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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Jun 04. 2018

 착각의 즐거움   



가끔 착각하면서 산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뭐든 할 수 있고, 누가 뭐라 해도 스트레스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다. 저 사람은 날 좋은 시선으로 보고 있으며 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모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이다. 때로는 착각이 유용하다. 마음대로 지어낼 수 있고 한번 만든 모양은 꽤 견고해 보인다. 착각이 주는 위로가 만화경처럼 불안을 왜곡한다. 습관처럼 착각하면서 살 수 있다면 일상은 좀 더 유연해질 수도 있다.


내겐 잘할 수 있다는 착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중의 하나가 글쓰기다.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면 ‘이걸 정말 올릴 거야?’싶은 감정이 들 때가 많다.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을 쓴 바바라 애버크롬비는 회고록이나 에세이를 쓰는 작가들을 ‘노출증 환자’라고 표현한다. 글쓰기는 픽션이 아닌 이상 ‘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등단한 작가도 아니고, 아직 출판 경험도 없지만 매주 월요일을 마감으로 정해두고 글을 쓴다. 때로는 주변의 비아냥거림도 감수한다. 글을 올리면 돈이 되냐는 질문부터 "이걸 써 봐라, 저걸 써 봐라." 하면서 대박 날지 어떻게 아냐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사실 그럴 여력이 없다. 그런 말을 의식한다고 해서 글이 더 잘 써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두고 혼잣말로 거지발싸개 같다면서 계속 쓴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발행을 누른다. 쓰지 않는 것보다 쓰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뻔뻔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하고 싶었다.’, ‘하고 싶다.’, ‘할까.’, ‘하면 어떨까.’라고 망설이면서 매사가 조금씩 아쉬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수첩에 글이 되지 못한 낙서가 쌓이고, 하나둘씩 컴퓨터 폴더에 글쓰기의 흔적이 남는 일이 즐겁다.    


관계에도 착각을 적용할 수 있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 거다. 또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니면 그 사람의 장점을 떠올려보고, 나 또한 완전하지 않은 사람임을 상기한다. 상대가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적이 있다. 마음은 참 평등하다. 안 볼 사이도 아니어서 감정을 적당히 누르고 지냈는데 그 사람도 내 마음과 다를 게 없었다. 당연한 일인데 속은 것처럼 분한 걸 보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여기서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있다. ‘척’의 기술이다. 좋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온갖 척을 해야 한다. 늘 그 지점에서 패배했다. 기술도 없는 ‘척’을 하고 집에 돌아와 거울에 비친 민낯을 보면 뭘 한 건가 싶은 패배감이 들었다. 나는 계속 볼 사이라면 서로 할 말을 해야 뒤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부질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 솔직한 대화가 싸움이 되기 시작하면 강도가 ‘약’이던 감정도 단번에 ‘강’으로 변한다. 상대에게 쏟는 말, 표정, 기운이 고스란히 나를 괴롭힌다. 날 선 감정에 사로잡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결국 불편함에 결박된다. 엉킨 목걸이를 푸는 심정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감긴 건지 알 수 없는데 제대로 꼬여있다. 처음에는 그 지점을 찾으려고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손으로 만지면서 풀릴 것 같은 방향으로 줄을 넣어보기도 한다. 그냥 포기하고 다른 목걸이를 할까 하다가도 엉킨 게 거슬린다. 인내심이 바닥에 이르렀을 때 의외의 부분에서 풀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애초에 어떻게 엉키게 됐는지 알 수는 없다. 싸움은 남지만 막상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왜’는 사라진다. 그래서 관계는 우선 마음이 일어나는 원인을 스스로에게 두면서 상대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착각을 필요로 한다.  


어른이면서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늘 새로운 정의를 하게 된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 만남보다 이별을 더 많이 겪는 사람, 추억이 많은 사람, 기쁨 뒤에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사람 등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또 어떤 표현이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다. 실제보다 표현이 더 그럴듯한 말들이 넘쳐날지도 모른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도 있고 잎이 먼저 나는 나무도 있다. 저마다의 생장점에서 무엇이 먼저 뻗어나가는지를 나무가 결정하지 않는다. 의미부여를 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 때문에 끊임없이 회자될 뿐이다. 다르게 해석하려는 착각의 힘은 꽤 든든하다. 대상의 실제는 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것 같지만 기억으로 재생되는 순간 깎이고 무뎌진다. 그런 빈틈에 그늘도 지고 햇빛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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