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친절하지 못한 딸

가족

by 다정한온기

"알았어.. 알았어.."


내가 조금이라도 강한 어조가 나오면 엄마는 늘 저렇게 대답한다

얘기하기 싫다는 내색을 표현하는 거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저 대답이 너무 싫었다


엄마는 일하는 기계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흔히 '일복'이라고 하는데

엄마는 늘 일복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일복이 터졌지' '내가 일복이 많아서 이러지'

그래서 그 일복이 너무 지긋지긋해 나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어릴 때부터 내게 심부름이나 일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디를 가도 무슨 일을 해도 힘겨운 일복은 없는 것 같았다.

근데 내게 일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내가 해도 되는걸 엄마가 한 것이니, 엄마의 일복은 더 늘어난 것 아닌가


14살부터 엄마는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복오빠와 친여동생, 친남동생도 있는데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이복오빠와 동생들을 가르치는데 보탬이 되라며 일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엄마의 이복오빠와 동생들은 고등학교 중학교까지 다 졸업을 했고 엄마만 초등학교 졸업이다. 엄마가 봉제공장에서 일해서 번 돈은 외할머니에게 고스란히 봉투째 갖다 주고 엄마는 돈 한번 만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나이가 제법 든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수십 번은 들은 것 같다.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는 그냥 그랬구나 였지만 최근 엄마가 이야기할 때는 얼마나 억울한지 얼마나 아파했는지 엄마의 감정을 제법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엄마를 더 고꾸라지게 만든 건 나의 친아빠였다.

사탕발림으로 다 해줄 것처럼 매일 회사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는 친아빠와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타지에서 어릴 적부터 일하며 힘들었던 시간의 외로움에 아마도 엄마는 눈이 가려진듯하다


"아휴 그 인간이 회사 경리랑 바람나서 니 오빠랑 너랑 키운다고 이혼하자 했을 때 했어야 했는데..."

엄마의 말에 나는 그랬다

" 엄마 그때 끝냈어야지 그게 엄마 24살이잖아 얼마나 어린 건데 나랑 오빠 생각하지 말고 새 출발했어야지.."

난 진심이었다. 엄마의 살아온 시간을 알기 때문에 난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엄마는

"야 그때 너희 둘 놔두고 갔어봐 너희 어떻게 커겠어? 제대로 얻어먹기나 했겠냐?"


그래 안다. 친아빠는 우리 남매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돈 , 여자, 술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책임감도 없었고 난 크면서 아빠의 정을 단 0.0001%도 받아본 적 없다. 엄마가 갖가지 일로 돈을 벌면 친아빠는 그 돈으로 술 마시고 다른 살림을 차리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돈을 가져가는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살았다.내 기억속 엄마는 늘 일하는 엄마로 밖에 남아 있지 않는다 연락을 끊고 살던 친아빠의 사망소식을 들었을때는 한 인간으로서 그렇게 살수 밖에 없었을까 싶어 눈물이 났다 내 몸에 친아빠의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눈물을 흘린 건 아니다. 친아빠와의 삶에서 엄마 다음으로 우리 남매가 피해자 이기 때문이다.


" 엄마 모 아니면 도지 악착같이 자라서 번듯하게 살았을 수도 있고, 상처 받은 영혼으로 불량 청소년 돼서 지지리 궁상으로 살 수도 있고 그래도 엄마는 그때 끝냈어야 해 "


참으로 독한 딸의 대답이지 싶다.

나도 결혼하고 딸만 셋인 엄마인데 어떻게 저렇게 끝내 라는 말을 쉽게 할까 싶었을 거다.


그래.. 그때 엄마가 나와 오빠를 두고 다른 삶을 택했다면 우린 어떻게 지냈을지 안다

근데 동시에 난 엄마의 구질구질한 인생이 나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해서였다.

내가 아니었음 우리 남매가 아니었음 지긋지긋한 친아빠와의 연을 끊을 수 있고 엄마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편하게 힘들지 않게 살고 있었을 거라 믿기 때문에 더 미안해서 말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미안한 엄마에게 자꾸 언성이 높아진다

답답해서 자꾸 언성을 높이게 된다

엄마의 자존심에 아들자식 딸자식에게 힘들다 말 안 하는 게 내 눈에 보이니깐 자꾸 언성을 높이게 된다

평생 바람피우고 술 마시는 전남편 때문에 인생의 한창시절을 피눈물 흘리며 일만하며 보낸 엄마인데 그냥 차라리 당당하게 소리 내고 지르는 게 나은데

엄마는 늘 "알았어.. 알았어" 이러기만 한다


나의 친절하지 못한 말투가 엄마도 서운해서 그런 것인데

나이 들면서 약해지는 엄마의 모습에 나 역시 화가 나서 친절한 말투는 온데간데없다.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의 카톡은 늘 가슴이 아프다

그냥 좀 못 뗀 엄마처럼 살았으면 좋겠는데 어릴 적 울지 말라며 몽둥이 들고 쫓아오던 기운찬 엄마로 살았으면 좋겠는데 나이드는만큼 작아지는 엄마의 기죽은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에필로그;)

과감히 친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는 건

엄마의 삶에서 절대 마이너스가 되지 않아서예요

지금은 마냥 잘했다고 해주시는 성이 다른 아빠가 있지만

그렇다고 친아빠의 흔적을 청소하듯 싹 지울 수는 없으니깐요

딸이라고 다 사근사근하고 나긋나긋하지는 않나 봐요

제가 그런 딸이 아니니깐요 그런데 노력하려고요

얼마전 본 영상통화속 엄마의 모습이 너무 나이 들어 보이는게 가슴이 아파서요




사진출처 canva,px


매거진의 이전글손맛은 세월이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