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어느 저녁
"여보세요?"
"지나야(세례명) 아빠 배가 아파서 동네 내과 갔는데 얼굴에 황달이 오고 그러니깐
큰 병원 가라고 해서 지금 빈센트 응급실이야 얼굴이 노랗게 단무지 색깔이 됐어
지금 의사들 와서 보고 가긴 했는데 너무 아파하니깐..
아휴 그렇다고 어떻게 해 진통제라도 좀 달라고 해야 되나!
응급실 오면 이게 지랄이야
이 검사, 저 검사 레지던트인지 뭔지 자꾸 물어보기만 하고
네 아빠도 저 성질머리에 아픈 거 못 참으니 야 야 잠깐만 끊어봐 아빠가 부른다.......
(예 여기 있어요 왜요...)" 뚜뚜뚜 전화가 끊어졌다
이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그냥 아픈 거겠지..
"에휴 응급환자 가는 응급실인데 아프다는데 피가 철철 나야 응급환자로만 보이나..."
엄마 전화만 마냥 기다렸었다. 치료는 한 건지 진통제라도 먹은 건지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준비해서 간 병원 응급실
역시나 아빠의 얼굴은 노랗게 변해 있었고, 통증에 온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엄마한테 자초지종을 듣긴 했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있지는 않았다. 여기까지가 나의 확실한 기억이다
그렇게 아빠가 되었다
나의 아빠는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내 나이 24살에 엄마와 연을 맺고 나의 아빠가 되었다.
"지나야 아저씨가 너 한번 같이 밥 먹자고 하는데 어때?
난 개의치 않는다. 엄마의 삶에 내가 걸림돌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고, 한 번의 실패로 얻은 다양한 지식으로 이젠 사람을 잘 만날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쿨하게 알겠다고 했고
어느 횟집에서 아빠를 처음 만났다.
긴장하고 눈치 보는 엄마의 표정도 다 읽을 수 있었고, 센척하는 아빠의 어깨도 느껴졌다
자그마한 체구의 키도 나보다 작은 아빠, (사실 엄마보다도 작은 것 같았다)
엄마도 나도 동년배에 비해 키가 커서인지 만난 남자들이 다들 키가 고만고만하네
"생일이 며칠이에요?"
엄마는 애한테 무슨 존댓말이냐며 반말하라고 아빠를 괜스레 채근했다
근데 그 존댓말이 지금도 대화중에 거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안 고치신다
"저 음력 3월 13일인데요"
아빠는
"어 날짜가 비슷하네요 나는 음력 2월 26일"
(도대체 어떻게 비슷하다는 거지?)
"생일이 얼마 안 남았구나..... 뭐 받고 싶은 거 있어요?"
나는 엄마를 쳐다보며
"엄마 접대용으로 얘기할까? 아님 진짜 갖고 싶은걸 얘기할까?"
엄마가 웃으며 너 알아서 하라고 하길래
정말 1초의 고민도 없이 나 온대 답
"저 차 갖고 싶어요!"
사실 실현되리라 생각하지 못한 선물이기 때문에 뭐 말이라도 하는 게 어떠냐 해서 그냥 튀어나온 말인데
마침 출퇴근길이 너무 멀로 버스에 매일 끼여서 가는 것도 싫어서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었다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은 참으로 생생하구나 이렇게 나눈 대화가 다 기억이 날 정도로
그렇게 나에게 5년 만에 아빠가 생겼다
타인을 배려하다 아빠를 서운하게 한 못난 딸
결혼이 한참 준비되는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상견례와 청첩장
난 청첩장보다 상견례가 너무 고민이 되었다.
남편의 어머니는 혼자되신 지 오래되셨고 만나시는 분은 계셨지만 나의 경우처럼 모두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 혼자 나오실 거라 예상했고 그럴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난 혼자 나오시는 어머니를 배려한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엄마 오빠네 어머니 상견례 혼자 나오신다고 하는데 엄마도 혼자 나가면 안 될까? "
지금 가끔 밤마다 아빠를 생각하면 가장 후회되는 일이 상견례다
결국 엄마는 혼자 나가기로 했고 , 되레 혼자 나오기로 한 남편의 어머니는 남편의 누나까지 함께 나왔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 나 혼자만 배려한다고 설레발치다 아빠를 서운하게 만든 셈이다. 지금 같으면 배려고 나발이고 없다. 그런 배려는 별 쓸모가 없는 것이니깐
어쩌면 아빠 인생에 있어 첫 부모로서 나가는 공식적인 자리이자 다시는 나가볼 수 없는 상견례라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더라면 난 그러지 않았을 텐데
엄마가 그랬다
아빠가 좀 서운해하는 낯빛이었다고 엄마의 그 말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왜 쓸데없는 배려를 한답시고 아빠에게 그런 마음을 안겨준 것인지...
작년 크리스마스도 아빠는 병원에서 항암치료로 시간을 보냈다 이때 많이 힘들었던 항암치료
5월 둘째 주
아빠의 항암이 끝나고 어버이날 겸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 아빠 다음 항암이 언제야? "
엄마는 항암 날짜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의사가 이제 항암 그만하자고 얘기했어 항암 때문에 너무 힘들고 먹지도 못하고 그러니깐 그리고 항암 치료한다고 더 나아지지 않으니깐 항암 후유증이라도 없어야 좀 편하게 지내실 수 있지 않겠냐면서 말이야"
나는 의아했다
"아니 지난번에 사이즈 좀 줄었다고 했잖아 그러면 효과 있는 거잖아"
통화할 때 아빠가 옆에 계시는 것 같은 눈치였다
"아니 그때 조금 줄고 안 줄어들고 암이 좀 있으니깐 항암치료 때문에 네 아빠 잘 못 먹고 힘들어하니 그런 말 하드라 항암치료 그만하시고 드실 거 드시고 좀 편하게 지내시라고 말이야 아빠랑 같이 들어가서 들었는데 아빠가 뭐라더라 뭐 무슨 선고? 아참 뭐라 했지.."
그러면서 바쁘니깐 일단 끊으라고 하는 엄마의 마지막 목소리로 통화는 끝이 났다
다음날,
다시 엄마에게서 온 전화 어제는 아빠가 같이 있어서 아무리 같이 의사한테 들었다고 하더래도 또 당사자가 있는데 말하기 좀 그랬다며 어제의 통화를 이어갔다
" 지난번에 진단서 서류받는데 담관암 4기라고 적혀 있더라 아마 의사도 더 이상의 치료는 소용없으니깐 몸이라도 편한 게 나을 거라 생각한 것 같아 엄마는 그냥 아빠 드시고 싶은 거 ,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제는 마트 가서 오징어 보더니 오징어 먹고 싶다 해서 사 오고 두부도 먹고 싶다고 해서 지금 두부 좀 해드리려고 "
통화 내내 울컥울컥 흔들리는 목소리를 꽉 잡고 있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한고비 한고비 넘길 때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처음 진단받고 수술했을 때도, 완치가 아닌데도 사람들 모임에 술 한잔 드시는 거에 소리 지르고 면박 줄 때도, 전이돼서 두 번째 수술할 때 갈 수 없는 멀리사는 딸이 되었을 때도. 그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이번 아빠 생신까지만. 내가 아빠 보러 갈 수 있을 때까지만, 그렇게 하루 이틀 버텨온 아빠의 생명
진즉부터 나도 아빠를 보낼 준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준비를 하고 보내도 힘들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안한채 아빠를 덜컥 보낼 수는 없겠다 싶었는데. 그런 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는 생각에 수화기 너머 엄마의 말은 아빤 이제 시한부 인생이다라고 종지부를 찍는 것 같았다.
항상 식사는 꼭 다 하셔야 한다고 잘 먹어야 한다고 하니 병원에서 식사하시고나면 꼭 딸한테 보고하신다 항암주사맞으시는것도 꼭 카톡으로 보내주신다 시작하신다고
종종 엄마와의 통화해서 엄마는
"난 아빠 그래.. 불쌍하다 엄마 만나서 고생 많이 했다. 그래서 저렇게 자꾸 짜증내고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입맛 때문에 하루에 냄비가 네다섯 개씩 나와도 그래도 아빠가 엄마 일안 할 수 있게 돈 벌어다주고 엄마 힘든 일 안 하고 살았잖아 그거 내가 다 갚은 거라 생각해 불쌍하지 친자식들은 찾지도 않고 네 아빠도 뭐 생각도 안 하겠지만 불쌍한 사람이야 그래도 너랑 오빠 친자식처럼 무조건 다해주라고 기죽지 않게 다 해주라고 그랬잖아"
나도 알고 있다. 아빠는 나를 결혼 전에는 우리 공주라고 불렀다
뭘 입어도 뭘 써도 아빤
"이야 공주는 모자 쓰는 게 멋있어 다 잘 어울려"
"오 공주는 키카 커서 무슨 옷을 입어도 다 이뻐"
나 태어나 살면서 이렇게 무조건적인 칭찬받아본 적 없는데 아빠는 그걸 나에게 해주었던 사람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망할 코로나로 아빠를 올초 1년 만에 보러 갈 수 있었다 (남편의 직업적인 이유도 있었고)
나랑 아이들만 데리고 올라가긴 했지만, 너무 좋아하던 아빠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우리가 와서 같이 먹으니 더 맛있는지 평소보다 많이 드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일부러 가져간 카메라로 아빠와 아이들의 모습을 잔뜩 담았고, 밤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보면서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빠가 드시고 싶던 짜장면도 사다 드렸고, 출발하는 길 어디 가서 술 한잔 할 수 없지만 10만 원도 손에 쥐어드렸다. 출발 후 운전대 잡고 있는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주고 혼자 울었다. 혹시 이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될까 봐....
에필로그:)
아빠의 글은 쓰기가 망설여졌어요
꼭 울거든요 가까이살지 못하지만 같은하늘아래 없을일이 자꾸 생각나
혼자 계속 울어요 근데 써야겠다는 생각이 정해졌어요 글로 남기지 않으면
지금 마음이 기억이 안날까봐서요 아빠의글은 계속 쓸려고 해요
제게는 진짜아빠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