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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Jul 09. 2018

바림, 기억

그라데이션하는 하루하루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비를 맞는 상상을 한다. 중학생 때 옆집 친구와 일부러 비를 맞은 적이 있다. 우리는 매일 만나서 집 앞 공원을 걷거나 배드민턴을 쳤는데 그날은 긴 장마 탓에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누군가 “그냥 나갈까?”라고 먼저 얘기했고, 비를 맞아도 되는 낡은 티셔츠를 갈아입고 나섰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강한 빗줄기 때문인지 동네에는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목적 없이 걸으면서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무시로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웃었다. 지금도 비가 내리면 우산 바깥으로 팔을 뻗는다. 손가락에 빗방울이 닿으면 그날의 기억이 잠금 해제된 것처럼 떠오른다. 기억이란 늘 그런 식이다. 비밀번호를 가진 사람은 나인데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어떤 순간에 열린다.  


얼마 전 집들이에 초대됐다. 요즘에는 집들이를 잘 안 한다는데 일부러 초대해준 마음이 고마워서 향초와 음료수를 사 들고 갔다. 직접 만든 고추잡채, 떡볶이, 바지락 찜과 음식점에서 포장해 왔다는 아귀찜이 차려져 있었다. 남편 때문에 십수 년 동안 가끔 소식을 듣던 형 동생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어쩌다 나이 얘기가 나왔는데, 남편과 함께 인라인스케이트를 탔던 한 형이 과거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친구이던 시절, 그가 늘 스케이트를 탔던 지하철 역 앞 광장에서 가끔 인사를 나누곤 했다. 빨간색 체크무늬 치마에 리본을 단 셔츠를 입은 고등학생이 대화 안에서 불쑥 떠올라 잠시 멍해졌다. 평소 늘 만나는 사람들이 아닌, 관계의 집합 바깥에 있다고 인지하고 있던 사람의 입에서 과거의 내가 튀어나오다니. 나도 기억하지 못한 내가 갑자기 등장한 기분이었다. 왠지 까마득했다. 까마득한 시간 안의 나도 지금의 나인데 왜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졌을까. 어제 일처럼 생생하던 기억들이 시간에 비례할수록 점점 멀어진 것은 아닐까. 기억하며 살지 않은 나를 예상치 못하게 발견했다.


지금을 사느라 잊고 사는 기억들이 있다. 다 잊었다고 단정할 순 없다. 지금, 여기의 일상은 비를 맞으며 해맑게 웃던 열여섯 살 소녀와 함께 지나왔기 때문이다. 기억은 참 무심하고 질기다. 가까운 기억을 몇 번이고 더듬고 나서야 ‘아 그런 적이 있었지’ 싶은 것도 있다. 엄마는 물건을 잘 보관하려고 하다가 어디에 뒀는지 잊은 적이 있다고 했다. 너무 소중해서 꽁꽁 싸매고, 숨겨놓는다고 더 잘 찾을 수 있는 건 아닌가보다. 애초에 물건을 소중하게 보관했던 기억조차 잊어버릴 바에야 그냥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아끼는 마음으로 다루면 될 일이다. 비오는 날은 그렇다 치고, 고등학생 때 내 모습을 누군가의 말로 ‘발견’에 가깝게 떠올리게 된 건 놀라웠다. 관계의 친밀도와 상관없이 우리 주변을 스쳐 지나가거나 머무른 이들은 매일 서로의 기억이 되고 있다.


샤갈의 판화 작품을 보다가 ‘바림’이라는 기법이 생소해서 알아보았더니 그라데이션을 뜻하는 거였다. 그라데이션은 색을 일부러 옅게 하거나 더 진하게 해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인데 특히 선과 색의 어우러짐이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더 두드러지게 하려고 주변의 힘을 조절하고 선과 색을 나눈다. 그래서 연하고 진하게 드러난 모든 곳이 상호 보완적이다. 그림 전체를 구성하는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바림으로 그린 작품은 그림 전체를 조망하듯 바라보거나 세밀한 부분들을 꼼꼼히 살피는 즐거움을 모두 느낄 수 있다.   


한 사람을 구성해온 시간이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바림’이 꽤 근사한 일상의 기법이 된다. 시간이 빚은 수많은 선과 색으로 기억도 바림이 된 셈이다. 바림은 혼자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매일 걷던 길, 유년 시절, 만나 온 사람들과 함께 어딘가에 희미하게 또는 선명하게 그어 놓은 흔적이다. 미술관 한편을 밝힌 작은 판화 안에 선을 강조한 부분과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그은 흔적이 오밀조밀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고는 작은 액자와 같은 삶도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마다의 규격 안에서 조화로운 삶으로. 기왕이면 나와 우리를 만든 시간의 선과 색을 의식하며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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