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온기 Jun 26. 2021

상처 주지 않는 서로의 언어

영남일보 세대공감 공모전 출품작

상처 주지 않는 서로의 언어          


‘우리 결혼하면 아이는 네 명 낳아서 키울까?’ 결혼과 육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했던 말이 실제로 그렇게 되는 일은 얼마나 있을까? 2010년 첫 아이를 낳은 후 3년 터울로 2016년 막내까지 세 아이를 출산했다. 주변 친구들보다 늦은 결혼이었고, 아이 또래 엄마들은 나보다 한참 어린 엄마들이 많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과 함께 할 때, 내가 늦은 출산이라 는 걸. 너무나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그 확실한 느낌은 육아방법과 교육방법을 이야기할 때면 종지부를 찍듯 선명해졌다.           


12년간의 육아와 교육을 하며, 가장 나에게 각인이 되는 글귀는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왜 나보다 먼저 양육과정을 다 수료한 부모세대에서 ‘아이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 ‘결혼할 때 상대방의 부모를 보면 알 수 있다’라는 말을 하는지 내가 아이 셋을 키워보니 알 것 같았다.     

혼자 태어나고 혼자 자라는 아이는 없다. 부모에 의해서 태어나고 부모에 의해서 자라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은 부모다. 나도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아이들의 거울이 되었다. 거울은 거짓이 없다. 내가 보는 모습을 그대로 나에게 보여준다. 나의 아이들은 나를 보고 그대로 배우고 있고, 그 배운걸. 또 나에게 다시 보여준다. 세 살 터울의 아이들 중 첫째 아이는 나와 남편을 보고 배우고, 둘째 아이는 거기에 더해져 첫째의 모습을 보고 배우고, 셋째 아이는 부모와 그리고 두 명의 언니의 모습을 보고 배우게 된다. 셋째 아이는 거울이 4개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첫째와 둘째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습득하게 되고 말도 행동도 같은 또래보다 빠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양육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수면습관, 식사예절, 학습방법, 그리고 아이들의 먼 훗날 살아갔으면 하는 삶의 방향까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엔, 그날 아이들의 일과와 어린이집, 학교에서 있었던 일, 아이들이 했던 말들, 혼나야 했던 일, 잘했던 일 등등 자질구레한 단어 표현까지 남편에게 다 이야기하고, 같이 의논해야 될 일이 있으면 서로의 의견을 물어보고 또 제시하고 , 그게 부부의 하루 마지막 일과이다. 남편이 육아에 있어서 모든 걸 함께 공유하고 참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최대한 있었던 일을 세세히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아빠의 중저음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가장 좋은 목소리라고 해서 책 읽어주기는 최대한 남편의 몫이었고, 이른 퇴근이면 늘  아이 목욕과 재우기는 아빠의 몫이었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7살, 셋째가 4살이었던 해에 곧, 둘째 아이도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이 확장이 되면서 아이들의 사춘기에 대한 고민도 한참 할 시기였다. 여기저기에서 생생한 사춘기 부모들의 체험담과, 현재 사춘기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는 부모들의 이야기 그리고, 전문가의 사춘기 대처법등 무수한 정보를 접하면서, 어느 sns에 올라와 있던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딸아이에게

 “혹시 네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다가 김치 국물을 옷에 흘렸는데, 그때 ‘아 진짜 엄마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엄마에게 말해줄래 그건 사춘기가 시작된 거니깐 엄마도 네게 어떻게 대할지 생각할 수 있게 말이야”          


아 이런 게 사춘기인가? 라며 20년도 지난 나의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엄마에게 반말을 했던 나는 한참 예민한 사춘기 시절 문을 쾅쾅 닫거나, ‘몰라’‘ 어쩌라고’ ‘아니, 싫어 ’등 부정적인 단어로 단답형 대답이 거의 다였었다. 그로 인해 딸에게 엄마가 아닌 그저 딸한테 잔소리하는 그런 사람으로 엄마의 가슴에 상처를 많이 주었다. 지금은 되레 나이 많은 친정엄마에게 꼭 그때의 엄마처럼 내가 잔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때는 엄마의 말, 단어 하나하나가 그냥 이유 없이 다 싫었던 것 같았다. 나의 아이들도 내가 지나온 사춘기 시절 감정과 다를 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언어도 행동도 그리고 아이들이 접하는 정보도 나의 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넘쳐나고 있다. 누가 무얼 샀는지, 친구의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전혀 일면식 없는 다른 지역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든 걸 알 수 있는 상황에서 내가 아이에게 그때 시절처럼 바르게만 행동하길 이야기한다면 아마도 난 세 아이들에게 세상 둘도 없는 고지식하고 이기적인 꼰대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그 사춘기 터널을 지나면서 부모도 아이도 서로에게 표창 같은 날카로운 언어로 얼마나 많이 상처를 주고받을까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상처 주지 않는 서로의 언어’ 계획은 시작되었다.     


피할 수는 없고, 가족이라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꾹꾹 참아가며 해주길 바라지 말고, 앞으로 남은 시간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 첫 번째 계획은 

‘높임말 사용하는 아이들과, 다그치지 않고 질문하는 부모가 되자’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 자식 간에 가장 많은 다툼의 이유가 짜증 나는 말투와 부정적인 단어에서 큰 차지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강압적, 명령하듯, 그리고 모르는 게 당연한 아이들을 무시하는 말투 어릴 땐 나보다 큰 아빠와 엄마의 말에 무서워서 대꾸하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아이들이 커 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주머니는 왜? 왜 해야 되지? 다른 걸 해도 되는 거 아니야?라는 의문사를 부모에게 던진다 가끔 첫째 아이가 “왜요?”라고 할 때면 난 엄마에게 들었던 아주 재미없는 농담 “왜요는 일본 요가 왜요지~ 하던 거나 가서 해 다른 말 말고”라고 아이의 다음 질문을 차단시키는 경우가 있다, 내가 말해놓고도 너무 억지스럽고 아이 입장에서도 이해가 안 되고 ‘왜 엄마 마음대로 하는 거지’라고 생각할법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더 이상 말하기 귀찮고 그냥 빨리 해결이 되기만 바라다보니 억지로 끼워 맞춰서 대답하고 차단시키게 된다. 더불어 빠른 시간 안에 아이가 하지 않으면 또 다그치고 격앙된 목소리로 아이를 혼내게 되는 나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나는 아이 마음을 알면서 외면한 뒤 미안해하고, 아이는 자신의 질문이 왜 엄마에겐 화로 바뀌는지 속상하고, 이 과정을 사춘기를 겪는 아이와 한다면 아마도 활화산보다 더 큰 폭발이 우리 집에서 일어날 거라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3학년과 7살 두 아이에게 남편과 함께 앉아서 설명을 해주기로 했다 사춘기가 어떤 건지, 왜 사춘기라고 하는지, 사춘기가 오면 무엇이 변하지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단어와 표현으로 설명해주고, 높임말, 존댓말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 왜 우리 가족이 이렇게 해야 되는지 이야기해주고 나니 첫째도 둘째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높임말 배운 거 그리고 높임말 노래, 친구들 중에 높임말을 쓰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 아버지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며 폭포수 쏟아지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너무 다행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높임말 가족’이라는 타이틀이 생기며 시작을 했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처음 시도해보는 일이라 일단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하는 말투를 기억하며 해보자고 했다

높임말이 어떤 건지는 알지만, 태어나 아빠랑 엄마에게 한 번도 높임말을 써보지 않았던 아이들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7살 둘째는 여느 아이들처럼 말 끝에 ~요 만 붙이면 높임말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니, 습관처럼 반말 뒤에 ~요 만 붙여서 문장을 완성하곤 했다 예를 들면 ‘엄마 마트 가요’를 ‘엄마 마트 가자요’라고 말하거나, ‘제가 먹을 거예요’를 ‘나가 먹을 거야요’ 말했다. 

그래도 노력하려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중간중간 고쳐주며 이어갔고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는 제법 문장의 완성도는 높았지만, 말문 트이고 10년여를 반말을 하던 아빠와 엄마에게 높임말을 하려니 당최 생각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 높임말을 쓰면서 뭔지 모를 부모 자식 간의 높낮이가 생긴다고 해야 할까? 아님 어색함이라 해야 할까?

아직 아빠랑 엄마한테 이거 저거 사달라며 조르고 감정표현을 해야 되는데

높임말을 쓰다 보니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기보다 높임말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감정표현에서 서툴러지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자꾸 높임말에 대한 지적을 하게 되고, 아이들도 표현하기보다 말하기에 집중이 되다 보니 우리 부부는 어느새 아이들의 반말 표현을 자연스레 넘어가고 있었고, 그렇게 예전처럼 돌아가게 되었다.

그게 불과 한 달도 안돼서 제자리로 돌아간 1차 시도였다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고 다시 바로 잡으려 애쓰지도 않았다 무엇이든 간에 과하고 억지로 하게 되면 특히나 아이들의 교육은 절대 좋은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편과 다음에 다시 한번 시도해보자 라며 우리 가족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간의 흐름을 타고 지나갔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변하는걸 매일매일 알 수는 없다. 아! 우리 아이가 이랬었는데... 라며 깨닫는 순간은 휴대폰 사진을 종종 정리할 때이다. 불과 지난 계절 두 달 전 등 멀지 않은 시간의 사진과 지금 아이들의 모습을 비교하면 얼굴이 이렇게 변했네! 손이 애기였는데... 이 옷이 지난번에 입을 땐 길었는데 벌써 이렇게 짧아졌어? 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게 된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이의 변화를 몇 개월 뒤 혹은 1년 뒤에 깨닫는 것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부부의 가장 합이 잘 맞는 교육은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 중에 아이 또래 엄마들과의 나이 차이를 이야기했었는데, 그중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단호한 엄마, 독한 엄마,였다. 처음엔 단어에서 오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에 기분이 나빴었고 잠시나마 내가 정말 그런 엄마 일까?라고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왜 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이야기할까라며 많은 고민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내가 나의 교육방식에 노선을 바꾸거나 자책하며 힘들어 한건 아니었다. 난 아이들이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갓 입학한 1학년 첫째가 하교할 때 부모들이 학교로 배웅을 갔다 교실에서 한 줄로 선생님을 따라 나오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배웅 나온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등등 얼굴을 발견하고는 실내화도 갈아 신을 틈도 없이 뛰어나와 안기며 하루 종일 교실에서 규칙을 지키며 적응해야 했던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한시라도 빨리 전달하고픈 재미난 이야기를 숨 돌릴 틈도 없이 재잘거린다. 그럴 때 대부분의 배웅을 나온 어른들은 아이의 가방을 들어주고 아이의 신발주머니를 건네받아 신발을 꺼내 주고, 또 신겨준다.

이는 어린이집과 다를 바 없는 하원 모습이었다. 


감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나 역시 설레지만 힘들었을 오전 학교생활에 안아주고 토닥토닥해주며 가방도 들어주고 다 해주고 싶지만 아이는 이제 시작하고 적응하며 12년의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데 난 그 시간을 뭐든 아이를 위해 다 해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충분히 안아주고 토닥토닥 해준 뒤 신발은 스스로 꺼내 신고, 가방은 스스로 어깨에 메고 난 그런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집으로 향했다.

그게 내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첫 발이고 부모이기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권리까지 뺐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비단 공부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로 살아갈 방법도 가르치고,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공동체 생활에서 말투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우린 어른에게 존댓말, 높임말을 쓰는 문화이며. 그리고 자신보다는 어리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는 함부로 말을 반말을 하지 않는 인성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기에 아이들에게 높임말 사용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꾸준히 해주었다 


아이들에게 두 번째로 높임말을 다시 한번 노력해보자 한 것은 1년이 지난 뒤 큰아이가 4학년, 둘째가 1학년, 셋째가 5살이었다.      

“우리 예전에 해봤지? 높임말 연습 기억해?”  
   

아이들은 기억하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서로 웃으며 그날들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왜 실패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이제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한번 해봤으니깐 이젠 어렵지 않겠지? 조금씩 노력하면 어색한 것도 없어지고 좋은 습관이 될 거야!” 


그렇게 시작된 높임말은 1년의 시간이 아이들을 키를 크게 한 것처럼 그 1년의 시간은 생각주머니까지도 커지게 했나 보다. 처음보다 어색하지 않았고, 잘못 이야기했을 때는 스스로 고치기까지 하는 셀프코칭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노력해주는 모습이 예쁘고 기특하면서도 내가 하는 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정작 내 마음이 심란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되레 나에게서 아이들이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순서대로 자신의 인생을 위해 부모 곁을 떠날 아이들인데 꼭 이렇게 일찍 거리감이 들게 해야 되는 걸까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5살 셋째가

      

“엄마 이거 먹어도 돼요?”라면서 높임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얘들아 동생 말하는 거 들었어? 높임말 했어~~” 우린 셋째를 제외하고 다들 놀라고 신기해했다. 막내는 아직 좀 더 시간을 둔 뒤에 천천히 해야지 라고 생각만 하고 두 아이에게도 양해를 구했었는데, 스스로 높임말 가족의 일원이 될 거라는 듯 자연스럽게 높임말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셋째는 언니들에게 들은 높임말과 동시에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하는 말들을 두 귀로 쫑긋 들으며 나날이 완벽에 가까운 높임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그리고 6살이 된 높임말 세 자매는 우리 부부와 절대 거리가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고 더 많은 대화를 하면서도 높임말을 사용하고 있다. 몇 달 전 큰아이가 내게 물어왔다


“엄마 친구들 중에 아버지, 어머니 하는 친구도 있데요?”나는


“정말? 와~ 그 친구는 어떻게 어머니,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까? 너도 한번 해볼까? ” 그냥 씩- 웃기만 하는 큰딸, 그런 큰딸에게 이야기해주었다     


“ 00야, 엄마, 아빠랑 반말을 한다고 꼭 가까워지고 친하고 사이좋은 것 같이 느껴져? 아니면 높임말을 해도 그런 거 상관없이 엄마, 아빠는 똑같은 것 같아?” 큰아이는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을 했다. 표정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전 그런 거 상관없는데요? 말이 좀 길어지는 거지 그게 가깝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동생이 두 명이나 있어서인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 것인지, 생각하는 걸 좋아하고, 탐구하는 걸 좋아하는 큰딸은 쿨하게 대답했다.          

둘째에게도 다음날 하교하며 차에서 “00야 00은 엄마한테 높임말 쓰면 엄마랑 안 친한 것 같을까? 아님 반말로 엄마랑 말하고 싶을 때 있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물어보았다, 첫째와 같이 있을 때 물어보면 언니의 대답을 의식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할까 봐 일부러 하교하면 물어본 것인데 둘째 역시 

 

 “아니요 괜찮은데요 이제 반말하는 게 더 이상해요
높임말 해도 엄마인데요 히히”  

이렇게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높임말 사용으로 인해 우리 가족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좀 더 서로를 존중하게 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훈육이 필요할 때는 반말보다는 높임말로 대답하는 아이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이 느껴져서 훈육이 좀 더 부드러워지고, 훈육하는 말투 역시 격앙된 말투보다 좀 더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아이들의 사춘기와 그 시기를 함께 겪어야 할 동행자로서  상처 받을 아이와 상처 받을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아이들에게서 오히려 감동을 받고, 부모에게 인내심을 가질 수 있게 가르친 건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 이젠 이 문장과 함께, 아이를 보면서 내 모습을 내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기에‘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두문장은 항상 함께 해야 될 것 같다.          


나의 아이들은 앞으로도,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때가 되면 다 하게 될 수도 있는 높임말 연습으로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에 일원이 되었을 때.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 가족 높임말 연습했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왜 그랬을까?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좋았던 것 같아 재미있었잖아 높임말 가족’          


이라며 가는 길이 힘이 들 때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서로의 언어’는
 높임말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했었기에 

언어보다 더 귀한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상처 주지 않는 것이다



-영남일보 세대공감 공모전 출품 가작 당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