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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Jun 10. 2019

할머니는 그 블라우스를 샀을까?

오지랖이라 부르고 다정이라 쓴다

  얼마 전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집을 나섰는데 지하철에 와서 휴대전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에 들르면 늦어질 게 뻔해서 어쩔 수 없이 지하철에 탔다. 미리 정한 시간과 장소가 있어서 가능했지만 막상 휴대전화가 없으니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우선 시간을 확인할 수 없었고 지하철 앱에도 접속할 수 없었다. 평소보다 책에 집중이 잘 되는 건 좋았다.   


 옆에 한 할머니가 앉았고 나중에 탄 아줌마가 그 앞에 섰는데 대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아줌마의 블라우스를 유심히 보더니 어디에서 샀는지 물었다. 아줌마는 행복한 백화점에서 샀다고 했다. 난 속으로 백화점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치매 노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둘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백화점 어디에서 사면돼요?”

 할머니는 당장 사러 갈 것처럼 말씀하셨고 그냥 예쁘다는 말로 끝날 줄 알았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브랜드 이름에 ‘밀라노’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할머니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아줌마는 이탈리아 도시 밀라노까지 대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지하철 안의 소리 때문에 아줌마는 할머니 쪽으로 더 바짝 붙어서 말을 이었다. “할머니. 어디로 가시는데요?”

“어디로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옷이 너무 예뻐서 구경하고 싶네. 거기로 가려면 어떻게 해요?”

 할머니는 딱히 목적지가 없어 보였다. 차분한 베이지 톤의 블라우스와 바지를 입고, 맞춘 듯한 연보라색 모자까지 쓴 겉모습만 봐서는 약속이 있어 보였는데 말이다. 언뜻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하루를 보내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목동역에 내리시면 되는데. 지금 가시게요? 여기가 신분당선이니까 가려면 가만 보자…”

그때 내 앞에 서 있던 아저씨가 굵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3호선으로 갈아타세요.”

 양재역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다시 휴대전화가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지 궁금해하면서 3호선 환승구간으로 향했다. 줄을 서서 다시 전자책을 꺼냈다. 몇 줄 읽었을까. 뒤쪽에서 아까 신분당선에서 본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책을 덮고 고개를 슬쩍 돌린 순간 눈을 의심했다. 아까 ‘할머니 블라우스 건’으로 대화를 나누던 세 사람이 계속 수다를 떨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아줌마는 백화점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언니 그 옷 있잖아. 지금 매장에 가면 살 수 있어? 할머니 한 분이 가실 건데.” 백화점 매장에 있는 사람과 친분이 있는지 블라우스 재고까지 확인해 주는 모양이었다. 양재역에서 환승하라던 아저씨는 할머니께 목동역에 가는 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셋은 원래 일행이었던 것처럼 똘똘 뭉쳐 있었다. 언뜻 엄청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특별히 조성된 모임 같기도 했다. 저 기세라면 방향이 맞는 사람이 할머니를 행복한 백화점으로 모시고 가는 상상까지도 가능해 보였다.  


 타인에게 오지랖을 떨지 않는 게 미덕이 된 세상에서 어딘가 비현실적인 장면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알고 싶은 걸 얻을 수 있는 창구는 차고 넘치는 정보 과잉의 시대 아닌가. 발품이 아니라 손품만 잘 팔아도 뭐든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건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하고 사소한 대화를 나눌 상황이 점점 희소해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필요 이상의 말을 하는 걸 반기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나 병원이나 관공서는 더 그렇다. 한 번은 병원에 갔는데 예약 접수를 하는 곳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창구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직원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서 진료 예약을 했노라고 말했다. 직원은 주민등록번호를 묻고 예약 시간을 확인하더니 종이를 줬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번에는 앞에 있는 기계를 좀 이용해주시겠어요?” 

그 직원의 말은 “기계가 있는데 왜 귀찮게 나한테 왔어요?”라는 의미로 들렸다. 온종일 많은 환자와 보호자에 시달릴 테니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그 병원에 가면 사람보다 먼저 기계를 찾아야겠구나 싶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친구가 보이지 않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간을 물었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물어본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무슨 마음이 통한 건지 친구도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서로의 집이 코 앞이던 초등학교 때나 분당과 대전으로 멀어진 중학생 때에도 휴대전화 없이 잘만 만났다. 아빠 차의 뒷좌석을 차지하던 어린 시절에는 옆에 서 있던 차가 창문을 열고 길을 묻는 일도 흔했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큰 목소리로 길을 알려주면 미소와 고맙다는 말이 오고 갔다.

 요즘처럼 시간이나 길을 물을 일이 없는 세상에서 일부러 타인과 이야기 나눌 일이 얼마나 될까. 사소한 말이라도 사람을 통하는 일이 희미해지는 세상이 되면 나는 지하철에서 본 할머니처럼 누군가의 오지랖을 경험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사소한 대화나 작은 배려가 오지랖이 아니라 다정한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행복한 백화점에서 블라우스를 샀을까? 고운 블라우스가 담긴 봉투를 들고 있을 할머니 모습을 상상했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블라우스를 둘러싼 사람들의 다정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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