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중심, 놀이 중심
"선생님 교실이 미술관 같아요. 전시회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러게. 너희들 작품으로 정말 미술관이 되었네."
"코로나 없어져서 엄마, 아빠 교실에 초대하면 좋을 텐데. 아! 대신 7살 언니, 오빠랑 동생들 초대하는 건 어때요?"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럼 다음 주에 미술관 놀이해 볼까? 미술관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내일 어린이집 안 오니까 엄마, 아빠랑 찾아볼게요."
"그래. 선생님도 주말 동안 찾아볼게.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이야기해 보자"
'미술과 조각' 주제로 놀이하던 중 한 아이가 던진 이야기이다. 매년 같은 연령을 담당해도 놀이는 아이들의 성향이나 수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올해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고민하며 계획을 세웠는데 아이들과 놀이 궁합이 이리 잘 맞다니! 내 생각을 읽은 듯 아이는 명확하게 반응했다. 같은 생각과 표현으로 오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음 깊숙한 곳에선 나의 잘남이 치솟는다. '역시 내가 잘 가르치고 있어!
2019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누리과정의 핵심은 아동 중심, 놀이 중심이다. 의미 있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기존 누리과정은 교사가 놀이를 계획하고 활동이나 놀잇감을 제공하면 유아는 그 안에서 놀이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전적으로 계획 중심 교육과정이다. 개정 누리과정은 아이들의 관심을 중요시한다. 사전에 교사가 놀이를 계획할지라도 아이들의 흥미에 따라 놀이는 변경된다. 아이들이 놀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거다. 교사는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배우고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많은 사람이 질문한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요?" 먼저 아이들을 관찰한다.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려워하는 건 없는지. 교사는 관찰을 토대로 놀잇감이나 교재교구를 제시한다. 놀이에 주도적인 아이는 추가로 필요한 것을 교사에게 직접 요구한다. 교사는 그것을 지원하고, 유아는 자유롭게 놀이하며 확장해 나간다. 아이들끼리, 아이들과 교사, 아이들과 주변 환경 간의 '적절한 상호작용'도 이루면서 말이다.
월요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지난 금요일 교사와 이야기 나눈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 엄마랑 핸드폰으로 미술관 찾아봤어요. 그런데 그림에 이름표가 있었어요. 우리 이름표 만들어요."
"아빠가 그러는데 미술관에는 그림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대요."
"미술관을 설명해 주는 종이도 만들고 싶어요."
"종이 안에 어떤 그림들이 있는지 적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젠 생각을 표현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그림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지 골똘히 생각하고 이름표에 적는다.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아이는 친구들이 미리 적어 놓은 것을 곁눈질한다. 미술관은 사전 예약 시스템 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이것 역시 아이들 아이디어다. 관람 시간, 예약 방법은 팸플릿으로 공지한다. 사전 예약한 반을 우선으로 초대장을 만들어 전달한다. 관람에 차질 없도록 예약 시간도 재확인한다.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큐레이터다. 내 작품뿐 아니라 친구들 작품까지 설명해야 한다. 상세하게 설명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일언반구 없이 혼자 앞서 나가는 아이도 있다. 아무래도 큐레이터 역할이 길잡이인 줄 아나 보다. 그렇다고 불만이 접수되는 일은 없다. 간혹 그림을 보며 질문하는 형님도 있다. 아이들은 질문에 대한 답을 열심히 한다.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7살 형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그들만의 대화 코드가 있나 보다.
미술관 폐장 시간이다. 개장은 단 하루, 아이들은 아쉬움이 남았는지 내일 또 하고 싶어 한다. 오다가다 만난 다른 반 아이들도 내일 또 보러 가도 되는지 물어본다. 모두가 더 놀고 싶다는 말에 내 마음이 뿌듯하다. "그래. 너희들이 즐겁다면 내일 또 하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