 않으면 진짜 실패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수습사원의 마음을 놓지 못하는 어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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