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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May 28. 2018

소비, 욕망의 악몽  



백화점에 혼자 남은 꿈을 꾼 적이 있다. 나는 여성복 매장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폐점 시간이 한참 지났는지 사람의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다행히 불은 켜져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구를 찾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마네킹이었다. 날카로운 턱과 꾹 다문 입술이 보였다. 불안하게 의식하는 마음을 누르려고 눈을 부러 치켜세웠다. 순간 마네킹은 길고 짙은 속눈썹을 깜빡이며 팔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더니 주변의 모든 마네킹이 무장 해제된 듯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소원하던 옷과 장신구를 걸친 그녀들은 더 이상 모조품이 아니었다. 소리 없는 무리에 쫓기다 깼다. 마네킹들이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텅 빈 백화점에 홀로 남아 쇼핑을 즐겼을까.       


나는 늘 백화점과 가까운 곳에 살았다. 초등학교 때는 잠실에 대형 마트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전이라 시장이나 상가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엄마는 가끔 나를 데리고 백화점에 있는 돈가스 집에 갔다. 하얀 식탁보, 정갈한 은빛 식기, 윤기 나는 크고 흰 접시에 놓인 돈가스를 먹고 나면 특별히 뭘 사지 않더라도 손을 잡고 백화점을 돌았다녔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아름다웠다. 글리터가 촘촘하게 박힌 메리제인 슈즈가 갖고 싶었다. 첫 강아지 ‘윙키’를 만난 것도 백화점이다. 나는 백화점만 가면 뭐든 갖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이였다.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가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최대 사치가 돈가스와 1층에서 파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정도였던 것 같다. 한번은 피아노 학원 발표회에 입을 옷을 보러 갔는데 구경만 하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엄마는 실망한 나를 다독이면서 시장에서 비슷한 걸 사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새마을 시장에서 사 왔다는 짙은 밤색의 벨벳 원피스는 빨간 머리 앤이 매튜에게 선물 받은 ‘볼록 소매가 달린 원피스’를 떠올리게 했다. 앤과 달리 나는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피아노 발표회에 나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딸을 이기지 못하고 번번이 카드 할부로 옷과 신발을 사줬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살다 보니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일도 없거니와 아무리 갖고 싶어도 할부를 해서까지 사지 않는다. 뒤늦게 나 자신이 참 골칫덩어리 딸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왜 과거에 말리고 혼내지 않았냐고 물었다. 엄마는 당신의 눈에 너무 예뻐서 어떻게든 사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자식에게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지금도 그 마음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도시에 살면 도로에 심은 가로수보다 더 많은 소비의 덫에 노출된다. 소비는 웨하스 과자처럼 견고해 보여도 바삭한 첫 식감을 제외하면 입 안을 꽉 채우지 않는다. 허전해서 계속 먹게 된다. 집에서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스타벅스와 대형 마트가 있고 조금 더 걷다보면 상점과 백화점이 있다. 이제는 온라인이라는 무형의 소비 촉진 코드까지 연결돼 있다. SNS에 접속하면 타인이 산 물건이나 음식 사진을 수시로 보게 되고 수많은 제품이 이미지라는 진열장에 전시돼 있다. 어떤 주말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플리마켓이나 축제라는 이름을 단 이벤트로 소비된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필요한 책만 사려고 접속을 해도 얼마 이상 사면 주는 적립금이나 사은품이 걸려 고민을 한다. 책조차도 더 잘 사는 방법을 따지는 현실이 답답하다. 당장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끄고 보다 중요한 일을 하면 좋을 텐데 꾸역꾸역 카드 결제를 마치고 나서야 안심한다. 필요보다 욕망을 부추기는 시대를 살면서 점점 현명한 소비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욕망의 유통기한은 한정적이라 매번 일시적인 조급함을 낳는다. 사야 할 이유는 언제든 합리적으로 다가온다. 누가 사줘야만 가질 수 있는 수동적 입장에서 돈을 쓰는 주체가 되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주체든 객체든 소비의 방향은 양방향이 아니다. 가족과 건강, 사람과 책으로 얻는 소중한 인식들이 삶의 자산인데도 막상 어떤 결정을 할 때 걸림돌이 되는 것은 돈이다. 역시 돈이 많아야 좋다며 새로운 사실을 안 것처럼 무릎을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물건과 가지고 싶은 물건 누군가의 사물은 폐기 처분되지 않는 한 인간의 생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순간순간 즐거워도 다들 자기만의 방에 머무는 긴 시간을 버티고 있을까. 결국 행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향하는 지점을 보는 눈은 스스로의 판단에 달렸다. 욕망의 진폭이 아무리 변죽을 부린다 해도 오늘도 조금씩 행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다시 꿈 얘기다. 그냥 꿈일 뿐이어도 마네킹의 입장으로 상상하면 늘 욕망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지칠 대로 지쳤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되어 본 적 없는 사람의 꿈에 나타날 희망을 갖고 저 물건을 사고 말겠다는 시선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적 밝고 깨끗하게 빛나는 백화점이 내 것이기를 소망한 소녀에게, 어른이 되어서도 늘 무언가를 흠모하는 사람에게 악몽을 선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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