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I Jul 02. 2018

 나부터 힘



 장맛비가 내린다. 빗소리로 온 세상이 자박자박하다. 빗줄기는 사람들이 사는 가장 낮은 곳으로 닿고야 만다. 사람들의 고단한 발자국을 지우고 볼우물 핀 얼굴로 세상의 소리를 음소거하는 빗줄기. 그 왁자지껄한 흐름을 온몸으로 맞는 나뭇잎은 제 빛보다 더 선명해진다. 빗소리가 그치고 나면 정말 여름이 시작될 것 같다. 차가운 물에 손을 씻고 냉기가 남은 손을 따뜻한 목덜미에 올려놓는다. 기지개를 펴고 발끝을 세워 중심을 잡고 머리로 원을 그리면 습한 공기에 찌뿌둥해진 몸이 한결 시원해진다.


텁텁함을 느끼는 일상 안에서 부러 찾는 계절의 기분이 있다. 시원한 원단의 티셔츠를 입듯 얇고 가벼운 책을 자주 읽고, 일을 할 때는 몸 어딘가에 깃털이 달렸다는 상상을 한다. 깃털에 바람이 스치는 자연스러움을 장착했다고 상상하면 스스로도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말소리, 행동 하나 하나의 무게를 덜어내니 같은 일을 하는 하루의 속도도 꽤 부드럽게 흘러간다. 사실 일을 할 때는 정반대의 상황이 더 많지만 ‘일을 한다’가 아닌,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주어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결혼 생활에 치이고, 가족에 치인다. 그것들은 나와 평생을 함께 빛나고, 바래기도 할 배경이다. 조화롭게 잘 흘러가고 싶은 매일의 바탕색이다. 정작 스스로는 깃털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려 해도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적이 많다. 반대로 타인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이 바닥나기도 했다. 그 바람에 오랜 시간 쌓아 온 애정조차 동이 나 버렸다. 상처를 준 사람을 생각하다보니 처음에는 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시작된 마음이 방향을 틀어 나를 향하고 있었다. 하루도 놓지 않고 적던 일기장의 글자 수도 줄어들었다. 일기장의 반도 채우지 못한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빈 종이로 끝이 났다. 텅 빈 공백만큼 헛헛한 날들이 쌓이고 있었다. 최근 생활을 하는 나와 온전한 나 사이에 틈이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는 이미 저만치 기울어져 있었다.   


쉬는 날에 샤갈 전시를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갔다. 일이 아닌 뭐라도 해야 힘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나선 외출이었다. 버스를 타면 창밖의 풍경을 보느라 절대 잠을 자지 않는 나인데 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눈을 감고 있었다.


‘오늘 외출 괜찮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왔다. 버스는 노선이 바뀌어서 예술의 전당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사당역을 향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다시 마을 버스를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먼저 큰 유리창이 있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묵직하고 산만한 소음이 밀려들었다. 원두를 넣은 기계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소리, 원두 찌꺼기를 탁탁 털어내는 소리, 주문을 받는 소리, 높은 천정을 울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섞여있었다. 여러 소리가 엉킨 공간에 앉아있으니 멋진 섬에 홀로 남은 기분이었다. 커피와 쿠키가 놓인 테이블 위에 일기장을 꺼냈다. 가끔 일기장을 다시 보면서 기록 안에 담긴 스스로의 모습을 구경하듯 바라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오늘 칸에 이런저런 생각을 적었다. 적고 있는 마음과는 다른 마음이 ‘그렇게 적는다고 뭐가 달라져?’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뭐라도 적고 나니 전시를 보고 싶다는 욕구도 함께 일어났다.


커피숍에서 한 시간가량을 머문 후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전시장에 들어갔다. 샤갈의 삶을 닮은 선과 색으로 가득한 작품들을 별 생각 없이 바라봤다. 고향, 연인, 유대인으로서의 삶, 자화상, 종교관이 담긴 그림과 판화들을 둘러보다 전시 벽면에 쓰인 샤갈의 말이 눈에 띄었다.


 “예술에도 삶에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어쩌면 한 사람의 예술 세계를 집약하는 말인 동시에 오늘 미술관에 온 이유인 것 같았다. 너무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 마음 한쪽이 시큰했다. 다이어리를 꺼내 그 말을 적어두었다.  


바깥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했다. 예술의 전당에 가면 꼭 들르는 음악분수 앞에 앉아 ‘you raise me up’의 노래에 맞춰 춤추는 분수를 멍하게 바라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 가방을 정리하면서 전시 팸플릿을 한쪽에 세워뒀다. 책상에 앉으면 마주하는 벽에는 늘 기분에 따라 덕지덕지 붙여놓은 스티커와 엽서, 종이로 가득하다. ‘happier’가 적힌 스티커, 일본에서 사온 빵 모양의 메모지, 네덜란드 하늘이 담긴 엽서, 빨간 글씨로 ‘here’라고 적힌 책갈피, 결혼식 날 행복했던 가족사진이 있다. 그 밖에도 과자 포장지를 뜯어 붙인 것, 물건에 붙어 있던 귀여운 스티커, 영화 포토 티켓이 마스킹 테이프의 접착력에 의지해 매달려 있다. 빵 메모지 뒤에는 ‘이 책상에만 앉으면 글쓰기 신이 강림하기를 간절하게 바라옵니다’라는 말을 적어두었다. 매일 책상에 앉는 나의 기분과 상관없이 늘 오밀조밀하게 재미와 긍정을 부르는 재료들이다.


즉흥적으로 책상 정리를 해 보기로 했다. 벽면에 붙어 있던 엽서를 다시 서랍에 넣고, 스티커는 버리기 아까워서 일기장의 빈 곳에 하나씩 붙였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날에는 샤갈 전시 입장권을 붙였다. 듬성듬성하던 일기장이 꽉 찼다. 애초에 공백은 그런 이유로 남아있던 것처럼 덤덤했다. 빈 곳을 어떤 식으로든 꾹꾹 눌러 채우는 사람은 결국 나였다.


깃털의 마음을 가지려는 나, 어떤 날이든 일기를 쓰는 나, 우울해도 미술관에 가는 나, 책상이 놓인 벽에 좋아하는 걸 붙이는 나도 다 같은 사람이다. 그저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마음이 여기저기에 남아있었다.


'사랑의 색은 우선 나로부터 생겨나야 하는 게 아닐까?'


아까 미술관에서 멍하게 서 있던 무채색의 나에게 속삭였다.

작가의 이전글 정말 아름다운 건 당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