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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Sep 21. 2018

재미 좀 볼게요  



나는 재미있게 살고 있나?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두고 스스로에게 묻는 단어는 ‘재미’이다. 지금 내가 벌인 일들이 정말 즐거워서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밥벌이를 위한 일은 재미라기보다 근원적 필요에 가까우니 순도 백 퍼센트라 할 수는 없다. 나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매달 같은 날에 숫자가 찍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여길뿐이다. 그렇다면 일하는 시간 외의 나는 얼마나 즐겁게 살고 있나. 일부러 캐묻지 않으면 생각할 일 없는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매일이 비슷한 하루 같아도 일상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건 딴짓에 있다. 크리에이터 송창의는 「격을 파하라」에서 ‘사소함 속에 숨겨진 장엄함을 발견하라’고 했다. 한 때 사람들은 언제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지 궁금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을 하곤 했다. 질문이 어렵다고 하면 최근 행복했던 순간을 물어봤다. 대부분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답을 내렸는데 조카가 날 보고 웃어줄 때, 시내에 나가서 친구들과 라멘을 먹은 일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는 서로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고 신경 쓰지 않는 문화라고 했다. 질문을 하고 다닐 당시, 나는 행복이란 단어가 꽤 버거웠나 보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의 무의미함도 느꼈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들어가는 긴 복도에 빛줄기가 내려앉아 있어서 고개를 숙이고 걸었는데 이마가 따뜻했다. 왜인지 몰라도 누군가 이마를 짚어주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그냥 좋은 것에는 점성이 있어서 척박한 내일을 발붙이게 하나보다. 사소함의 장엄함이라는 건 대단한 역설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최근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했다. 첫날 쭈뼛거리며 들어간 반에는 나이도 직장도 다른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는데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에 커피를 한 잔만 마시고 주말에는 아예 마시지 않는다는 분은 하루 한 잔도 일할 때 정신을 깨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중에 창업을 하거나 관련 업체에서 일하기 위해, 지금 카페를 하는데 더 공부하려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공부를 해도 저마다 다른 배경이 있다. 공부를 하는 동기가 꼭 그에 적합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중요한 건 뭔가를 하려고 온 사람들이라는 거다. 나는 오로지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재밌을 것 같아서!


기계도 계속 사용해야 길들듯이 사람도 즐거움을 위한 ‘작동’이 필요하다. 기계는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지만 사람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 배움이 그렇다. 시도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들을 향해 자꾸 나를 작동해 보는 거다.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몸과 정신에 일단 ‘시작’ 버튼을 누른다. 주의사항이 있다. 같은 버튼만 반복해서 누르지 않기. 추출 버튼이 기계의 양 쪽에 있는 커피 머신은 기능이 같아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해야 더 오랫동안 쓸 수 있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누르는 쪽만 반복해서 추출하다 보면 기계 고장이 더 쉽다고. 낯선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지금껏 잘 쓰지 않았던 버튼 하나를 누른 것 같았다. ‘역시 배움은 좋아!’라고 속으로 몇 번을 환호하면서 이론서에 밑줄을 긋고 선생님의 말씀을 필기했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욕심내서 하느라 재밌는 일에 할애하지 않은 시간이 너무 아까울 지경이었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i’m afraid of being afraid” 두려운 감정을 갖게 될 것이 두렵다는 주인공 ‘마고’의 말이다. 영화에서는 사랑의 감정이 전환되는 지점에 주목하지만 우리가 뭔가에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시작을 할 때마다 머뭇거리는 감정과도 다르지 않다. 짐작하고 가늠하는 과정에서 시도하지 않은 상태의 두려움이 생긴다. 생각 안에서만 소용돌이 칠 불안을 만들고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고는 소울메이트인 남편 ‘루’와 새로운 사랑 ‘다니엘’ 사이에서 감정의 충돌을 느끼는데 두려운 감정을 갖게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다니엘에게 갈 수 있게 된다. 마고처럼 사랑 때문에 힘든 선택을 하는 과정이 아닌 바에야 현실의 우리는 즐거움과 재미를 위한 선택을 주저할 일이 없다.


앞으로 또 어떤 재밌는 일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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