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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May 28. 2021

주방 속 철학을 만들다

미니멀라이프, 주방이야기




시간 투자와 결과는 꼭 비례하지 않는다


나의 하루 중 반 이상을 서성거렸던 곳, 그곳은 주방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인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자신 있다. 그냥 가족들 끼니때 굶기지 않고 할 정도인 평범한 주부

가끔  때아닌 도전정신으로 깍두기 따위를 할 때도 있긴 하지만

평소 나의 요리는 그냥 가정식이다

 

근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 생각해보면 그 투자한 시간들의 대부분은 정리정돈에 들어가는 시간 들이었다.싱크대 상판엔 주방 살림에 필요하다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나와있었고,

동선을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손이 닿는 곳에 모든 것을 놔두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설거지하며 생긴 물자국, 요리하다 국물이 튄 수저통, 급하다고 아무렇게나 꽃아 둔 식기류

바닥에 떨어진 기름, 요리 재료들 등등 눈에 거슬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고, 음식 하며 보낸 시간 그 뒤 설거지하는 시간 그리고 이어지는 2차 주방정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는 아주 비효율적인 패턴으로 난 주방에서 시간을 허비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난 주방에서의 동선을 최소화한다며 내 손이 닿는 곳에 모든 것을 두고 실용적인 듯 생활했지만 결국엔 그것들이 나의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킬러 들이었다. 그렇다고 완벽히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하고 난 뒤 돌아본 주방은 왠지 처음과 같은 모습인  같을 때가 많다


그렇게 정돈이 끝이 나면 내 몸은 녹초가 되어있고, 식기세척기를 사야 된다는 둥, 인덕션으로 바꿔야 된다는 둥 어설픈 목수가 연장 탓하듯  난 가전기구들이 최신이 아니라고 투덜투덜거렸다.


가족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행복이 내겐 행복이 아니라 전투가 되고,  밥 안 먹고살 수는 없을까 라면 뜬구름 잡는 생각만 하게 된다.


싱크대 상판과 아일랜드장 위에 있던 물건들은 싹 다 정리된 주방


허술한 소비자의 결과


물건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물건으로 행복의 가치를 높이는 건 극히  일부일 것이다.

가성비를 따지며, 시간 투자해서 사들인 물건은 잠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는 해주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땐 스트레스 지수를 더 높여준다는 걸 나는 알았다.

음식을 할 때 내가 쓰는 조리도구는 늘 한정적이고, 가성비 따져가며 샀던 도구들은

맨 아랫 서랍에서 24시간 대기만 하고 있다.


난 왜 물건을 모셔두고 있는 거지? 안 쓰는 물건에 대해 왜 나의 공간을 내어주고 있는 거지?

깨닫는 순간 나의 눈에 들어온 불법 점거한 물건들을 비워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하나씩 정리에 들어갔다

싱크대 상판 위에 즐비하게 늘어둔 조리도구들을 구분하여 싱크대 서랍으로 자리이동을 하고,

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안 쓰는 도구들은 과감히 비워낸다.


싱크대는 왜 있을까? 사용하기 위해 있는 것인데 난 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넣어두고 있었던 거지?


하나씩 물건을 꺼내어 보니 맥시멀 라이프의 1번 규칙 '언젠가는 쓰는 날이 올 거다'  기준에 맞춰  이사하면서도 기어코 들고 다닌 것들도 보였고, 실용성 제로인 예쁜 쓰레기도 있었으며, 필요하지도 않은데 그냥 준다는 이유로 받아서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 그리고 세상 유혹당하기 쉬운 1+1 제품을 사서 1도 제대로 쓰지 못한 것들 투성이었다 2는 5000원이지만 3개 사면 6000원이라는 개당 단가 계산에 혹해서 필요한 2개가 아닌 3개를 사서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나름 스마트컨슈머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난 그냥 상술에 잘 춤춰주는 허당 소비자였다


이젠 어설픈 소비자 역할에서 벗어났지만, 앞으로 상술의 유혹에서 완벽할 거라 장담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땐 내가 비워낸 것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딱히 필요하지 않은 것들, 혹은 대량 구매조건, 혹은 1+1의 결과



나 혼자 하는 정리는 한 번에 하려고 하지 말자.


이불장 정리와 다르게 주방은 물건의 종류와 개수가 방대하다

그래서 주방 정리는 하루 날 잡고 후다닥 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 정해놓은 곳을 집중적으로 했다. 하루 종일 모든 것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물건들을 다 꺼내 놓는다면 이미 꺼내는 행위로 인해 지쳐서 물건의 사용 유무를 구분할 때

'아 몰라 이거 그냥 써'

'아 그냥 버려버려...'

이렇게 되기 십상이고 , 정리정돈 말고도 집에서 해야 될 일들은 많고, 또한 가족들의 돌봄도 준비해야 하기에

'신박한 정리'처럼 업체에 맡겨서 하는 게 아니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규칙!

그리고 주방은 내가 쓰는 것들이 전부이기에 가족들의 의견은 크게 필요치 않은 곳이니

내 심신이 안정될 때 하나씩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고

몸이 고되지 않으면 마무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다


딱 필요한 것들만 넣어두기로 한 주방 서랍 빈공간이 생기면서 여유로운 느낌이 들다


 



주방에서 정돈을 하느라 파김치가 되는 내가 아니라, 짧은 시간 주방 마감을 하고 그 시간을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에게 중요한 건 집이 아니라 가족들이니깐 말이다

 

내가  집에서 살듯이 물건도 아무렇게나 두지 않고 물건의 집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넓은 서랍 안에 나누어진 공간 없이 물건을 넣으면 서랍을 열고 닫을 때마다 물건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엉퀴 게 된다. 용도 별로 구획을 나누어 두면 사용할 때도 좋고, 사용 후 다시 넣어 둘 때도 편리하다.

그리고 정해진 자리는 되도록 옮기지 않고 처음 자리를 정할 때 나의 동선과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최적에 장소를 물색해 정한 뒤. 가장 중요한 마무리 중 하나가

이 물건들의 자리를 가족들에게 반드시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내가 주로 쓰는 공간이지만, 가족들 역시 꺼내 쓰는 역할은 주어져 있다. 물건의 위치와 보관되어있는 곳을 나만 알고 있다면 아침과 저녁시간 가족들의 호출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엄마 수저 어디 있어요?"

"엄마 그릇 어디 있어요?"

"엄마 컵은 어디 있어요?"

"엄마. 엄마"



세 번째 마지막 서랍엔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사용되고 나면 다시는 구매 안 할. 소모적인  물건들을 모두 모아 두었다


이런 부름을 듣고 싶지 않기에 물건의 자리이동이 있을 경우엔 아이들을 다 불러서

"이건 세 번째 서랍에 있으니 필요하면 이곳에서 꺼내"

라고 일러둔다


그리고 서랍 안에 다양한 물건이 있다면 라벨링은 필수!

물건을 찾는다고 싱크대 상, 하부장을 전부 열 필요가 없다 다양한 역할이 주어진 엄마의 자리는 늘 바쁜데

물건을 찾지 못해서 허둥지둥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장 작은 아이는 엄마를 부르지 않고 스스로 수저를 챙긴다 





미니멀 라이프를 서술식으로 표현하자면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삶

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르고, 생각도 장소도 상황도 모두 다를 터인데 어떻게 하나같이 최소한의 물건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 있다.

같은 옷도 여러 사람에겐 다르게 입혀지고, 같은 옷 다른 느낌이 들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최소한" 이란 옷을 다른 사람도 입고, 나도 입는 것이다. 그 사람과 나는 체형이 다르다

그러니 각자 입는 순간 그 옷은 같은 옷이 아니다


난 내 삶의 최소한을 결정해보기로 했다


언제 완성이 될지, 혹은 계속 미완성 일지 정해지지 않은 미니멀 라이프 중에서

단 한 가지! 나에게 맞는 '최소한'을 찾아보는 것

그게 정해진다면 미완성이든 완성이든 난 미니멀 라이프를 해결해내야 하고 도전해야 되는 거친 목표가 아니라 언제 합쳐질지 모르는 평행선에서 늘 함께하는 내 삶의 동반자 역할을 미니멀 라이프가 하고 있을 것 같다 

미니멀 라이프에 나의 생각을 담고
주방에  나의 철학을 만들다






에필로그;)

상, 하부 장중 아직 정리를 못한 것이 있어요

그건 결혼할 때 친정엄마가 사준 그릇 세트

시장 그릇가게에서 산 비싸지 않은 나뭇잎 그림의 그릇세트예요

몇 번을 비우려고 시도했었는데, 참 쉽지 않은 일이네요

친정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엄마가 준 물건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가까이 살 땐 언제나 볼 수 있어 늘 그렇게 옆에 있을 것 같았는데

멀리 떨어지고 나니 가까이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게 되네요

언젠가 비우겠죠

급하지 않으니 상부장 세 번째 그릇장은 잠시 닫아두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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