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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연 Apr 08. 2019

배려를 위한 배려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예민하리만치 꺼린다. 평소 버스를 탈 때 항상 안쪽에 앉는다. 바깥쪽에 앉으면 내리기 쉽지만 목적지에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앉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짐이 많아도 옆 좌석에 두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거나 다리 위에 올려둔다. 내릴 때까지 아무도 옆에 앉지 않아도 마찬가지이다. 조금 답답하다 싶어도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나는 바깥 구경을 하는 걸 좋아해서 한겨울에도 창가 쪽에 않는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이런 습관은 나에게도 또 옆에 앉을 누군가에게도 좋은 일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전화도 하지 않는다. 듣고 싶지 않은데 들리는 고통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을 것이라는 마음이 버스 안에서 예민하게 작동한다.



안쪽에 자리가 비어있어도 바깥에 앉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타는 사람은 바깥에 앉은 사람을 꼭 거쳐야 앉을 수 있는 구조. 그렇다고 안쪽으로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한번은 마을버스를 탔는데 맨 끝자리 바로 앞에 창가 좌석이 비어있었다. 바깥쪽에 앉은 여자에게 “죄송합니다. 좀 들어갈게요.”라고 양해를 구하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데 여자는 부동자세로 힘을 주는 것 아닌가. 너무 황당해서 “조금만 비켜주시겠어요?”라며 들어서는데 여자는 더 힘을 꽉 주며 버텼다. 결국 내가 넘어가다시피 해서 겨우 자리에 앉은 황당한 기억이 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집을 나선 지 몇 분 되지 않아서 드라마틱한 일들이 터진다. 신호를 무시하는 건 기본이고 신호 대기 중에 마시던 음료수 캔을 바깥에 던진 사람도 있었다. 도로에 나설 때마다 모험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스트레스받을 각오를 한다. 나만 잘한다고 될 일도 아닌 게 운전 아닌가. 차선 변경을 할 때 깜빡이를 넣어도 껴 주지 않는 차들을 숱하게 봤다. 결국 양보의 미덕을 바라느니 들이밀기와 눈치 싸움에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요즘 장롱 면허 탈출을 위해 연습 중인데 운전을 잘하는 것보다 차 뒤에 붙일 초보 딱지의 문구를 더 고민하고 있다. 연민에라도 호소하고 싶은 마음으로!

‘저는 글렀어요. 먼저 가세요.’라고 써서 붙여볼까.



배려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사람을 만날 때 나도 모르게 정의 내리려는 마음을 유보하려고 애쓴다. 처음 만나는 사람 오랫동안 만난 사람 심지어 가족이라도 쉽게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귀 기울여 주는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에도 편집 기능이 있어서 내가 느끼는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흘러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기(利己)가 마음 언저리에서 삐죽거릴 때 귀를 막듯 생각하기를 멈추고 싶다. 그럴 수 없다면 상대방의 이야기에 온 정신을 팔아서 그 사람이 된 듯 듣는 거다.



자기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는 사람 앞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기운이 빠진다. 반면 본인 얘기는 쏙 빼놓고 주변 사람 이야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어딘가 윤기가 나지 않는다. 지나치게 상대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점이 아쉽다”, “그것만 잘하면 될 텐데” 라며 자기 일처럼 고민한다. 상대방이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부분에 돋보기를 들이미는 사람과는 대화하기가 힘들다. 상대가 걱정하는 일이 정작 내겐 큰 의미가 아닌데도 의심하게 만드는 말을 듣는 게 불쾌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타인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면 민폐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이란 동화책에서는 주말에 동물원을 찾은 가족이 등장한다. 가족이 원하는 건 동물을 관찰하는 일이다. 먹이를 먹거나 멀찍이 있거나 잠을 자는 동물들을 가까이서 바라보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오랑우탄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구석에 웅크린 오랑우탄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는 말한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을 위한 곳이지.”

동화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일의 무용함을 일깨워 준 데 있다. 사람들은 동물을 구경하러 왔지만 동물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그냥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감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보거나 우리에 갇힌 숙명대로 삶을 이어갈 뿐이다. 여기서 재밌고 씁쓸한 포인트는 사람이 동물을 관찰하고 있는 건지 동물이 사람을 관찰하는 건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입장이라거나 생각하는 주체의 경계는 무너지고 배려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만 남는다. 사람을 대할 때도 내가 가진 프레임이 오히려 사고(思古)를 가로막는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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