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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교사 Feb 22. 2022

잊혀지는 건 순간이구나.

새학기, 이전 담당 아이를 만났을 때

"서현아 안녕"

"..."

"서현아! 인사 안 해 줄 거야?"

"......"

우리 서현이는 오늘도 그냥 지나쳐 간다.


5살 서현이는 작년 우리 반이었다. 잠투정도 많고, 편식도 심했으며 놀이할 때 친구들과 다툼이 잦아 늘 옆에 끼고 있던 아이다. 꾸중도 많이 했지만 사랑도 많이 주었던 아이다. 등원 시간 현관 앞에 내가 없으면 들어오지 않고 투정 부려 현관 앞까지 마중 나가는 일은 허다했다. 그랬던 서현이가 나를 외면한다. 다가갈수록 서현이는 한 발짝 두 발짝 물러선다.


올해 난 6살 반 담임이다. 이 아이들은 2년 전에도 우리 반이었다. 어린이집 규모가 크다 보니 영아 건물과 유아 건물이 나누어져 있는데 2년 전 아이들이 5살이 되면서 헤어지고 약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마음이 설렜다. '아이들은 얼마큼 자랐을까? 나를 보면 뭐라고 이야기할까?' 다양한 상상 속에서 만날 날을 기다렸다.


3월 2일 새 학기 첫날, 나는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다. 아이들은 날 겸연쩍게 바라봤다. '오랜만에 만나 그런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세은이 키가 많이 자랐네! 오랜만이야. 선생님 기억나?" 세은이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세은이는 내 눈을 피했다.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나를 기억 못 할 수 있니? 너희들 고집부리는 거 다 받아주고, 똥 기저귀 갈아주며 키웠는데 어떻게 나를 잊을 수 있어!'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그리고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며 기억을 떠올린다.


'쌍둥이 건아, 세나, 어린이집 입소하고 한 달을 울어 앞으로 안고 뒤로 업고 다녔는데.'

'말문이 늦게 뜨인 윤지, 할 줄 아는 말은 '물'과 '엄마'뿐이라 요구를 알아채기 위해 늘 예민하게 관찰했지.'

'울보 헌이, 매일 집에 가고 싶다고 하루에 열댓 번 가방을 끌어안고 울었지.'

'변기가 나를 잡아먹을 것 같다고 하던 하연이, 팬티에 쉬를 자주 해 엉덩이만 수십 번 닦아주었는데.'

내 기억은 이렇게 생생한데. 너희들은 참 쉽게 잊는구나.


5살 이전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절차기억으로 저장한다. 절차기억이란 유아기 때 경험했던 감정이나 오랜 연습으로 능숙하게 익혀진 기억을 말한다. 대다수의 유아는 훗날 자신이 경험한 것을 회상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때 기억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한 유아는 성인이 된 이후 병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갖는다. 그때 기억은 없지만 감정이 남아서다. 나쁜 감정만 남는 건 아니다. 행복했던 순간, 좋았던 경험도 절차기억으로 남는다. 아이들 기억 속에서 내가 사라지는 건 섭섭하지만 어린이집이 행복했던 감정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훗날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떠올릴 때 '편안한 곳', '즐거움이 가득한 곳'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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