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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교사 Apr 12. 2022

체하지 않을 만큼 빨리

보육교사의 점심식사

“하아, 배불러. 난 이제 끝!”

“또 젓가락 내려놓네. 정말 입 짧다니까.”

“아니라고…. 조금 먹는 게 아니라 속도가 빠르다고 몇 번을 말하니? 하, 정말 답답하네.”


오늘도 어김없이 친구와 실랑이가 오간다. 여자들은 왜 먹는 걸로 옥신각신할까? 많이 먹으면 어떻고, 적게 먹은 면 어떤가.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먹는 속도가 빠르다. 식사 중 대화를 주고받으면 먹는 걸 멈추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대화를 소홀해하는 건 아니다. 단지 각 기관 역할에 충실할 뿐. 눈은 상대를 바라본다. 귀로 들은 이야기는 머리로 이해한다. 상대를 향한 배려는 여기까지! 이젠 나에게 집중한다. 손은 쉼 없이 젓가락질하고 입은 열심히 먹는다. 간혹 상대 이야기에 추임새 넣는 센스 정도는 동시에 발휘할 수 있다. 아마도 이게 포인트 같다. 내가 식사에 집중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 말이다. 이건 직업병이다.

출처 unsplash


어린이집 교사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아이들과 함께 한다. 식사 시간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다른 공간에서 식사하지만 이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특히 영아반을 맡을 때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식사 시간이면 아이들은 먹는 것을 포기한 듯 누워있다. 그때부터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밥을 먹이려는 교사와 먹지 않으려는 아이, 신경전이 팽팽하다. 이때 큰소리가 나서는 안 된다. 자고로 식사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져 한다. 그래야 다음 식사도 수월하다.

출처 unsplash

나는 숟가락으로 비행기를 날린다. 목 뒤로 넘어가는 원 맨 쇼도 한다. 스스로 먹는 아이를 위해 물개 박수도 준비되어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반찬을 이용한 스토리텔링이다. 내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날의 식재료,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은 ‘배추 아저씨와 고기 아줌마의 결혼 이야기’


배추 아저씨와 고기 아줌마가 살았어.
 둘은 너무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함께 할 수 없었지.
식판이 그 둘을 갈라놓았거든.
어떻게 하면 함께 할지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어.
포크를 들고 배추 아저씨를 '콕!' 집고 입속에 '쏙~' 넣어주는 거야.
그리고 고기 아줌마도 '쑥~' 집어서 입속에 '풍덩~' 하면 어떻게 될까?
드디어 배추 아저씨와 고기 아줌마가 만났네!
둘은 너무 행복했어.
이제 헤어지지 말자고 서로를 '꼭~' 안아 주기도 했어.
우리 혜인이도 배추 아저씨와 고기 아줌마가 만날 수 있도록 해볼까?


스토리텔링마저 통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 그때는 무릎에 앉히고 등을 토닥인다. 머리도 쓰다듬으며 밥을 먹인다. 이 모든 과정 속에 아이들 식사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교사인 나도 먹어야 한다. 아이들 입에 밥 한 숟가락 넣어주고 내 입에도 넣는다. 젓가락 사용은 사치다. 숟가락 하나로 해결한다. 그러다 보니 밥과 반찬은 어느새 한 곳에 모여 있다. 반찬 본연의 맛을 즐길 여유는 없다. 오래 물고 있어서도 안 된다.


“우빈아 꼭꼭 씹어 먹자. 물고 있으면 이가 ‘아야’ 해”

“차연아 누워서 먹으면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날 텐데. 바르게 앉아서 먹어볼까?”


스토리텔링 하랴. 식지도 하랴. 내 입은 쉼 없지만 배를 채우기 위해 빠르게 식사를 한다.

출처 iStock


식사 중 대변하는 아이도 있다. 나는 아이의 쾌적하고 즐거운 식사를 위해 기저귀를 갈아준다. 보송보송한 엉덩이로 식판 앞에 앉으면 좋으련만 아이는 잠깐의 틈을 노려 놀잇감으로 직행한다. 단호함이 필요한 순간이다. “안 돼." 분위기를 살피던 아이는 울상을 하고 식판 앞에 앉는다.


식사 중 구토는 다반사다. 누가 언제 할지 모르기에 일회용 비닐은 늘 내 주변에 있다. 구토하는 김새가 보이면 비닐은 바로 출동한다. 가끔은 비닐 사용할 여유도 없다. 그럴 땐 손이 나간다. 손으로 받아내지 않으면 더 큰 참사가 일어난다. 이런 일을 처리한 뒤에도 난 식사를 마저 한다. 간혹 친구들은 식사 중 ‘똥’ 이야기를 하면 비유 상한다고 하는데. 나는 직접 보고 만지다 보니 단어 정도는 우습다.


식사 중 다이내믹한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먹을 수 있을 때 서둘러 먹어야 한다. 서둘러 먹는 습관은 나에게 고질병을 안겨주었다. 식재료의 단단함 정도를 생각하지 않고 먹어 턱과 이가 약하다. 밥은 후루룩 마셔 소화불량도 자주 온다. 아이들에게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한다. 퇴근 후 식사할 때 늘 생각한다. ‘보미야! 오늘은 꼭꼭 씹어 먹자’ 생각은 생각일 뿐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늘도 친구와 실랑이를 하는 것 보면 말이다.


출처 iStock



보육교사인 나는 아이들 때문에 관절을 잃었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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