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달다
어릴적 나는
명절이 별로였다.
시골 할머니 댁..
컴퓨터는 고사하고 그나마 있는 TV로는
어르신들 취향의 재미 없는
연속극같은 것이나 봐야 했는데..
그 중 최악은 바둑 방송이었다.
창밖을 봐도 지리한 논밭이 가득한
심심하고 지겨운 시골 깡촌.
그 곳에서 연년생의 사촌 동생은 내게 더없는 존재였다.
나와 가장 가까운 보폭의 그녀 곁이 좋았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 아침.
우리는 이글루를 만들자 했다.
평지를 찾아 한참을 올라..
밥때가 훌쩍 넘도록 눈을 쌓아올렸다.
시린 손끝에 입김을 불며 일어섰는데..
눈 앞이 온통 흰색이고..
콧물을 훌쩍이는 너의 볼만 빨갰다.
조금 배가 고프고..추웠고..
이글루는 어설픈 흉내조차 내지 못했지만..
아무렴 어떠냐 싶어 그녀 옆에 다시 쪼그려 앉았다.
서른 즈음.
강남역 회사 근처로
자취방을 옮겼다.
다닥 다닥 붙은
콘크리트 벽들이 높아
갑갑증이 일어난다.
고개를 들어봐도 별 수 없었다.
지저분하게 얽혀 늘어진 전선이
하늘을 가린 원룸 촌.
아침에 일어나 늦은 밤 퇴근.
시리도록 지리한 일상이 반복되는 이곳에
그녀가 이사를 왔다.
더없는 존재와의 재회였다.
이따금..
권태로운 고독이 찾아올때면
나는 주저없이 그녀 집으로 갔다.
작은방에 나란히 누워
이불을 나눠 덮고는
밤이 깊도록 대화를 하고..
웃다가..
울었고..
울다가..
웃었다.
얼음이 뒤덮힌 우주에서
너의 곁만 빨갛게 온기가 도는 듯 했다.
우리 엉망진창
이글루를 만들던 그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