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야
코시국이 된 지 2년.
그동안 나는 아이들 얼굴 절반만 보고 살았다. 낮잠 자거나 식사할 때 마스크 벗은 아이들 얼굴은 낯설기만 하다. 처음만 해도 놀이 사진 찍을 때 "마스크 살짝 내려 볼까?" 하며 찍었는데 이제는 마스크 착용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간혹 마스크 내린 사진을 찍으려 하면 "선생님 빨리 찍어주세요. 코로나 걸려요" 하고 얼른 마스크를 쓴다. 그런 아이들이 대견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영아들 역시 마스크 착용은 일상이 되었다. 작년만 해도 마스크가 답답한지 쓰지 않겠다고 집어던지거나 울고불고했다. 그때마다 나는 마스크 씌우는 행동을 무한 반복됐다. 간혹 발버둥 치고 얼굴에 핏대 세우며 우는 아이도 있다. 서로가 힘든 시간이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한숨은 절로 나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마스크에 적응하는 것뿐이다. 한 해가 지나고 이제 아이들은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이 없다. 나의 승리다. 고통의 과정을 거치고 드디어 적응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진정한 승리일까?
손 씻기, 거리 두기, 소독하기, 열 체크, QR 체크까지. 코시국에 태어난 아이들은 청결과 방역에 최적화된 아이로 성장할 것이다. 모든 것이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놀이할 때 거리두기를 한다. 한창 또래관계가 형성될 시기임에도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 거리두기는 필수다. 놀이 시작은 늘 안전하다. 서로 두 팔을 벌리고 아이들이 생각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놀이한다. 문제는 놀이가 물이 오를 때부터다. 적당한 거리는 근소한 차이를 두고 슬금슬금 가까워진다. 간혹 ‘몸은 저 멀리, 얼굴은 더 가까이’하며 “나는 거리두기 하며 놀고 있어”라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얼마나 친구와 놀고 싶으면...’ 마음은 알지만 수용해서는 안 된다. "얘들아 거리두기 하고 놀자.”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긍정적인 관계 형성에 안전이란 이름으로 가림막을 세웠다. 건강과 안전은 중요하다. 유아기 또래관계를 통한 사회기술 습득 또한 중요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교사로서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위해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하루 일과 중 긴장감이 감도는 시간은 단연 급, 간식 시간이다. 생활 방역 필수품 마스크를 벗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긴장은 나만의 것이었나 보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을 수 있어 신났다. '조잘조잘' 이야기 소리 '꺌꺌꺌' 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몸은 점점 옆으로 기울어지고 친구들과의 간격도 점점 가까워진다. 그 순간 나는 진노한다. "마스크 벗고 이야기하는 친구 누구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 벗고 이야기 안 하기로 약속했잖아" 성난 목소리에 아이들은 얼음이 된다. 몸을 움츠리고 가림막 사이에 숨는다. 눈만 말똥말똥한 아이들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 화를 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허용하는 순간부터 생활 방역은 무너진다. 이제 아이들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더 먹고 싶거나 꼭 말해야 하는 것이 있을 때면 가림막 안에 얼굴을 푹 집어넣고 조심스레 목소리만 낸다. 내가 아이들을 통해 이뤄낸 것인데 전혀 기쁘지 않다. 마땅히 즐겨야 하는 즐거운 식사시간을 뺏은 것만 같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 탓을 하게 된다.
요즘 들어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아니 잔소리다. 나는 언제부터 잔소리쟁이가 되어버렸을까? 코로나19가 사라지면 내 잔소리도 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