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미있게 살고 있나?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두고 스스로에게 묻는 단어는 ‘재미’이다. 지금 내가 벌인 일들이 정말 즐거워서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밥벌이를 위한 일은 재미라기보다 근원적 필요에 가까우니 순도 백 퍼센트라 할 수는 없다. 나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매달 같은 날에 숫자가 찍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여길뿐이다. 그렇다면 일하는 시간 외의 나는 얼마나 즐겁게 살고 있나. 일부러 캐묻지 않으면 생각할 일 없는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매일이 비슷한 하루 같아도 일상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건 딴짓에 있다. 크리에이터 송창의는 「격을 파하라」에서 ‘사소함 속에 숨겨진 장엄함을 발견하라’고 했다. 한 때 사람들은 언제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지 궁금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을 하곤 했다. 질문이 어렵다고 하면 최근 행복했던 순간을 물어봤다. 대부분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답을 내렸는데 조카가 날 보고 웃어줄 때, 시내에 나가서 친구들과 라멘을 먹은 일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는 서로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고 신경 쓰지 않는 문화라고 했다. 질문을 하고 다닐 당시, 나는 행복이란 단어가 꽤 버거웠나 보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의 무의미함도 느꼈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들어가는 긴 복도에 빛줄기가 내려앉아 있어서 고개를 숙이고 걸었는데 이마가 따뜻했다. 왜인지 몰라도 누군가 이마를 짚어주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그냥 좋은 것에는 점성이 있어서 척박한 내일을 발붙이게 하나보다. 사소함의 장엄함이라는 건 대단한 역설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최근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했다. 첫날 쭈뼛거리며 들어간 반에는 나이도 직장도 다른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는데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에 커피를 한 잔만 마시고 주말에는 아예 마시지 않는다는 분은 하루 한 잔도 일할 때 정신을 깨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중에 창업을 하거나 관련 업체에서 일하기 위해, 지금 카페를 하는데 더 공부하려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공부를 해도 저마다 다른 배경이 있다. 공부를 하는 동기가 꼭 그에 적합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중요한 건 뭔가를 하려고 온 사람들이라는 거다. 나는 오로지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재밌을 것 같아서!
기계도 계속 사용해야 길들듯이 사람도 즐거움을 위한 ‘작동’이 필요하다. 기계는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지만 사람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 배움이 그렇다. 시도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들을 향해 자꾸 나를 작동해 보는 거다.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몸과 정신에 일단 ‘시작’ 버튼을 누른다. 주의사항이 있다. 같은 버튼만 반복해서 누르지 않기. 추출 버튼이 기계의 양 쪽에 있는 커피 머신은 기능이 같아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해야 더 오랫동안 쓸 수 있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누르는 쪽만 반복해서 추출하다 보면 기계 고장이 더 쉽다고. 낯선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지금껏 잘 쓰지 않았던 버튼 하나를 누른 것 같았다. ‘역시 배움은 좋아!’라고 속으로 몇 번을 환호하면서 이론서에 밑줄을 긋고 선생님의 말씀을 필기했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욕심내서 하느라 재밌는 일에 할애하지 않은 시간이 너무 아까울 지경이었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i’m afraid of being afraid” 두려운 감정을 갖게 될 것이 두렵다는 주인공 ‘마고’의 말이다. 영화에서는 사랑의 감정이 전환되는 지점에 주목하지만 우리가 뭔가에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시작을 할 때마다 머뭇거리는 감정과도 다르지 않다. 짐작하고 가늠하는 과정에서 시도하지 않은 상태의 두려움이 생긴다. 생각 안에서만 소용돌이 칠 불안을 만들고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고는 소울메이트인 남편 ‘루’와 새로운 사랑 ‘다니엘’ 사이에서 감정의 충돌을 느끼는데 두려운 감정을 갖게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다니엘에게 갈 수 있게 된다. 마고처럼 사랑 때문에 힘든 선택을 하는 과정이 아닌 바에야 현실의 우리는 즐거움과 재미를 위한 선택을 주저할 일이 없다.
앞으로 또 어떤 재밌는 일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