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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Nov 11. 2019


어떤 계절이 되면 더 당기는 맛이 있다. 선선한 바람이 쌀쌀하다고 느껴질 무렵 꽃게, 전어, 생새우 같은 게 아름아름하다. 누군가는 비가 오는 날에 무릎이 쑤시는 것 같다고 하듯 먹고 싶은 음식도 본능적으로 떠오른다고 해야 하나. 제철 전어는 인기가 너무 많아서 저녁 시간에는 동나는 일도 있다. 얼마 전에는 전어가 남아 있는 식당을 찾느라 전화를 돌리기까지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단순한 배고픔의 영역으로 설명하기 애매할 때가 있다. 그도 그런 것이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음식은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이 만든 데 있어서다. 얼마나 추상적인가. 시간이 만든 음식이라는 건. 그런데 분명히 그런 게 있다.    

아빠가 전어를 써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평소엔 각자의 일로 끼니를 해결하더라도 전어를 먹는 날 만큼은 함께였으니 말이다. 집에 들어서면 밥솥이 일하는 소리, 식기들이 부딪히고 냉장고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한 데 섞였다. 구수한 밥 냄새로 온 집안이 뜸들듯 스며드는 오후, 부엌에서 엄마가 초장을 만들고 야채를 준비하면 한쪽에서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비장한 모습으로 전어를 썰었다. 연식이 있는 두꺼운 나무 도마, 날렵하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식칼과 싱싱한 전어만 있으면 준비 끝. 남해가 고향인 아빠는 생선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 가져가라!”    


말이 떨어지면 즉시 그릇을 옮기는 쪽은 나였다. 접시가 식탁에 오르고 네 식구가 둘러앉는다. 푸른 은빛 껍질에 탱탱하게 차오른 검붉은 살, 적당한 굵기로 썬 한 점을 입 안에 넣는다. 잔가시와 차진 살을 씹어 넘길 때의 꼬독꼬독함! 여기저기 맛있다는 말이 쏟아진다. 처음에는 회로 먹다가 마지막에 커다란 그릇에 밥과 양파 상추 깻잎을 넣고 남은 전어와 함께 초장과 참기름으로 쓱쓱 비볐다. 그건 아빠가 전어를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인데 일부러 좀 많은 듯 비벼서 꼭 우리들에게 권했다. 한 숟갈 먹으면 다시 숟가락을 들어 그릇 하나를 넷이 돌아가며 먹게 되는 맛이었다. 그때 노란 식탁 등 아래 달그락대던 건 다정한 소란으로 기억된다. 그릇에 담은 게 음식뿐만이 아니던 시절이다.

20년도 더 지난 뒤에야 가게 이름을 안 곳이 있다. 항상 가게 이름이 아닌 ‘엄마, 아빠가 데이트하던 곱창 집’으로 불러서 그렇다. 어쩔 땐 ‘동대문 거기’로도 통했다.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부모님을 따라가거나 가끔 두 분이 데이트하러 갔다가 포장해온 걸 먹느라 가게 이름을 알 틈이 없었다. 엄마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둘이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대학생 때였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데 나무 뒤에 숨어 있던 바바리맨을 본 날이라 또렷이 기억한다. 이런 사람을 맞닥뜨리면 조소를 하라던 고등학교 선생님 말이 떠올라 “에게게~ 그거밖에 안 돼요?”라고 하며 미친 듯이 뛰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뛰면서 동네가 떠나가라 웃었다. 프라이팬에 포장해 온 곱창을 볶으며 아빠와 동생에게 바바리맨 이야기를 했는데 둘은 “이 집은 포장을 해서 먹어도 맛있다.”라고 우물거리며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마 그즈음이 가족 모두가 그 집 곱창을 먹은 때인 것 같다. 이후에도 엄마는 가끔 곱창을 그리워했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같이 가지 못했다.


30대가 되자마자 결혼을 했고 몇 년 뒤에는 오래 곁에 계실 것만 같던 아빠를 떠나보냈다. 엄마는 할머니와 살림을 합쳤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엄마에게 빈틈을 주지 않으려고 매일 연락을 했다. 어쩌다 우린 가장 친한 술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일 년 전쯤 엄마와 할머니를 모시고 그 곱창 집에 가게 됐다. 원래는 광장 시장에서 간단한 요기를 할 참이었는데 엄마가 곱창 집이 이 주변에 있다며 찾아가자고 했다. 엄마는 오랜 단골답게 직감으로 그 집을 찾아냈다. 마지막으로 간 게 대학생 때니 얼추 10년 만이었다. 종로 신진시장에 오래된 공구 가게 몇몇을 지나 안쪽에 있었다. 드디어 알게 된 가게 이름은 ‘원조 동대문 곱창’


가게는 좌식으로 먹던 예전 방식에서 식탁 형태로 바뀌었고 메뉴판도 요즘 느낌의 폰트로 적혀있었다. 예전 사장님 내외는 보이지 않고 자식으로 보이는 분이 운영을 하고 계셨다. 우린 항상 먹던 야채 곱창을 시켰다. 넓적하고 통통한 돼지 곱창과 깻잎이 들어간 각종 야채, 당면, 이 집만의 빨간 양념이 올라간 철판이 등장했다.


“그대로네.”


내가 꺼낸 말을 엄마는 눈빛으로 받았다. 그 눈빛에는 맛이 그대로여서가 아닌, 우리가 기억하는 시간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소주잔을 부딪히며 우리는 곱창을, 아니 어떤 공기를 추억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났는데도 장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그래서 ‘나’의 기억이 아닌 ‘우리’의 기억을 소환한다는 것. 십 년 만에 다시 먹은 곱창의 맛은 그랬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맛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맛,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맛, 자주 찾지 않았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장소의 포근한 맛. 계절이 지나도 여전히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맛. 맛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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