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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Mar 18. 2019

사랑은 뼈보다 소중해


  지인의 병문안을 갔다. 소아 병동인데 어르신이 더 많은 5인실 병동이었다. 친구는 너무 멀쩡해서 환자 같지 않았다. 괜찮은지 물었더니 병원에 온 김에 이런저런 검사를 다 해보고 나갈 거라며 말갛게 웃었다. 내가 들어설 때 병실 안은 수다의 현장이었는데 정확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침대 벽에 등을 붙인 채 한쪽 다리를 접고 앉은 할머니는 곧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 지분은 할머니가 80이고 나머지 사람들이 20 정도인 듯했다. 자식, 평생 살아온 동네, 마을회관에서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할머니 침대 옆에 금붕어 두 마리가 든 어항이 보였다. 병실에 어항이 있는 게 의외라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여기 어항이 있네요?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누가 주고 간 건데 귀찮아 죽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따 오는 딸한테 얘들 먹이를 사 오라고 해야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생명이 있는 걸 어떡해”라는 말을 덧붙이며.


  할머니는 일 년에 한 번은 몸이 고장 나서 수술을 한다고 했다. 미간에 주름이 잔뜩 진 얼굴로 올해는 다리가 말썽이라 입원을 했단다. 자기 뼈가 제대로 있는 사람은 어떤 수술을 해도 든든한 법이라며 뼈가 온전한 사람을 부러워했다. 뼈가 성한 나는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한 부러움의 종류였다. 어떤 부러움은 너무 사사롭고 물질적이기도 해서 그 말이 왠지 달게 들렸다. 할머니는 수다쟁이여도 아픈 얘기는 길게 잇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건강식품 이야기로 물꼬를 틀었다. 젊었을 때 깨나 대장부 같았을 법한 걸걸한 목소리와 반말을 섞어 던지는 특유의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병실 안 사람들이 밥을 잘 챙겨 먹었는지 보호자는 왔다 간 건지 수시로 물었다.    


  할머니와 사람들의 수다는 하루를 붙잡는 끈이었다. 아파서 누워 있어야 하고 수술을 앞두고 있어도 지금 그들 앞에 놓인 오늘을 사는 것이다. 연신 뻐끔거리는 금붕어와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들에게서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수시로 바뀌는 이야기의 주제처럼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는 시간도 지나갈 일이다.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는 믿음과 생활을 놓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사람들의 수다 속에 있었다. 오히려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나 자신이 더 약한 사람 같았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잠을 자거나 검사를 받으러 가서 대화 상대가 없어지면 꼭 스피커폰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우렁찬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재밌는 건 남편과 전화를 할 때 할머니의 태도였다. 특별히 할 얘기도 없는데 말을 길게 빼듯이 늘어뜨리고 “지금 몇 시야?”, “내가 언제 입원했더라?”와 같은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무슨 말이든 다 대꾸를 해주었다. 주차를 하고 집으로 들어간다는 분주한 상황에서도 “나중에 전화할게”라는 말 한 번이 없었다. 전화를 끊을 때는 “밥 잘 챙겨 먹고”, “힘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할머니는 빨리 끊기가 싫은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늦게 했다. 의도치 않게 전화 내용을 모두 들어버린 나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한 단어가 떠올랐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공개 통화에는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의 끈끈함이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애정 행각을 일삼는 커플 정도가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웅숭깊은 종류였다. 할머니는 잘못 말씀하셨다. 자기 뼈가 있는 사람은 어떤 수술을 받아도 든든한 법이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뭐든 든든한 법이라고. 그렇게 나도 수다스럽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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