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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Jul 15. 2019

요리는 위시 리스트가 아니에요


"요즘 뭐해 먹고 사니?"

늘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엄마다. 휴대전화 너머의 질문에 응답을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대충 챙겨 먹는 일이 잦아서 그럴 테지만 태연하게 “내가 얼마나 잘해 먹고 지내는데요”라고 대답해 버렸다.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면서도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별말 없이 전화를 끊자마자 며칠 전에 절인 오이 두 개를 주면서 꼭 무쳐 먹으라던 당부가 떠올랐다. 아직 냉장고 야채칸에 그대로 있다는 것까지. 절인 오이를 썰어서 고춧가루 한 스푼 참기름 한 스푼 넣어 조물 조물 무치면 맛있는 반찬이 될 텐데. 과장된 대답보다 오이지 만들어 먹었다는 말을 기다렸을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음의 소리. ‘저 사실 어제도 배달 음식 먹었는데…'   

    

배달 앱을 통해 시켜먹는 요리의 품목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치킨 피자 짜장면 볶음밥 돈가스. 가끔은 족발. 요즘에는 숙성 회까지 추가되었다. 배달 음식도 물리는 때가 온다. 헛배가 부르고 어제 먹은 음식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맛있는 한끼보다 식사를 해결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장을 보고 조리할 시간을 아꼈다고 해서 대단히 효용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2년 동안은 매일 요리를 했다. 직접 재료를 고르고 어떤 맛이 날지 상상하면서 음식을 만들다 보니 자연히 식사 시간도 길어졌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할 땐 재료와 만드는 과정 또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요리 노트를 만들고 블로그 기록까지 남기던 과거의 정성은 실종된 지 오래다. 음식 포화 세상에 사는 사람이 맞닥뜨린 부작용이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현실은 건강하고 맛있는 집밥 만들기를 늘 위시 리스트로 적어둔다.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라는 에세이를 읽다 보면 군침이 돈다. 암 선고를 받은 작가의 일상이 가벼운 문체로 이어지는데 음식 얘기가 너무 많아서 책 표지를 다시 들춰 볼 정도였다.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dvd를 몽땅 사기도 하고, 노인 병원에 가는 것보다 잘생긴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작가는 의식의 흐름에 충실하다.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진한 녹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잠옷 차림으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면서 실제로 녹차를 마시고 있다’는 식이다. 일어나자마자 먹고 싶은 걸 떠올리고,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때로 맛없는 걸 먹더라도 결코 먹는 일만큼은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세월을 거스를 순 없어도 인간이 살아있다는 건 곧 먹는 힘으로 이어지는 일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사는 일의 근본은 역시 잘 먹는 일이구나 생각했다.

요리할 것을 냉장고에 넣어두자는 남부끄러운 다짐을 하면서 마트에 갔다. 재료를 사 두면 어떻게든 만들어 먹을 강제성이 생기니 말이다. 이용 후기와 음식 이름을 훑어보고 선택한 후 등록된 카드로 간단하게 인증만 하면 집까지 배달해주는 어마어마한 편리함은 잠시 넣어두기로 했다. 오징어, 장조림용 소고기, 표고버섯, 숙주, 대파, 두부를 담고 늘 하나씩만 사던 양파도 한 망을 샀다. 빛깔이 고운 천도복숭아와 귀찮을 때 구워 먹을 냉동 차돌박이도 구입했다. 오랜만에 냉장고에 요리를 기다리는 재료들로 채워졌다.


주말 저녁에 작정하고 요리를 했다. 기름을 두른 냄비에 양파를 볶다가 썰어둔 애호박과 표고버섯을 넣고, 간장 세 숟가락과 올리고당 한 스푼을 넣고 중불에 졸이 듯 볶는다. 다음으로 숙주를 한 움큼 올리고 굴소스를 한 두 스푼 추가한다. 그 위에 냉동 차돌박이를 차곡차곡 쌓고 뚜껑을 닫는다. 마지막에 송송 썬 대파를 뿌린 후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면서 소스 접시에 계란 노른자를 넣고 간장을 살짝 두른다. 냄비에서 자글자글한 소리가 들리면 요리 완성! 밥 위에 달콤 짭조름한 야채를 올려 입안 가득 넣고 차돌박이를 노른자 소스에 푹 찍어 먹었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는 걸 보며 그냥 배달음식을 시켜먹자던 남편은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고기를 후후 불어 먹는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넘어왔다.


마주 앉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그걸 즐기는 순간이 예사로운 하루의 기쁨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역시 지속 가능한 식생활은 수고로움이 담긴 음식으로 이어가야 할 일이기도 하다. 매일 꾸준하지 않더라도 직접 만들어 먹는 건강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남겨두고 싶다. 그날은 다이어리에 우리가 먹은 음식을 그림으로 그려 두었다. 오랜만에 ‘잘 먹었다’는 기분이 이벤트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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